미국 국채 75%는 국민과 정부 보유…"신용등급 강등, 위기로 보긴 어려워"
최근 국제신용평가회사 무디스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전격적으로 강등한 후 미국 국채 가격의 추이가 주목받고 있다.
미국 국채는 세계에서 가장 믿음직한 자산이자 시장금리의 기준이라는 점에서 미국 국채 가격의 방향성은 전 세계의 관심거리다.
마침 미국 재무부는 3분기 장기채 발행 규모를 당초 960억 달러에서 1030억 달러로 늘리기로 했다.
신용등급은 채무불이행 위험 수준에 대한 평가다.
신용등급 하락은 부채를 제때 갚을 능력이 이전보다 떨어졌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개인도 신용점수가 하락하면 대출금리가 오른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신용등급이 떨어진 나라가 금리를 높이지 않고 대규모로 국채를 신규 발행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여기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규모 감세 법안도 미국 하원을 통과했다.
트럼프 1기 때 시행했던 4조5000억 달러 규모의 감세 조치를 연장하고 팁과 초과근무 소득, 자동차 대출 이자 등에 대한 세금을 낮추는 내용이다.
상속세와 증여세 면제 한도도 높아진다.
감세로 세수는 줄어드는 반면 정부의 지출이 늘면 국채를 더 발행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일각에서는 현재 5% 초반으로 올라선 미국 30년물 국채 수익률이 곧 5.5%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한다.
그만큼 국채값은 떨어진다.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EPA 연합 무덤덤한 미국, 이유는 '내부'에 있다 일각에서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덤덤하다.
심지어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은 오히려 미국 국채 가격 상승을 예견하며 대규모 추가 매입을 공언했다.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은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떻게 봐야 할까. 재정 건전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시장의 신뢰가 흔들리는데도 과연 미국의 '달러 패권'은 유지될 수 있을까. 미국의 현재 국채 발행 잔액은 약 36조2000억 달러다.
2019년에는 23조 달러 수준이었으나 코로나 팬데믹 대응 과정에서 급증하며 13조 달러 이상 증가했다.
국채 발행 규모는 앞으로도 줄어들기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
지금의 미국 정부처럼 지출을 늘리고 감세까지 하면서 재정적자가 줄어들기를 바라긴 어렵다.
이자 갚는 일도 만만치 않다.
미국이 국채 이자로 지급하는 돈은 2010년 4140억 달러에서 지난해 1조1300억 달러로 불어났다.
다른 나라 같으면 위기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미국은 다르다.
미국 국가부채의 상당 부분은 사실 '미국 내부'에서 빌린 돈이기 때문이다.
미국 국민과 정부, 그리고 연방은행이 주요 채권자들이다.
전체의 75% 정도가 미국 국민과 연방정부 내부 계정의 몫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우선 7조 달러 정도의 빚은 미국 연방정부가 스스로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은퇴자연금 지급을 위해 쌓아놓은 사회보장기금(Social Security Trust Fund)이다.
3조 달러 정도를 국채로 운용하고 있다.
미국 연방정부를 제외한 외부에서 가지고 있는 국채는 흔히 공공 보유 국채(Debt Held by the Public)라고 부르는데, 29조 달러 정도다.
가장 많은 국채를 가지고 있는 곳은 미국의 민간 투자자들이다.
미국 국채가 좋은 투자 대상이라는 점은 미국의 투자자들에게도 마찬가지여서 은행이나 투자회사, 보험사 같은 곳들이 9조 달러 정도를 보유하고 있다.
연준은 지난 3월 기준 4조2000억 달러 규모를 가지고 있다.
3년 전에는 8조5000억 달러 규모였지만 양적완화가 끝나면서 많이 줄었다.
미국의 개인투자자들 역시 4조 달러 정도를 가지고 있다.
미국 밖의 외국 정부나 기관에서 보유하고 있는 미국 국채는 모두 합쳐 8조5000억 달러 정도다.
사상 최대 규모라고 하지만 전체 발행 잔액과 비교하면 25% 수준이다.
국가별로 보면 일본이 1조 달러를 약간 넘고 다음이 영국으로 7790억 달러를 갖고 있다.
뒤이어 중국이 7654억 달러다.
원래 2008년부터 약 10년 넘게 중국이 미국 국채 최다 보유국이었지만 계속 줄어 2019년 6월부터는 일본이 미국 국채 최다 보유국이 됐다.
중국이 미국 국채를 줄인 이유는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전략에 따라 외환보유고를 다변화하면서, 동시에 위안화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달러 자산을 매도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미국 국채 매입 증가는 일본 내에서 수익을 낼 곳이 부족한 탓이 컸다.
달러 자산을 사들여 자국 통화를 평가절하하는 효과도 계산했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미국은 중국이나 일본 같은 외국에서도 상당한 돈을 빌렸지만, 훨씬 더 많은 부분을 미국이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국가 전체로 보면 국민이 정부에 돈을 빌려준 구조다.
빚의 상당 부분을 국민의 연금이나 저축으로 충당했다는 말은 정부의 부채가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의 자산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미국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부채를 유지해올 수 있었던 이유다.
일각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미국 국채의 매각을 중국이 미국을 위협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다.
게다가 미국 정부는 달러로 국채를 발행한다.
달러는 세계의 기축통화지만 또 한편으로는 미국의 자국 통화다.
최악의 경우라도 그냥 연준이 돈을 찍어 갚으면 그만이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 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화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부채 돌려막는 악순환 가능성도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의 원인으로 지목된 재정적자와 국가부채 증가는 갑자기 나타난 문제가 아니다.
미국과 무역을 하는 나라들은 상품을 팔아 달러를 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벌어들인 달러로 미국 국채를 사서 쌓아놓는다.
우리나라가 보유한 미국 국채는 2024년 말 기준으로 약 1250억 달러 규모다.
지금도 미국의 국채보다 안전한 자산은 달리 찾기 어렵다.
달러는 여전히 국제무역의 88%, 글로벌 외환보유고의 59%를 차지한다.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기축통화 보유국인 미국에 대한 신용평가는 사실 큰 의미가 없는 셈이다.
물론 '위기라고 하기는 어렵다'는 말이 '절대로 위험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공공부채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경제 성장과 투자 환경이 급격히 악화할 수 있다는 건 상식이다.
'재정 침체(Fiscal Stagnation)'는 지나치게 늘어난 공공부채가 성장을 어렵게 만들고 부채 부담을 늘리는 악순환 구조를 가리킨다.
부채가 임계점을 넘어서면 투자 위축과 생산성 저하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세수를 감소시킨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2024년 회계연도 미국의 재정적자는 1조8300억 달러였다.
재정적자는 국채 발행을 통해 메워야 하고 늘어나는 국채 발행은 다시 부채로 쌓인다.
이자 비용의 증가도 적자를 악화시키고, 이는 다시 국가부채를 늘리는 악순환의 구조다.
지금의 구조가 지속되면 시장은 미국 국채에 대해 더 높은 수익률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국채 금리의 상승은 기준금리 조정과 관계없이 사실상 금융긴축이 이뤄지는 결과를 낳고 기업과 가계의 차입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그만큼 경제에는 부담을 주게 될 것이다.
 
미국 신용등급의 운명, 국채 구조에 답이 있다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