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립선암 절반이 3기 이후 발견…PSA검사 등 조기 진단이 생존 좌우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82)이 최근 뼈로 전이된 전립선암 진단을 받았다.
전립선암은 조기에 발견할 경우 완치율이 높은 암이지만, 다른 장기로 전이된 후 진단되면 5년 생존율이 30~40%에 불과하다.
국내 상황도 녹록지 않다.
우리나라 전립선암 환자의 약 절반은 병기 3기에서 진단되며, 인종적 특성상 같은 병기라 하더라도 악성도가 높은 '고위험군'에 속하는 비율이 절반에 달한다.
의료계는 전립선암이 머지않아 폐암을 제치고 국내 남성암 1위에 오를 것으로 전망한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50세 이상 남성을 대상으로 연 1회 전립선암 검사를 권고하고 있다.
전립선은 방광 아래에서 요도를 둘러싸고 위치한 남성 생식기관으로, 정액을 생성해 정자의 운동을 돕는 역할을 한다.
이 부위에 생기는 전립선암은 일반적으로 진행 속도가 느린 편이어서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으면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은 퇴임 4개월 만에 전립선암 4기 진단을 받았다.
이는 그가 수년간 전립선암 검사를 받지 않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실제로 미국 현지 언론은 바이든 전 대통령이 2014년 이후 PSA(전립선특이항원) 검사를 받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미국에서는 과잉 진단과 불필요한 치료를 방지하기 위해 70세 이상 고령 남성에게 PSA검사를 일률적으로 권장하지 않고 있다.
PSA검사는 혈액 내 전립선특이항원 농도를 측정하는 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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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전립선암, 서양보다 악성도 높아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전립선암을 늦게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대한비뇨의학재단과 대한비뇨기종양학회가 2021년 전립선암 환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최초 진단 당시 병기가 3기 이상이었다고 응답한 환자가 47%에 달했다.
환자 두 명 중 한 명꼴로 암이 이미 전립선을 벗어났거나 다른 장기로 전이된 상태에서 처음 진단을 받은 셈이다.
전립선암을 늦게 발견하는 이유는 초기에는 특별한 증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증상이 있더라도 흔한 전립선비대증과 유사해 암으로 의심하지 않고 넘기는 경우가 많다.
또 전립선암을 '순한 암'으로 인식하는 것도 한 원인으로 꼽힌다.
모든 전립선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96%로 높은 편이지만, 다른 장기로 전이된 후에는 48%로 급격히 낮아진다.
게다가 전립선암을 조기에 선별할 수 있는 PSA검사를 받지 않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PSA검사 수검률은 10% 미만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비뇨기종양학회 조사에서는 전립선암 검사 방법이나 검사 주기를 모른다고 응답한 사람이 10명 중 8명에 달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PSA검사가 국가 암검진 항목에 포함돼 있지 않다는 점도 있다.
대한비뇨의학회는 전립선암의 조기 발견과 사망률 저하를 위해 20년 전부터 PSA검사를 국가 암검진 프로그램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오고 있다.
이처럼 PSA검사를 받지 않는 사람이 많고, 검사 방법이나 주기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다 보니 전립선암을 조기에 발견하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국내 전립선암 환자 수는 2022년 한 해에만 2만 명을 넘어섰다.
국가암정보센터에 따르면, 전립선암은 남성암 발생 순위에서 대장암을 제치고 2위에 올랐다.
1위인 폐암과의 격차도 크지 않아, 전문가들은 머지않아 전립선암이 남성암 가운데 발생률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세계적인 추세와도 일치한다.
미국과 유럽 등 서구권에서는 이미 1990년대부터, 일본도 약 5년 전부터 전립선암이 남성에게 가장 흔한 암으로 자리 잡았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인의 전립선암 중 악성도가 높은 고위험군 비율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국내 전립선암 환자의 50% 이상이 고악성도 암에 해당하며, 특히 75세 이상 고령층에서는 그 비율이 68%까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서구권의 고위험 전립선암 비율(20~30%)과 비교해도 현저히 높은 수치다.
같은 국소암(전립선 내에 국한된 암)이라 하더라도 병기가 높거나, 글리슨 점수가 8점 이상인 고악성도 전립선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의미다.
더욱이 이 비율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글리슨 점수는 전립선암 세포의 분화 정도를 평가해 최대 10점까지 부여하는 악성도 지표로, 8점 이상은 매우 공격적인 암으로 분류된다.
바이든 전 대통령이 진단받은 전립선암도 글리슨 점수 9점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창욱 서울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전립선암은 같은 국소암이라도 서양보다 병기나 악성도가 높은 경우가 많다.
인종적 차이가 그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블루리본은 급증하는 전립선암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자 세계적으로 매년 실시하는 캠페인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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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세 이상, 매년 PSA검사 권고"
악성도가 높은 전립선암일수록 조기에 발견하지 않으면 치료 효과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전립선암을 조금이라도 일찍 발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PSA검사를 주기적으로 받는 것이다.
PSA검사는 혈액 내 전립선특이항원 농도를 측정하는 검사로, 대표적인 전립선암 선별검사다.
일반적으로 PSA 수치가 3ng/mL을 초과하면 전립선암뿐 아니라 전립선염이나 전립선비대증 등 전립선에 이상이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대한비뇨기종양학회는 '증상이 없더라도 50세 이상 남성은 1년에 한 번 PSA검사를 받을 것'을 권한다.
정기적인 건강검진에서 PSA검사 항목을 추가하거나, 동네 비뇨의학과에서 PSA검사를 받을 수 있다.
전립선암 가족력이 있는 사람은 45세부터 PSA검사를 시작하는 것이 권장된다.
다른 질환 치료를 위해 남성호르몬 주사를 맞고 있거나, 탈모 치료제를 복용 중인 경우에는 연령에 관계없이 매년 PSA검사를 받아야 한다.
탈모 치료제는 PSA 수치를 실제보다 낮아 보이게 하는 작용이 있어, 전립선암의 조기 진단을 방해할 수 있다.
PSA 수치가 높다고 해서 모두 전립선암인 것은 아니므로, 즉시 치료를 시작하지는 않는다.
추가 진단을 위해 직장수지검사와 직장경유 초음파검사를 시행한다.
직장수지검사는 의사가 항문을 통해 손가락을 넣어 전립선의 크기와 종양 여부를 촉진하는 방법이다.
직장경유 초음파검사는 직장 내에 초음파 기구를 삽입해 전립선의 구조를 관찰하는 검사다.
여러 검사를 통해 전립선암이 의심되면, 초음파를 이용한 전립선 조직검사를 시행한다.
전립선 조직검사는 초음파 영상으로 전립선을 확인하며 바늘을 이용해 12군데에서 소량의 조직을 채취해 암세포 유무를 검사하는 방법이다.
최근 주목받는 검사법으로는 퓨전 조직검사가 있다.
이는 초음파 영상과 자기공명영상(MRI)을 실시간으로 융합해 3차원 이미지로 암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한 후, 해당 부위에서 조직을 채취하는 방법이다.
기존 검사법에 비해 정확도가 더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정창욱 교수는 "조직검사 전 MRI 검사가 기본이다.
초음파검사와 PSA검사에서 암이 의심되는 등 특정 조건일 때 MRI 검사를 시행한다"고 설명했다.
중입자 치료 등 비수술적 방법으로 진화
전립선암이 발견되면 치료 방향을 결정한다.
기본적인 치료법으로는 수술, 방사선요법, 항호르몬제 투여 등이 있다.
1~2기 국소 전립선암에서는 완치를 목표로 수술 치료를 할 수 있으며, 일부 연구에서 약물 치료보다 재발률이 낮은 것으로 보고됐다.
특히 75세 이상 고령 환자에서 전립선암으로 인한 사망 위험을 유의하게 낮추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술 후 발기 부전과 요실금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전립선암 진단 후 수술을 바로 시행하지는 않는다.
암이지만 위험성이 낮다고 판단되면 '적극적 관찰' 기간을 두고 치료 시기를 조절한다.
정창욱 교수는 "전립선암 중 '매우 낮은 위험도(VLR)'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즉시 수술을 진행하지 않고 적극적 관찰을 시행한다.
적극적 관찰이란 정기적으로 조직검사 등을 통해 암의 악성도와 진행 여부를 평가하는 방법이다.
암의 진행이 명확해지면 수술 등 적극적인 치료를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3기 전립선암도 60~70% 정도는 완치가 가능하다.
정창욱 교수는 "그러나 오랜 기간 재발 여부를 관찰해야 한다.
치료 후에도 암이 재발할 수 있으며, 재발 속도가 매우 느리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전립선암 치료 성적을 5년 생존율만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서울대병원이 15년간 추적 관찰한 연구에 따르면, 수술 후 재발률이 약 40%에 이른다.
고위험군 환자가 많아 완치 후에도 10~15년 이상 지속적인 추적 관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이가 있는 4기 전립선암은 완치가 어렵기 때문에 주로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치료를 진행한다.
전립선암은 남성호르몬에 의해 성장하므로, 항호르몬제를 사용해 남성호르몬을 차단한다.
뼈 전이가 많거나 폐나 간 등으로 전이가 진행된 경우에는 항암제를 병용하기도 한다.
최신 전립선암 치료는 수술 중심에서 비수술적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현재 1~2기 전립선암의 표준 치료법은 수술이지만, 향후에는 중입자 치료의 활용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입자 치료는 탄소 이온을 이용해 암세포를 정밀하게 파괴하는 고정밀 방사선 치료법이다.
수술 없이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제거할 수 있으며, 주변 정상 조직의 손상을 최소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일본과 독일에서 오랜 기간 시행된 중입자 치료 성과를 보면, 전립선암 치료 성적이 매우 우수하다.
특히 고위험 전립선암 환자에서도 90% 이상의 치료 성적을 보인다.
국내에서는 2023년 세브란스병원이 처음으로 중입자 치료를 도입했으며, 서울아산병원도 2031년 본격적인 치료 시작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이익재 세브란스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는 "전립선암에 대한 수술과 중입자 치료는 치료 성적 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
이에 따라 당뇨병이나 심혈관질환 등으로 인해 마취에 위험이 있거나 수술이 어려운 환자에게 중입자 치료는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또 중입자 치료는 암의 악성도가 높더라도 전립선 내에 국한된 국소암의 경우 높은 치료 효과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PSMA 표적 방사성 리간드 치료'도 점차 활용이 확대될 전망이다.
이 치료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암세포에 선택적으로 전달해 파괴하는 방식으로, 기존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전이성 전립선암 환자에서 긍정적인 치료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분당차병원과 서울아산병원에서는 지난해부터 이 치료법을 도입해 시행 중이다.
또 면역 치료와 유전자 치료 역시 현재 임상시험 단계에 있으며, 향후 전립선암의 새로운 치료 옵션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들 치료법은 환자의 유전적 특성이나 종양 특성에 따라 치료 방향을 달리할 수 있어, 개인 맞춤형 치료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익재 교수는 "내가 전공의 때만 해도 늦게 발견해 뼈 등에 전이된 전립선암이 많았다.
앞으로는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고, 치료법도 수술 중심에서 비수술적 치료로 전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50세 이상 남성이 매년 비뇨의학과를 찾아야 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