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나타내는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사랑하는 이를 잃는 것과 같은 깊은 상실감, 슬픔은 안타깝지만 모두 살면서 한두 번씩 경험하게 된다.
이때 사람마다 슬픔을 표현하고 처리하는 방식이 달라서 얼마간 슬퍼하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시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꽤 회복탄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었다.
) 슬픔이 조금 길게 유지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중에는 계속해서 높은 수준의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 두세 달이 지나면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
많은 이들이 오랫동안 식음을 전폐하기보다는 슬픔을 한구석에 간직할지언정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어 함께 자주 가던 장소를 지나치면서 울컥하지만 그래도 그 길을 지나 출근을 하고 집에서도 여전히 빈 자리를 느끼지만 적적함 속에서도 밥을 먹고 청소를 한다.
어떤 날은 아무와도 만나고 싶지 않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지만 또 다른 날은 가까운 이들과 도란도란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어쩌면 인간이 강인해서가 아니라 약하기 때문에 일상이 유지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온종일 상실의 슬픔을 곱씹는 것은 너무 힘들기 때문에 적당히 주의를 돌릴 만한 슬픔의 방해물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실제로 주의를 돌리는 것은 가장 자주 사용되는 정서 조절법 중 하나다) 그렇게 조금씩 다른 문제들이 삶을 비집고 들어오게 두면 상실을 조금씩 덜 생각하게 되는 날이 오고 계속해서 삶이 이어지는 것일 거다.
물론 그렇다고 슬픔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연히 접했던 한 글에서 슬픔은 파도와 같다는 이야기를 봤다.
밀려왔다가 사라지고 다시 밀려오는 파도처럼 상실감과 슬픔은 우리 마음속에 밀려오고 사라지고 다시 밀려오겠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그 과정이 반복되면서 파도에 빠져 죽지 않고 파도를 맞으며 덤덤히 서 있는 법을 터득하게 될 거라는 얘기였다.
최근 개인적인 상실을 겪으면서 파도를 세게 맞아 한동안 정신이 없었지만 파도가 조금 잦아들면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상실감이 큰 만큼 함께했던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는 깨달음과 그런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감사였다.
그러니까 나를 집어삼키는 슬픔만 가득해 보였던 파도에 사실은 행복과 감사도 가득했다.
상실감은 소중함에 비례하는 것이어서 큰 상실감은 삶에서 그만큼 큰 선물을 받았음을 의미하는 셈이다.
슬픈 만큼 덕분에 너무 행복하고 잘 살아온 삶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특히 슬픔과 같은 감정은 내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것들인지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특별히 귀한 감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슬픔은 아름다운 감정이라고 이야기해 준 지인이 있다.
생존을 도와준다는 점 외에 어떤 부정적 정서를 특별히 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관련해서 부정적 정서를 나쁘지만은 않게 바라보는 사람들은 실제 그런 감정을 겪었을 때 몸이 스트레스 반응을 덜 보인다는 연구가 있었다.
부정적 정서를 무조건 나쁘고 해로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감정을 건강하지 않은 방식으로 해소할 것 같기도 하다.
인생은 짧고 우리가 사랑했던 것들은 언젠가 우리를 떠난다.
달리 말하면 누구나 반짝이는 순간들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슬프지만 아름다운 것인가 보다.
Luong, G., Miller, J. W., Kirkland, D., Morse, J. L., Wrzus, C., Diehl, M., Chow, S.-M., & Riediger, M. (2023). Valuing negative affect weakens affect-health linkages: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across affect valuation measures. Motivation and Emotion, 47, 347-363. https://doi.org/10.1007/s11031-023-10012-7
※필자소개
박진영
.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슬픔 속에 숨겨진 행복과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