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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창원시 출범 15년, 빛과 그림자
경남 창원특례시 불모산에서 바라본 도심 전경. 창원대로가 길게 뻗어 있는 아래쪽에 산업단지가 위치해 있다.
송봉근 기자
한낮 기온이 35도 넘게 치솟은 지난 9일 오후 6시반. 경남 창원특례시 최대 번화가인 성산구 상남동 거리는 몇몇 행인들만 오갈 뿐 한산한 모습이었다.
3층 건물을 통째로 쓰는 프랜차이즈 카페엔 고작 1층 테이블 세 곳에만 손님이 앉아 있었다.
줄지어 늘어선 가게 문밖으로 새어 나오는 에어컨 바람에 거리가 한층 더 썰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2014년부터 고깃집을 운영하는 이석우(47)씨는 저녁 장사를 앞두고 연신 테이블을 닦고 있었다.
“수요일은 여기 공장들이 ‘잔업 없는 날’이라 다른 평일보다는 그나마 좀 나은 편이에요.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직원들이 삼삼오오 술 한잔하러 오거든요. 10년 전만 해도 저녁엔 거리를 걷기 힘들 정도로 손님들이 많았는데, 이젠 여름 특수도 사라진 지 오래됐네요. 청년들이 왁자지껄하던 ‘젊은 도시’라는 이미지도 어느새 옛말이 됐습니다.
”
통합창원시가 지난 1일 출범한 지 15주년을 맞았다.
2010년 7월 창원·마산·진해시 행정구역 통합이 완료되면서 3개 도시는 ‘하나의 도시’로 거듭났다.
수도권 쏠림 현상 심화와 지방 소멸 위기 속에서 통합으로 몸집을 키워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었다.
당시만 해도 도시와 인근 농촌 통합이 대부분이었던 이전 사례와 달리 시와 시의 통합을 성사시키며 행정통합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장밋빛 전망이 쏟아지는 가운데 창원시를 모델로 하는 통합 논의도 전국 곳곳에서 잇따랐다.
50
%
육박하던 재정자립도 20
%
대 하락
그래픽=정수경 기자 jung.suekyoung@joins.com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사뭇 달랐다.
통합 15년이 지난 지금 창원시는 몸집이 불기는커녕 인구 100만 명의 벽이 무너지고 평균 연령도 9세나 높아졌다.
제조업에 기반한 젊은 도시를 표방하며 동남권의 중심 허브이자 수도권의 대항마를 꿈꿨지만, 제조업 위축과 그에 따른 일자리 부족에 창원·마산의 지역 불균형 등으로 인해 주민들이 하나둘 떠나면서 오히려 도시 경쟁력이 떨어지게 됐다는 분석이다.
인구수만 봐도 통합 직후 창원시는 108만 명이 넘어 수도권 경쟁 도시였던 수원시(106만여 명)와 성남시(94만여 명)보다 많았지만 이후 감소세가 지속되더니 지난해엔 99만9858명으로 사상 처음 100만 명 밑으로 내려갔다.
도대체 왜 이런 결과가 초래된 것일까. 무엇보다 청년 인구 감소가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통합창원시의 19~39세 청년 인구는 지난해 23만2800명으로 최근 10년간 27.7
%
나 줄었다.
반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지난해 19만2030명으로 5년 새 5만 명 넘게 증가했다.
그 결과 통합 직후 36.7세였던 평균 연령도 지난 6월엔 45.7세까지 오르면서 전국 평균(45.6세)마저 상회하게 됐다.
이 같은 흐름엔 지역 경제를 떠받치던 제조업의 위축과 그에 따른 일자리 부족이 한몫했다는 평가다.
창원시는 1974년 중화학공업 육성 기조에 맞춰 국내 최대 규모의 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선 뒤 ‘기계산업의 요람’으로 불리며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갔다.
당초 30만 인구를 목표로 했던 계획도시는 예상보다 훨씬 더 인구가 몰리면서 1990년대 후반엔 50만 명 도시로 성장했다.
2010년 마산·진해와의 통합으로 109만 명까지 인구를 늘리며 시너지 효과를 기대했다.
그래픽=정수경 기자 jung.suekyoung@joins.com
하지만 2010년대 중반 이후 조선·자동차 산업에 한파가 불어닥치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지역 경제는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면서 통합 당시 50
%
에 가까웠던 재정자립도는 현재 20
%
대까지 곤두박질쳤다.
창원에서 25년째 개인택시를 운행하는 박현용(62)씨는 “지역 경제가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니 일자리는 계속 줄지, 나이 든 사람은 선뜻 움직이지 못하는데 젊은이들은 원하는 일자리를 찾아 타지로 떠나지, 그렇게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진해에 있는 케이조선은 아침에 통근 버스만 100대씩 다녀요. 배 용접하는 근로자들이 타는데 거의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인 게 현실입니다.
조선에, 방산에 여전히 경쟁력 있는 회사들이 있다지만 정작 요즘 청년들이 갈 만한 직장은 별로 없어요. 우리 딸도 대학생인데 원하는 회사는 서울에 다 몰려 있다더라고요.”
통합의 두 축이었던 창원시와 마산시의 불균형 심화도 만만찮은 장애물로 작용했다.
제조업이 발달한 창원시 중심으로 통합이 이뤄지면서 마산 지역은 갈수록 활력을 잃어갔고 이로 인한 갈등도 끊이질 않았다.
‘마산 토박이’라는 오종수(72)씨는 “통합하면서 마산은 이름도 잃었고 시청도 빼앗겼다”며 “한때 창원·진해 사람들도 즐겨 찾던 불종거리나 아귀찜 골목은 이젠 야구 보러 오는 외지인들만 가끔씩 찾을 뿐, 도시에 젊은이는 없고 노인만 남았다”고 한탄했다.
그는 “큰 기업은 전부 창원에 있으니 마산에 있던 청년들도 다 창원으로 가려고 하고, 그러니 집값도 거기만 오르고. 여기 마산은 15년 전보다 오히려 퇴보한 느낌”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1970년대 조성된 마산자유무역지역에 출근하는 여성 근로자들. [중앙포토]
실제로 지난해 창원시 청년 인구의 절반 이상(50.3
%
)이 옛 창원 지역인 성산구와 의창구에 거주하는 반면 고령 인구의 46.1
%
는 마산합포구와 마산회원구에 몰려 있는 실정이다.
청년들이 대거 떠나면서 한때 50만 명이 넘었던 옛 마산 지역 인구도 35만 명대로 급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반발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 14일엔 마산시 출신 전직 시의회 의장 9명이 기자회견을 열고 “시청사를 마산으로 옮기는 등 발전 계획을 내놓지 않을 거면 차라리 마산을 분리해 마산시민의 자존심을 되찾게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래픽=정수경 기자 jung.suekyoung@joins.com
옛 창원시 지역으로 인구가 몰리면서 집값이 뛰자 청년세대들이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인근 신도시로 옮겨간 것도 창원 인구 감소의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힌다.
창원국가산업단지에서 근무하는 정석일(36)씨는 “재작년 결혼하면서 김해시 진영읍에 신혼집을 마련했다”며 “새 아파트인데 집값도 싸고 차로 20~30분이면 출근할 수 있어 나처럼 시 외곽에 나가 사는 동료들이 많다”고 전했다.
하지만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수도권 일극 체제가 갈수록 공고화되는 가운데 ‘지방’이란 지리적·물리적 한계가 지역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2022년 창원시는 수원·고양·용인시와 함께 인구 100만 명 이상 대도시에만 부여되는 특례시 지위를 누리게 됐다.
비수도권 지역에선 유일한 특례시 승격이었지만 이후 4년반 동안 인구는 오히려 3만8000명(3.7
%
) 가까이 줄었다.
창원시 통합모델, 행정 효율성은 참고할 만
지난 17일 낮 창원시 최대 번화가인 성산구 상남동에서 시민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송봉근 기자
한양대 로컬리즘연구회 전영수 교수팀이 지난 7일 발표한 국내 229개 시·군·구 경쟁력 평가에서도 평택·용인·화성 등 수도권 도시가 상위권을 휩쓸었다.
수도권이란 이점을 앞세우며 양질의 일자리로 우수 인재들을 유치하고 이는 다시 생활 인프라 확대로 이어지면서 인구 유입이 가속화됐다는 분석이다.
반면 창원시는 25위에 그쳐 대조를 이뤘다.
지난 10일 서울발 KTX를 타고 창원중앙역에 내린 대학생 강진아(22)씨는 “방학을 맞아 부모님을 뵈러 왔다”며 “고교 친구들 대부분 서울이나 부산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해 오랜만에 얼굴을 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강씨는 “친구들끼리 만나면 늘 하는 말이 ‘창원이 수도권 근처에만 있었어도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얘기”라며 “청년들, 특히 우리 같은 여성들이 가고 싶어하는 기업이나 일자리는 다 서울에 몰려 있는데 창원은 KTX를 타도 3시간이나 걸리니, 이렇게 접근성이 떨어져서야 고향에 남으려는 청년들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새 정부 들어 ‘5극 3특(5개 초광역권과 3개 특별자치도)’ 재편 등 지역균형발전 정책이 본격 모색되는 상황에서 지방 분권 강화와 자체 경쟁력 확보를 위한 통합 논의가 실효성을 거두려면 통합창원시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창원시 통합 모델도 행정 효율성 증대 등은 참고할 만하다”며 “다만 결국엔 일자리가 있고 교육·문화 여건이 갖춰져야 청년들이 떠나지 않고 남게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영수 교수는 “창원뿐 아니라 여수·울산(석유화학)과 거제(조선) 등 동남권의 전통적인 제조업 도시들은 이미 ‘러스트벨트화’가 상당 부분 진행되고 있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단순한 통합을 넘어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고 관련 기업과 인재를 유치해 지역 고유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주민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할 때”라고 제언했다.
제조업 위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