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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었음’ 청춘 50만, 대한민국이 시든다
부산에서 열린 일자리 페스타에서 청년층 구직자들이 취업 상담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그냥 쉬었음’으로 분류된 청년들은 일반적으로 취업을 하지도, 구직 활동을 하지도 않은 상태로 파악된다.
겉보기엔 자발적 휴식이나 재충전의 시간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그냥 쉰’ 이유를 살펴보면 일자리 부족, 취업 준비를 위한 자기 계발, 번아웃 등이 주된 원인으로 나타난다.
실상은 ‘그냥 쉰’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쉰’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최근 ‘그냥 쉰’ 청년 인구가 증가하는 현상은 청년층의 일자리 수요와 노동시장 공급 사이의 미스매치에서 비롯된 구조적인 문제와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특히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고질적 문제인 이중 노동시장 구조가 그 배경에 자리 잡고 있다.
대기업과 정규직 중심의 1차 노동시장은 구직 대기자가 많아 초과 공급 상태인 반면,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중심의 2차 노동시장은 기피 현상으로 인해 인력난을 겪고 있다.
실제 연구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비정규직에서 정규직,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의 상향 이동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즉 2차 노동시장에서 1차 노동시장으로의 이동 경로가 갈수록 좁아지면서 이중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청년들은 원하는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 긴 대기 시간과 반복된 준비 과정을 거치고 있고, 그 과정에서 탈진하거나 좌절을 겪으며 결국엔 ‘그냥 쉬는’ 상태에 빠지기 쉽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단순한 시장 구조의 문제를 넘어 채용 문화의 이중성을 낳는다.
기업들은 “뽑을 만한 인재가 없다”거나 “요즘 청년들은 준비가 부족하다”고 지적하지만 청년들은 오히려 인턴부터 정규직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기업들이 직무 정의나 훈련 등 기본적인 준비를 소홀히 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이로 인해 기업과 청년층 사이의 불신은 커지고, 청년들은 반기업 정서가 확산되는 가운데 자기 계발 없이 ‘힐링’에만 의존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게 된다.
정부도 공정거래·산업정책·노동정책 등을 통해 이중구조 개선을 시도해 왔지만 그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이와 관련, 단기적으로 ‘그냥 쉼’을 줄이기 위해서는 청년들에게 경력 형성의 동기와 기회를 제공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인턴십 확대, 맞춤형 직업훈련, 실무 중심 교육 등이 필수적이다.
삼성전자가 삼성청년SW아카데미(SSAFY)처럼 소프트웨어 전공자뿐 아니라 인문·예체능계 출신도 참여할 수 있는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게 대표적 사례다.
이는 단순한 고용 프로그램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고, 청년들에게도 동기를 부여하며, 경제 전반의 역동성도 높일 수 있는 전략적 접근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경영자 단체나 산업별 협회가 주도적으로 나서 청년들에게 실질적인 성장 경로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개별 기업이 인력 훈련을 독자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해 이들 단체가 협력해 훈련 기회를 체계적으로 제공하고 전환형 인턴십을 제도화해야 한다.
인턴십을 경력으로 인정하는 ‘인턴 마일리지 제도’ 도입도 고려할 만하다.
원청기업과 하청기업 간의 상생도 중요하다.
원청이 하청의 근로조건과 작업환경 개선, 직업훈련 등을 적극 지원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나아가 동일 직무에 대한 원청·하청 간 임금 격차도 수치 관리를 통해 점차 완화해 나가고 원청의 브랜드를 활용한 공동 채용과 직업훈련 등도 추진할 수 있다.
디지털 전환 시대의 노동시장은 개인의 직무 능력을 중심으로 한 직무 기반 노동시장으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1차든, 2차든 상관없이 직무역량이 곧 노동시장 보상의 핵심이 돼야 한다.
이는 공정하고 투명한 노동시장을 구축하는 길이자 ‘그냥 쉼’에 빠진 청년들에게 다시 미래를 준비할 동기를 제공하는 길이기도 하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인턴십 확대, 맞춤형 직업훈련, 실무 교육 잘 맞물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