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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었음’ 청춘 50만, 대한민국이 시든다
중소기업 인력난이 해를 거듭할수록 가중되고 있다.
근로자들은 갈수록 고령화하고 있는 가운데 청년들의 중소기업 기피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상시근로자 300인 미만의 중소기업 근로자 중 50세 이상이 48.6 % 로 절반에 육박했다.
2014년 38 % 에서 10 % 포인트 이상 급증한 수치다.
300인 이상 기업의 50세 이상 비중이 26.4 % 인 것과도 확연히 대비된다.
업계에선 국내 기업의 99 % 를 차지하고 전체 일자리의 81 % 를 책임지고 있는 중소기업이 급속한 고령화에 청년층 기피 풍조와 이른 퇴직 등이 맞물리면서 존폐의 위기에 직면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그렇다면 청년들은 실업난에도 불구하고 왜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걸까. 중소기업에 다니던 청년들은 왜 퇴직을 결심하게 되는 걸까. 대다수 청년들은 ‘생각보다 열악한 근무 환경’과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를 첫손에 꼽았다.
최우석(27)씨는 첫 직장으로 중소기업을 선택했지만 2년 만에 퇴사했다.
그는 “업무는 정규직과 다를 게 없는데 급여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며 “결혼과 주택 마련 등 앞날을 생각하니 이대로 있다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겠다는 두려움이 몰려 왔다”고 말했다.
“몇 달을 버티다가 결국 그만뒀어요. 업무량은 과중한데 일할 사람은 부족하고. 퇴근 후엔 지쳐 쓰러지기 일쑤였죠. 게다가 일하면서 뭔가 배우고 발전한다는 생각도 전혀 들지 않다 보니 하루하루 스트레스만 쌓여 가는 느낌이었습니다.
” 경기도의 한 중소 제조업체에 다니던 박성민(28)씨도 최근 고민 끝에 퇴사를 결심했다.
1년여 전 중소기업에 취직하게 됐다는 소식에 친구들 모두 강하게 만류했을 때만 해도 그는 나름 자신감에 차 있었다.
비록 청년층 대부분이 꺼리는 중소기업이었지만 비교적 견실한 제조업체라는 평판에 충분히 도전할 만하겠다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왜 중소기업에 청년이 없는지 그제야 이해가 되더라고요.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너도나도 그만두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저도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어요.” 박지은(24)씨도 서울의 한 중소 제조업체에 사무직 인턴으로 입사했다가 3개월 만에 그만뒀다.
“작은 회사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정규직이 돼도 계속 다닐 만한 곳이겠다 싶어 지원했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현실은 전혀 달랐어요. 젊은 직원이 드물다 보니 웬만한 잡무는 모두 저에게만 몰렸고요. 지금은 좀 힘들어도 미래가 보이면 그래도 버티겠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희망이 없더라고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중소기업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200인 규모의 중소기업에 다니는 이가연(26)씨는 최근 이직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이씨는 “무엇보다 워라밸이나 복지 측면에서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과 너무 비교가 된다”며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으면 다시 준비해서 좀 더 나은 곳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방 제조업체에 취업한 김민재(28)씨는 “기숙사 샤워기가 고장 나도 몇 달째 그대로고 연차를 쓰려 해도 눈치가 많이 보여 아파도 웬만하면 그냥 출근하는 중”이라며 “물론 직원들을 잘 챙기는 중소기업도 많다고 들었지만 대부분은 사정이 열악한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청년층의 부재는 중소기업의 연구개발(R&D) 인력 감소와 그에 따른 경쟁력 약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중소기업 재직 연구원은 20만1644명으로 전체 기업 연구원의 49.4 % 를 차지하고 있지만 2023년에 비해 1만 명 이상 줄어드는 등 해를 거듭할수록 감소 추세가 가팔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중소기업 대표들도 고충은 마찬가지다.
경기도 이천에서 중소 물류업체를 운영하는 정모(57)씨는 “청년들이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이유를 모르는 업체 대표는 거의 없을 것”이라며 “하지만 중소기업 자체의 노력만으론 쉽지 않은 만큼 보다 실질적인 정부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청년 인력이 오질 않으니 복지에 신경 쓸 여력이 줄고, 그러다 보니 청년들이 더욱 기피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며 “이런 고리를 끊지 않으면 중소기업 경쟁력은 결코 회복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매년 약 3만 개의 ‘참 괜찮은 중소기업’을 선정해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해당 기업의 실질임금과 복지 수준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우수 기업에는 세제 감면 혜택을 제공하는 등의 보완책이 뒤따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주문이다.
황용식 세종대 교수는 “중소기업도 기술력을 갖춰야 생존할 수 있는 만큼 정부도 중소기업 R&D 지원을 대폭 늘릴 필요가 있다”며 “그래야 청년층도 중소기업을 ‘임시 발판’이 아니라 장기 경력의 출발점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업무량 과중, 미래 안 보여…버틸 수 없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