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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2차전지 위기론
SK온의 양방향 배터리. [뉴시스]
전기자동차 등에 들어가는 2차전지는 반도체·디스플레이와 함께 한국의 ‘3대 국가 첨단 전략 기술 분야’다.
하지만 최근 수출 상황은 좋지 않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한국의 2차전지 수출액은 39억7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21.2% 감소했다.
2023년 한 해 수출액이 98억2600만 달러로 2022년(99억8100만 달러)보다 1.6% 감소, 2015년 이후 8년 만에 역성장하더니 상황이 더 나빠졌다.
경쟁 상대인 중국이 가격 경쟁력에 품질 경쟁력을 더하자 나타난 현상이다.
일각에선 중국에 밀려 이미 심각한 위기에 처한 디스플레이나 석유화학 산업의 전철을 밟을까 우려한다.
그래픽=정수경 기자 jung.suekyoung@joins.com 국내 2차전지 제조 3사인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는 최근 실적 집계에서 나란히 고배를 마셨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3년 33조7455억원이었던 매출이 지난해 25조6196억원으로 24.1% 줄었다.
영업이익은 2조1632억원에서 5754억원으로 73.4% 감소했다.
SK온은 같은 기간 매출이 12조8972억원에서 6조2666억원으로 반토막이 났고 영업손실은 5818억원에서 1조1270억원으로 2배로 늘었다.
삼성SDI는 매출이 21조4368억원에서 16조5922억원, 영업이익은 1조5455억원에서 3633억원으로 감소했다.
삼성SDI도 게임체인저로 기대되는 46파이 배터리 양산에 나섰다.
[사진 각 사] 시장 조사 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누적 사용량 기준 3사의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점유율은 총 18.7%(LG에너지솔루션 10.7%, SK온 4.7%, 삼성SDI 3.3%)에 그쳤다.
앞서 3사의 글로벌 점유율은 2020~21년 30%대, 2022~23년 20%대였다.
불과 3년여 만에 한국의 점유율이 30%대에서 10%대로 내려앉았다.
이와 달리 중국의 세계 1위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 CATL은 점유율 38.3%로 압도적인 1위를 지켰다.
전기차 제조사이자 2차전지 제조까지 하는 BYD도 16.7%로 2위를 유지했다.
그래픽=정수경 기자 jung.suekyoung@joins.com 중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과 ‘규모의 경제’를 통해 중국 기업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한국의 강점인 품질 경쟁력, 즉 기술력 주도권마저 중국에 내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점이다.
박재범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현재 글로벌 2차전지 시장을 장악한 것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인데 중국이 우리보다 기술력에서 앞서 있다”며 “한국은 삼원계(NCM) 배터리로 대결하다가 뒤늦게 LFP 배터리 생산에 나서면서 고전 중”이라고 전했다.
한국, 삼원계 배터리→LFP 뒤늦게 전환 LG에너지솔루션의 46파이 배터리. [사진 각 사] 삼원계 배터리는 과거 LFP 배터리보다 고성능 제품으로 인식됐다.
삼원계 배터리는 양극재에 니켈·코발트·망간을 조합해 만드는데, 같은 면적에서 물질의 에너지 효율이 높아 전기차 탑재 때 주행거리가 길어진다.
LFP 배터리는 희귀한 금속인 코발트나 니켈 대신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운 리튬과 철 등으로 만들기 때문에 생산단가가 삼원계 배터리보다 낮다.
에너지 효율이 삼원계 배터리의 60~80% 수준임에도 중국이 가격 경쟁력을 위해 LFP 배터리 제조에 집중한 배경이다.
그러나 이후 중국 업계는 신기술 적용으로 LFP 배터리의 약점이던 에너지 효율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통상 배터리 제조 땐 기본 단위인 셀을 여러 개 묶어 모듈로 만드는데, 이때 외부 충격이나 열·진동으로부터 보호하는 장치를 한다.
이런 모듈을 다시 여러 개 묶어 최종 제품인 팩으로 만들면서 효율 관리 시스템이나 냉각 시스템을 추가한다.
그런데 중국 업계는 통상적인 제조 단계에서 모듈을 없애고, 셀에서 바로 팩 형태로 조립하는 ‘셀투팩(CTP)’ 기술을 적용해 낭비되는 공간을 최소화했다.
이는 배터리의 에너지 효율 향상으로 이어졌다.
그래픽=정수경 기자 jung.suekyoung@joins.com 그사이 전기차 화재 사고가 수시로 발생, LFP 배터리의 강점인 안전성이 부각된 것도 중국에 득이 됐다.
LFP 배터리는 섭씨 350도 이상 고온에서도 폭발하지 않을 만큼 화학적으로 안정적이라 삼원계 배터리보다 화재 발생 위험이 덜하다.
삼천리EV 관계자는 “LFP 배터리는 전기차나 에너지저장장치(ESS)처럼 안전성이 중요한 분야에 탑재되는 데 적합한 실용성을 갖췄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고 말했다.
에너지 효율 문제만 개선하면 전기차 등 2차전지의 핵심 수요처에 그만큼 매력적으로 다가서는 것이다.
미 전기차 구매 지원 제한도 한국엔 악재 중국은 이같은 LFP 배터리에서 가격·품질 경쟁력을 모두 잡은 한편, 비축한 여력을 다른 신기술에 대한 재투자라는 선순환으로 이어가면서 2차전지 시장에서 한국의 존재감을 계속 약화시키고 있다.
CATL은 최근 1회 충전에 최장 1500㎞ 주행이 가능한 나트륨이온 배터리 ‘낙스트라’를 공개하고 연말부터 전기차용으로 양산한다고 밝혔다.
나트륨이온 배터리는 LFP 배터리보다도 원재료 가격이 저렴하면서 안전성이 뛰어나고, 충전 속도가 빨라 유망한 신기술로 주목된다.
미국 하원에서 지난 22일(현지시간) 인플레이션감축법(IRA)상 전기차 구매에 대한 세액공제를 내년 말까지만 지속하도록 가결한 것도 한국엔 악재다.
이런 분위기 속에 27일 한국배터리산업협회가 대선 정국이 한창인 정치권에 업황 개선을 도모해 달라는 내용의 건의서를 전달하는 등 위기감은 고조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선 현 상황에 대한 지나친 비관론은 금물이라는 분석도 내놓는다.
연초 이후 유럽에서 전기차 판매 강세가 이어지는 등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에도 성장세 자체는 유지되고 있어서다.
국내 3사가 전기차 배터리의 폼팩터(form factor·하드웨어 형태) 다변화로 수요처를 늘리고 있어 저점을 찍고 분위기가 반전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기존 원통형과 파우치형에서 진일보한 기술의 배터리를 양산할 준비를 했다”고 전했다.
LG에너지솔루션이 글로벌 2차전지 업계 최초로 오창 공장에 양산 체제를 갖춘 46파이(지름 46㎜) 배터리는 고객사인 테슬라(미국) 전기차에 탑재될 예정이다.
이 배터리는 원가 경쟁력이 뛰어나고 다양한 높이로 전기차 외에도 전동공구나 마이크로 모빌리티 등에 탑재할 수 있어 게임 체인저로 주목된다.
ESS 등 다른 수요처를 향한 사업 다각화도 힘이 될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분기 중에 미국 미시간공장에서 ESS용 LFP 배터리를 생산한다는 목표를 세웠고 SK온과 삼성SDI 역시 북미 거점을 기반으로 ESS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이안나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 제조업 위축 가능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어 (미국에 공장을 둔) 한국 2차전지 기업에 불리한 정책만 펼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상황이 점진적으로 개선될 여지가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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