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를 살펴보는 입장에서 올해 전반기는 오징어의 심기를 잘 달랜 시기였다.
5월 하순 동해안의 해수온은 평균보다 1.2℃ 낮았다.
그러나 서늘한 한반도 바다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6월10일 강원 강릉시 주문진항 어판장에서 어민들이 채낚기 어선이 잡아 온 오징어를 선별해 상자에 담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5~6월은 신나는 달이었다.
오징어에게는 그랬다.
(오징어 입장에서) 최근 두어 해 초여름 물 온도가 불쾌하게 느껴져서 한반도 동쪽 바다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는데, 올해는 비교적 살 만했다.
살갗을 익힐 것 같던 뜨끈한 물이 남쪽에서 덜 밀려왔고, 이를 피해 낯선 북극 부근 바다까지 피난 갈 필요도 없었다.
익숙한 바다에서 신나게 헤엄쳤다.
어선에 잡혀 마리당 8000원에 회 접시에 오르기 전까지. 6월 초, 연휴를 이용해 방문한 강원도 속초와 양양, 주문진 항구는 활기찼다.
어민들마다 “오징어가 돌아왔다”라고 입을 모았다.
원래 4~5월 금어기 이후는 오징어가 한창 잡혀야 할 시기다.
그런데 2020년대 이후 오징어 어획량이 크게 줄었다.
지난해에는 특히 심해서 오징어 씨가 말랐다는 말이 돌았다.
올해도 금어기 직후엔 잘 잡히지 않아 어민들의 걱정이 컸다.
하지만 5월 중하순부터는 다시 잡히기 시작해 6월 초까지의 어획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2% 증가했다.
항구에 활기가 돌 만했다.
초장을 찍어먹으며 오징어의 신난 기분을 상상했다.
수시로 바다 온도 데이터를 살펴보는 입장에서, 올해 전반기는 오징어의 심기를 잘 달랜 시기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최근 들어 가장 서늘했다.
5월 평균 수온을 보면, 한반도 주변 바다의 온도 풍경은 제법 다채롭다.
제주 남쪽의 20℃부터 동해 북부의 7℃까지 13℃가 넘는 큰 온도 차를 보인다.
오징어는 15~23℃ 바다에서 잘 자라는데, 그에 해당하는 바다가 강원도 동쪽에 펼쳐졌다.
기상청 ‘해양 기상·기후정보’ 자료에 따르면, 5월 하순 동해 중부의 평균 해수온이 딱 15.1~17.2℃였다.
최근 10년 평균보다 1.2℃ 낮은 온도였다.
이 지도를 조금 바꿔보면 올해의 특별한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 1〉은 한반도 인근 바다의 수온을 최근 30년(1991~2020년) 같은 달 평균과 비교한 인포그래픽 지도이다.
온도가 떨어졌으면 파랗게, 올랐으면 빨갛게 바꿔 칠했다.
온도 차이가 클수록 진하게 칠했다.
<그림 1> 한반도 인근 바다의 최근 30년(1991~2020년) 5월 평균과 올해 5월 수온 차이를 표시한 지도. 온도가 떨어졌으면 파랗게, 올랐으면 빨갛게, 온도 차이가 클수록 진하게 칠했다.
©윤신영 한반도 가까운 바다 상당 부분이 온도가 흰색~옅은 파란색 분포로 돼 있다.
연근해가 최근 다른 해에 비해 서늘했다는 뜻이다.
최근 두 해 동안 보지 못했던 양상이다.
한반도 주변 바다는 2023년 이후 거의 모든 달, 평년보다 매우 뜨거웠다.
예를 들어 추석 연휴까지 폭염이 기승을 부렸던 지난해의 경우, 같은 기준으로 지도를 그리면 8월과 9월 이 지도는 온통 붉게 나타났다.
평년에 비해 최대 4℃ 이상 높은 곳이 수두룩했다(〈그림 2〉 참조). 4℃면 미지근한 물(38~39℃)과 목욕탕 열탕(42~44℃)의 온도 차이와 비슷하다.
오징어가 화들짝 놀라 도망가지 않고 버티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림 2> 한반도 인근 바다의 2024년 8~9월과 최근 30년(1991~2020년)의 같은 기간 평균 수온 차이를 표시한 지도. 온도가 떨어졌으면 파랗게, 올랐으면 빨갛게, 온도 차이가 클수록 진하게 칠했다.
©윤신영 아열대가 되어가는 한반도 바다 올해 봄 반짝 수온이 내렸지만, 이런 상태가 그리 오래가지는 못할 듯하다.
6월 국립수산과학원에서 발표한 2025년 여름철 수온 전망에 따르면, 올해 여름에는 남해와 서해 연안을 중심으로 수온이 평년 평균보다 약 1℃ 정도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름철 북태평양 고기압이 강화되고 범위가 넓어지면 폭염이 잦아지고, 이에 따라 바닷물도 비정상적으로 따뜻해진다.
올해도 이런 상황을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5월까지는 바다가 비교적 서늘했는데 여름이 되자 급격히 평년보다 따뜻해진다니, 조금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다.
바다 온도는 대기에 비해 서서히 오르고 내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반도 주변 해수면 온도 동향을 고려하면 가능한 이야기다.
1940년 이후 한반도 주변 바다 온도 평균을 월별로 구해보면, 특히 여름과 가을에 해당하는 달의 수온이 최근 유독 급격히 치솟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순히 계절적 기복이나 변덕 때문이 아니다.
기후변화의 장기 흐름과 관련이 있다.
해수면 온도가 꾸준히 올라가면서 한반도 주변 바다 전체가 아열대화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계절 변화가 뚜렷한 해역에선 이런 변화가 생태계 전체에 큰 파장을 줄 수 있다.
월평균 수온을 최근 30년 평균과 비교한 뒤 그 정도를 타일의 색으로 표현하면 히트맵이라고 부르는 그래프를 그릴 수 있다.
가로가 연도, 세로가 월이며, 온도가 평년보다 높으면 빨간색, 낮으면 파란색으로 해당 칸을 칠한다.
〈그림 3〉은 한반도 인근 바다의 수온을 표시한 히트맵이다.
과거(왼쪽)에는 현재보다 낮은 수온(파란색)이 더 많았지만, 2000년대 이후 평년보다 높은 수온(빨간색)이 늘었고, 2020년 이후로는 거의 모든 달이 빨간색으로 칠해졌음을 알 수 있다.
최근 얼마나 급격히 바다가 뜨거워졌는지 알 수 있다.
특히 세로축의 월을 보면 가운데에서 약간 위(7~9월)의 빨간색이 특히 짙음을 알 수 있다.
지난해엔 11월까지 그 추세가 이어졌다.
<그림 3> 한반도 인근 바다의 월평균 수온을 최근 30년 평균과 비교한 뒤 그 정도를 타일의 색으로 표현한 히트맵. 최근 얼마나 급격히 바다가 뜨거워졌는지 알 수 있다.
©윤신영 바다 온도의 급격한 변화는 바다 생물에게는 여러 가지로 재앙이다.
우선, 양식 어류는 온도 상승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면역력이 떨어지고 폐사 확률이 높아진다.
바닷물 온도가 평소보다 1~2℃만 높아도, 예민한 어종은 제대로 먹이를 먹지 않거나 질병에 걸리기 쉽다.
산소 농도도 떨어지기 때문에 생물이 살아가기 더 어려워진다.
양식장에서는 산소 공급장치나 차광막을 설치해야 한다.
오징어처럼 양식하지 않는 어종은 떠난다.
떠난 자리는 다른 어종이 대신 차지한다.
최근 한반도 주변 바다에서는 이런 변화가 눈에 띌 만큼 뚜렷하다.
국립수산과학원이 동해안에서 정치망 조업을 분석해 지난달 발표한 결과를 보면, 방어, 전갱이, 삼치 등 따뜻한 물에 사는 어종(난류성 어종)의 비율이 최근 5년 사이에 급격히 늘었다.
예전에는 주로 경북 해역에서 많이 잡히던 방어가 이제는 강원 고성까지 서식 범위를 넓혔다.
심지어 고성 정치망 어획량에서 방어가 21.6%로 1위를 차지할 만큼 주류가 됐다.
서식 가능한 수온이 유지되는 구간도 5~10월이었는데, 이제는 12월까지로 늘어났다.
경북 울진 역시 전갱이가 우점종이 되는 등 어종 지도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하코다테 정어리 떼죽음의 비밀 너무 급격한 수온 변화는 바다 생물의 떼죽음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2023년 12월 초 일본 홋카이도 하코다테 부근에서 정어리와 고등어가 떼죽음을 당했다.
해안에 죽은 물고기가 1200t 이상 떠밀려와 화제가 됐다.
뉴스를 보자마자 떠오른 생각이 있어 동해와 북태평양의 수온을 살펴봤다.
그즈음 일본 북동부를 포함한 북태평양은 전 세계에서 수온이 가장 급격히 오른 수역이었기에 매달 수온 지도를 그리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림 4> 일본 북동부를 포함한 북태평양의 1940년 12월9일과 2023년 12월9일의 수온 차이를 표시한 지도. 붉을수록 바다가 뜨거워진 곳이다.
©윤신영 뉴스가 나온 시점인 2023년 12월9일의 해수면 온도를, 데이터를 얻을 수 있던 가장 먼 시점인 1940년 같은 날과 비교해봤다.
빨간 부분이 84년 사이에 온도가 오른 지역인데, 가장 높은 곳은 무려 13℃ 이상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그림 4〉 참조). 목욕탕 냉탕(18℃)을 온탕으로 바꿀 온도차다.
그런데 바로 그 중심이 하코다테였다.
지도에서 빨간색이 가장 진하게 표시된 지역이다.
혹시 일시적인 일일까 싶어 직전 달인 11월 월평균 전체를 비교해봤을 때도 양상은 같았다.
당시 일본 전문가들은 방어 등 포식자에게 쫓기던 정어리 떼가 좁은 바다에 갇혔거나, 급격한 수온 저하로 쇼크에 빠져 폐사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수온 지도를 보면, 반대로 수온이 특정 지역에서 급격히 올라 바다 생물이 스트레스를 받았을 가능성을 떠올리게 된다.
바닷물 온도가 갑자기 오르면 용존 산소를 줄여 물고기 떼죽음을 일으킬 수 있다.
저 날 무수한 바다 생물의 떼죽음을 일으킨 정확한 원인은 아직 모른다.
다만 그 시기는 하필 그 좁은 해협의 수온이 극적으로 변했던 때와 일치한다.
적응하지 못한 종이 돌연사했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지난 뉴스에선 그게 정어리와 고등어였다.
하지만 다른 어떤 종이 비극의 주인공이 되더라도 역시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냉탕과 온탕 사이, 오징어의 반짝 귀환 [데이터로 보는 기후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