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서귀포시 ‘어떤바람’ 책방에서 6월14일 열두 번째 ‘찾아가는 독자위원회’가 열렸다.
12·3 쿠데타와 함께 시작된 정기 모임에서 〈시사IN〉은 이야기의 불쏘시개가 되었다.
6월14일 ‘찾아가는 독자위원회’에 참석한 독자들이 ‘어떤바람’의 식구인 산방이와 함께 섰다.
©시사IN 박미소 2024년 12월4일 아침은 어수선했다.
전날 밤 윤석열의 쿠데타 시도로 민주주의는 크게 덜컹거렸고, 아침을 맞은 사람들의 마음에는 불안이라는 무거운 짐이 쌓였다.
제주도에 살고 있는 안민정씨의 마음도 그랬다.
누군가와 풀어놓고 말하고 싶었다.
지금의 상황을, 지금의 마음을. 그날, 그의 발길이 제주도 서귀포시 서남쪽 최남단 사계리로 향했다.
마을 한편에 담쟁이넝쿨이 외관을 뒤덮은 작은 서점이 있다.
책방지기 김세희·이용관씨 부부가 운영하는 동네서점 ‘어떤바람’이다.
당장 여의도 국회 앞으로 뛰어나가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480㎞ 떨어진 그곳까지 달려가기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너무 컸다.
안민정씨처럼 마음은 광장에 있지만, 멀리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동네서점에 모여 세상 이야기를 시작했고, 이는 이윽고 정기적인 모임으로 발전했다.
한 달에 한 번, 〈시사IN〉을 함께 읽으며 세상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올해 1월4일부터 어떤바람에서 시작됐다.
6월14일 오후 5시, 삼삼오오 모여드는 사람들을 어떤바람의 마스코트인 반려견 ‘산방이’가 반갑게 맞이했다.
산방이는 사계리 북쪽에서 마을을 굽어보는 마을 뒷산 산방산에서 이름을 따왔다.
볕이 잘 드는 사계리의 늦은 오후, 어떤바람에서 6월 독자 모임이 시작됐다.
안민정씨와 책방지기 부부 외에도 김도태·김두석·김형철·박경규·윤주영·이상희·이용관·이재상·최유진(가나다순) 독자가 함께했다.
6월14일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에 위치한 ‘어떤바람’ 한편에서 ‘찾아가는 독자위원회’가 진행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이번 모임은 ‘내란의 공간’을 다룬 〈시사IN〉 제921호부터 새 정부 출범 직전까지의 뉴스를 담은 제924호가 리뷰 대상이었다.
찾아가는 독자위원회(찾독위)가 열린 이날은 이미 대선이 끝나고 새 정부가 출범한 시점이었지만, 한 달 만에 모인 독자위 멤버들은 대선 과정 전반을 리뷰했다.
어떤바람에서 진행하는 독자 모임은 내란의 시작과 함께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6·3 대선 직후인 이번 독자 모임은 2025년 상반기 결산과 같았다.
모임에 참석한 독자들은 대선 결과부터 각자 읽은 책 이야기, 평소 느끼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고민까지 폭넓은 대화를 이어갔다.
대선 전까지 쿠데타를 비롯한 각종 정치 뉴스가 주로 〈시사IN〉 커버스토리를 채웠다.
이날 모인 독자들 사이에서 특히 ‘공감’과 ‘감동’이라는 평가가 많이 나온 기사는 제922호 커버스토리 ‘1980년 광주가 2025년 광장에게’였다.
이상희 독자는 “아이들을 케어하는 버스 이야기, 주먹밥을 떠올리는 독자까지. 저는 이 모든 게 기적처럼 느껴졌다.
경쟁이 치열한 한국 사회에서 그런 마음을 가진 분들이 있다는 데에 위로받는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안민정 독자도 “1980년 광주에서 시민군으로 항쟁하다 눈을 잃은 김태윤씨가 계엄 뉴스를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는 말에 눈물이 났다.
‘싸워본 사람이 또 싸워야 한다.
젊은 사람들이 죽으면 안 된다’는 대목에서 나도 더 책임 있게 생각해야겠다고 다짐했다”라고 말했다.
대선 의제를 다룬 제924호에 대해서도 호평이 따랐다.
그중에서도 김다은 기자가 쓴 ‘성평등 의제 후퇴, 일시적 현상일까?’ 기사가 이날 찾독위에서 화젯거리였다.
자리에 함께한 독자 대부분은 대선 승리를 위해 각 정당이 성평등 의제를 회피하는 모습을 크게 우려했다.
집권을 위한 ‘성평등 의제 축소 기조’가 집권 이후로도 이어질까 봐 걱정스럽다는 반응도 뒤따랐다.
윤주영 독자는 “성평등 공약이 없다면, 장애인·성소수자·이주노동자·결혼이민여성 등 약자에 대한 폭력을 (대선에서) 드러낼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라며 여성정책에 대한 부재가 단순 젠더 문제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수자에 대한 고민을 일축시킨다고 지적했다.
사고로 중도 시각장애를 갖게 된 김두석 독자도 자신의 경험에 빗대며 이렇게 말했다.
“비장애인이었다가 장애인이 되어보니, 장애인은 정말 소수이고, 표를 얻으려는 사람들이 무시하는 집단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반은 여자인데, 그런 사람들조차 포용하지 않는다는 건 이해되지 않았다.
” ‘어떤바람’에 모인 독자들에게 <시사IN> 기사는 이야기의 부싯돌 역할을 했다.
©시사IN 박미소 어떤바람에 모인 독자들에게 〈시사IN〉 기사는 이야기의 목적이라기보다는 부싯돌에 가까웠다.
하나의 기사가 던진 화두를 다양한 갈래로 이어가며 대화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내란에 관한 기사를 이야기하는 동시에 서로가 추천하며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식이다.
이날도 내란 관련 이야기를 나누던 중 캐시 박 홍의 〈마이너 필링스〉가 화두에 올랐다.
김형규 독자는 “내란을 겪으며 공화정 내에서 (내란에도 불구하고 내란 세력을 옹호하는) 일부 시민들이 어쩌면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지배계급으로 올라가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암암리의 심리도 있었던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이상희 독자도 〈마이너 필링스〉의 한 대목을 언급하며 “느끼지 않아도 되고, 몰라도 되는 것이 권력이라고 하지 않나. 비록 백인 사회에서 유색인종이 느끼는 것과는 다르겠지만, 한국 사회에서 ‘마이너 필링스’로 느끼는 감각들이 대선 이후 우리 사회가 주목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격’이 있는 질문을 던질 기회 대선 직전까지 정치 뉴스가 주가 된 언론보도 구조에 피로감을 표하는 독자도 있었다.
이재상 독자는 “정치가 머리를 아프게 할 때가 많다.
중요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정치 기사를 접할 때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자고 일어나니 대선후보가 바뀌어 있던 것처럼 이슈를 따라가기도 어렵다.
내용은 무겁고 답은 정해져 있는 느낌이다.
점점 정치 기사 전반에 마음이 닫히는 것 같다.
그래서 무거운 마음으로 커버스토리를 읽고 나면 오히려 후반부 문화면 기사가 마음에 와닿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이재상 독자의 지적대로, 다른 독자들 역시 커버스토리 외에 내란에 국한되지 않은, 내란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주목해야 할 장면을 포착한 기사에 좋은 평가를 남겼다.
김세희 대표는 제921호에서 나경희 기자가 쓴 ‘탈시설 당사자는 왜 종탑에 올랐나’ 기사를 언급하며 “저에게 ‘질문을 던진 기사’였다.
비슷한 의미로 고립·은둔 청년의 사진 치유 워크숍을 다룬 신선영 기자의 기사도 인상적이었다”라고 평했다.
6월14일 제주도 서귀포시 ‘어떤바람’ 책방에서 열린 ‘찾아가는 독자위원회’에서 한 독자가 <시사IN> 잡지를 살펴보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제924호에 실린 나경희 기자의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 기사도 특히 이날 찾독위에 모인 독자들에게는 중요한 소식이었다.
제주도에서는 특히 항공 사고에 대한 감각이 다른 지역에 비해 남다르다.
물리적으로 다른 지역과 접하기 위해서는 항공편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재상 독자는 “하필 계엄 직후 참사가 발생해서 참사 유족들의 목소리가 사회에 전달되지 않고 있다.
이 기사는 그 목소리를 다룬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었다”라며 시의적절했다고 평했다.
이날 찾독위에는 제주에서 나고 자란, 제주 토박이 독자들이 〈시사IN〉에 보내는 격려도 접할 수 있었다.
김형철 독자는 “정서적으로 고립되기 쉽고, 오염된 레거시 미디어나 유튜브 정보에 노출되어 지낼 가능성이 높았다.
〈시사IN〉이라는 잡지는 답을 준다기보다는 ‘격’이 있는 질문을 던지며 답을 스스로 찾게끔 한다.
물론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도 있지만, 다양한 생각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이 〈시사IN〉의 장점이고, 이런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이런 자리가 좋다”라고 지적했다.
※열세 번째 찾아가는 독자위원회는 8월8일 인천 ‘나비날다책방’(@kesime1019)에서 열립니다.
올해 하반기 중 강원도 동해시·광주광역시 등에서도 모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시사IN〉 독자 모임을 만들어보고 싶은 동네서점, 혹은 이미 〈시사IN〉 읽기 모임을 하고 있는 단체의 신청도 환영합니다(문의: ilhostyle@sisain.co.kr). 6월14일 제주도 서귀포시 ‘어떤바람’ 책방에서 열두 번째 <시사IN> ‘찾아가는 독자위원회’가 열렸다.
©시사IN 박미소
480㎞ 떨어진 마음에도 광장이 일렁인다 [찾아가는 독자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