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양곡관리법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됐다.
”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불과 반년 사이 입장을 180도 바꿨다.
장관직이 유임된 이후의 변화다.
6월30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송미령 유임 철회! 내란농정 즉각청산’ 전국농민결의대회가 열렸다.
©시사IN 신선영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포함한 농업 4법은)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네 가지 법, ‘농망(農亡) 4법’이다.
” 윤석열 정부 당시였던 2024년 11월,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양곡법 등 농업 4법 개정에 단호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랬던 송 장관이 이재명 대통령이 그의 장관직 유임을 발표한 이후인 6월30일 “이제 양곡관리법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됐다”라며 입장을 180도 바꿨다.
6월25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 회의에선 ‘농망 4법’에 대한 자신의 표현을 사과했다.
“‘농망법’이라고 한 것에 대해 현장 농업인들 입장에서 상당히 마음 아프게 느껴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 그러면서 재추진 의사를 밝혔다.
“가장 중요한 건 유연한 실용주의이고, 국가 책임의 농정, 국민 먹거리 제공이다.
(이재명 정부) 국정 철학에 맞춰 쟁점 법안과 정책을 전향적으로 재검토하겠다.
”
이틀 뒤인 6월27일 송 장관은 국회 당정협의회에서 농업법 개정 대상을 4법에서 6법으로 확대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기존 농업 4법 개정안의 대상은 ‘양곡관리법’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 ‘농어업재해대책법’ ‘농어업재해보험법’이었다.
이에 ‘필수농자재국가지원법’과 ‘탄소중립에 따른 한우산업 전환 및 지원에 관한 법률(한우법)’ 제정을 추가했다.
이 중 재해 관련 법안 두 개는 여름철 농업재해에 대응해서 7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양곡법과 농안법은 본격적인 쌀 수확기 전인 8~9월에 개정할 계획이다.
송미령 장관 유임에 대한 농업 관련 단체들의 입장은 첨예하게 갈린다.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농축산부 소관의 사단법인)가 주축이 된 6개 농업단체 연합 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한종협)는 ‘송미령 장관의 유임을 환영한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한종협은 2022년 당시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관리법 개정에 재검토를 요구한 단체다.
한국낙농육우협회 등 21개 농축산단체로 구성된 한국농축산연합회(농축연) 역시 성명서에서 “송 장관의 과거 발언을 계속 제기하며 소모적 논쟁을 지속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며 “그가 어떻게 국회·농민단체와 소통하며, 일하는지 지켜볼 때다”라고 송 장관의 유임을 지지했다.
농업 4법, 뭐가 달라졌나
그러나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을 주축으로 8개 농업단체가 연합한 ‘국민과함께하는 농민의길(농민의길)’은 ‘송미령 장관 유임’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전농 하원오 의장은 6월25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송 장관 유임 결정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트랙터 상경 시위를 불사하겠다”라고 경고했다.
닷새 뒤에 농민의길 주최로 열린 집회에서 그는 말했다.
“송미령은 농식품부 장관으로 있는 동안 농촌과 농민을 살리기 위해 대책을 마련하기보다 쌀 재배면적을 강제로 감축하는 등 농민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정책만을 일관해온 사람이다.
윤석열과 함께 내란의 공범으로 탄핵되어야 마땅한 자가 유임되는 것이 말이 되느냐.”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7월1일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송미령 장관이 농업 4법 통과로 태도를 바꿨지만, 상당수 농민단체가 그를 반대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기존 안과 달리 법안에 ‘조건’이 달렸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당시 정부는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관리법 원안을 거부했다.
당시 민주당 원안의 핵심은, 쌀이 과잉생산되거나 쌀값이 너무 떨어지는 경우 정부가 일정한 가격으로 모두 사들여 농민들의 수익을 보장하자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된 당정(민주당과 이재명 행정부) 합의안은 좀 다르다.
미리 쌀 재배면적을 조정해서 ‘필요한 만큼’만 쌀을 생산하도록 만들겠다고 밝혔다.
농안법 개정안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당의 애초 개정안엔 농산물 가격이 미리 설정한 기준가격보다 낮아지는 경우, 그 차액을 정부가 지급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이 또한 과잉생산(농산물 가격 하락의 원인 중 하나)을 사전에 억제하는 쪽으로 초점을 다시 맞췄다.
애초 개정안에는 500여 개가 넘는 농산물에 보편적으로 법안이 적용되도록 설계되었으나, 당정은 마늘·양파·배추·포도·콩 등 15개 품목(농민이 가격 및 수확량 하락에 따른 손실에 대해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항목)부터 농안법에 따른 가격안정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송미령 장관이 ‘농사 열심히 짓는 분들이 손해 보는 법’이라고 표현했던 농어업재해보험법과 농어업재해대책법은 어떨까.
현행 농어업재해보험법에선 농민들이 자연재해로 보험금을 받으면 그다음 해부터 더 많은 보험료를 내도록 규정되어 있다(자동차보험도 그렇다). 이와 달리 민주당이 내놓은 기존 개정안은 ‘모든 자연재해’로 인한 보험금 수령이 보험료 인상(할증)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규제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지난해 12월19일 한덕수 권한대행은 이를 ‘재정 부담을 키우는, 보험의 기본 원리를 무시하는 법안’이라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번 당정 협의에서 농림축산부는 법안을 통과시키되 보험료 할증을 줄이는 자격을 ‘모든 자연재해’에서 ‘회피·예측이 어려운 일정 수준 이상의 재해’로 좁히는 방안을 제시했다.
농가들로서는 불만을 표시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애초에 내놓은 농어업재해대책법 개정안은 자연재해로 피해를 본 농민들이 재해 직전까지 투입한 생산비 전부 또는 일부를 보전받는 내용이었다.
윤석열 정부 당시 송미령 장관은 이 개정안이 ‘농어민들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번 당정 협의에서는 ‘보험 가입 농가와 비가입 농가, 보험 대상 품목과 비대상 품목 간 형평성을 고려해 재해 피해를 본 농가를 지원하겠다’라는 방향을 밝혔다.
‘도덕적 해이’에 대한 질타에서 많이 물러난 입장이다.
서울대 농경제학부 김한호 교수는 기존 민주당의 개정안보다 당정 협의에서 변경된 내용이 합리적이라고 봤다.
“통계상 매년 쌀 수요량보다 공급량이 많았다.
재배면적을 감축하는 사전 조치가 없는 기존 양곡법의 경우, (정부가 초과생산되는 쌀을 모두 무조건 매입해야 하므로) 현실성이 떨어졌다.
이번에 당정 협의에서 논의된 (재배면적의 조정을 고려한)농업 4법이 이전 법안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타당하다.
”
국회입법조사처 산업자원농수산팀 김규호 입법조사관은 “재배면적 축소라는 사전조치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지만, 사실 핵심은 농산물 가격 안정제다.
쌀을 포함한 농산물 가격의 변동성을 줄이는 게 목표인데, 농산물 가격 안정제를 중심으로 어떻게 최대한 많은 품목을 포괄하면서 설계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그래야 쌀을 비롯한 농산물 수급과 가격 안정 면에서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상당수 농업단체는 송미령 장관의 유임에 대한 입장과 비슷하게 당정 협의 이후 변경된 개정 농업법 방향에 대해 다른 입장을 보인다.
송미령 장관의 유임을 환영하는 성명을 낸 바 있는 한종협 강정현 집행위원장은 “송 장관은 농촌에 애정을 가지고 기반 시설을 마련하기 위해 농업단체와 적극적으로 소통을 해왔다.
당정이 협의한 내용들은 구체적인 내용을 검토한 후 입장을 밝히겠다.
송 장관에게 앞으로도 기대가 크다”라고 말했다.
이와 달리 농민의길 소속 단체인 전농 권혁주 사무총장은 “당정 협의로 변경된 조항들은 기존 법안의 개정 취지나 정신을 훼손한 후퇴 법안이다.
원안으로 통과시키고, 송미령 장관의 유임을 철회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국회입법조사처 김규호 입법조사관은 “정부가 약속한 쌀 시장 격리가 적시에 이행되지 않는 등 농정 당국과 농업계 사이에 쌓여온 불신이 요 몇 년 사이 굉장히 크다.
‘쌀이 남아돈다’는 식의 발언을 지양하고 계속 소통을 시도하면서 농민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를 극복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농망법’ 발언 사과했지만, 아직 논밭에 쌓인 불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