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서울보다 큽니다.
전국 곳곳에서 뉴스를 발굴하고 기록하는 지역 언론인들이 한국 사회가 주목해야 할 소식을 들려드립니다.
‘전국 인사이드’에서 대한민국의 가장 생생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지난해 1월8일 강원도 삼척 도계광업소의 모습. 오는 6월 말 폐광을 앞두고 있다.
©연합뉴스 목 뒤 10㎝ 세로줄, 석공병원에서 꿰맨 상처. 쌕쌕거리는 숨소리, 젊은 시절 탄광 노동의 흔적. 집 앞 가득 쌓아놓은 소주 궤짝, 쇠락한 지역이 남긴 자국. 탄광 지대인 삼척 도계에 사는 김주익씨(가명·84)의 몸과 삶이다.
“냇물도 새까맸던 시절부터 도계서 일했지. 그때는 지역에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데. 아파도 병원도 못 가는 신세가 될 줄이야.” 할아버지는 이내 주름진 이마를 짚었다.
누군가 ‘지방 소멸’의 정의를 묻는다면, 나는 내가 본 몸과 삶들에 대해 말해야 한다.
주름진 목 뒤 크게 꿰맨 상처와,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쌕쌕’ 소리가 나는 숨과, 술 없이 살 수 없게 된 시간. ‘지방 소멸’이라는 단어로 위장한 불평등의 권력은 이런 식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지금 폐광지로 불리는 강원 남부는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거대한 탄광을 중심으로 사람과 물자가 모여드는 중심지였다.
한때 ‘강아지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까지 돌았던 곳이지만, 이내 석탄 채굴이 사양산업으로 돌아서자 탄광은 하나둘 폐광 수순을 밟았다.
주민들에게 탄광은 숱한 사고와 상처를 안겼지만 동시에 일할 자리이자 삶과 지역을 지켜주던 중심이었다.
중심이 떠나자 마을 사람들도 떠나고 학교도, 우체국도, 병원도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지금 주민들의 아픈 몸과 회상, 한탄에는 어제의 일과 삶이 남기고 간 흔적이 여전히 스며 있다.
이뿐일까. 젊음을 바쳐 한국의 경제발전을 이끌었다는 자부심, 그러나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오른 오늘날에는 산업과 일자리마저 수도권에 뺏겨버렸다는 분노도 있다.
그래서 2025년 봄, 삼척은 연일 ‘투쟁 중’이다.
이곳의 대표적 탄광인 도계광업소는 6월 말 폐광을 앞두고 있다.
주민들은 대체 산업 유치와 실직에 따른 대책을 요구하며 연일 길거리로 나선다.
비록 사회적 변화에 따른 산업 변동을 막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역에서 삶과 노동이 이어지게 해달라는 것, 그리고 주민들이 노동으로 일군 지역과 일상이 ‘소멸’하지 않게 해달라는 것. 주민들이 나서는 이유다.
‘지방 소멸’에 맞서는 유일한 방법 “산업 구조조정은 곧 계급 구조조정의 과정이다.
” 영국 페미니스트 지리학자 도린 매시는 1983년 논문에서 영국의 탄광지역 쇠퇴를 추적 연구하며 이렇게 말했다.
매시의 지적은 ‘폐광 이후’ 주민들이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지역에 주어져야 한다는 뜻을 훌쩍 넘어선다.
일자리를 통해 생산하고, 지역에 투자하며, 이 과정을 통제하는 기능이 지역 노동자에게 있어야만 한다는 제안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소멸’에 맞서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지역의 관점에서, ‘지방 소멸’을 다시 생각해본다.
지방 소멸을 우려한다며 여러 대책이 나오더라도, 그 시좌(視座)가 주민의 삶을 향하고 있지 않다면 자극적인 수사로 그칠 뿐이다.
주민의 삶을 지탱하는 토대, 노동을 위한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노동은 지역을 지지하고, 사회를 떠받치는 분명한 근간이다.
그리고 지역을 일궈온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노동자 주민이다.
서울의 특권을 나눠 좋은 일자리를 지역으로 옮기기, 그리고 직장을 민주적인 일터로 만들기. ‘지역’을 앞세운 100가지 연구와 정책보다 효과적인 방법이, 여기에 있다.
2025년 봄 삼척은 연일 ‘투쟁 중’ [전국 인사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