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런 법이 어딨어.” 우리가 자주 하고 듣는 말. 네, 그런 법은 많습니다.
변호사들이 민형사 사건 등 법 세계를 통해 우리 사회 자화상을 담아냅니다.
5월23일 대선후보 2차 토론회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김문수, 민주노동당 권영국,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왼쪽부터). ©국회사진기자단 대선후보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가 존재감을 보이자, 공직선거법의 한 조항이 화제가 되었다.
아직 지지율이 미약한 그가 거대 양당 후보와 나란히 설 수 있게 된 배경에도 관심이 쏠렸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은 전국 단위 선거에서 3% 이상을 득표한 정당이 추천하는 후보자를 토론회에 초청하도록 했다(제82조의2 제4항). 2022년 지방선거 광역의원 비례대표 선거에서 정의당(현 민주노동당)에 표를 던진 유권자들 덕에 우리는 2025년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진정한 의미의 ‘진보’ 후보가 활약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선거 관련 법에는 소수 정당의 존립과 발언권, 정치활동을 보호하는 장치가 있다.
선거에서 득표율이 2% 이상이면 정당 보조금을 지급하고(정치자금법 제27조), 3% 이상이면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며(공직선거법 제189조 제3항), 15% 이상이면 기탁금과 선거비용 전액을, 10% 이상이면 반액을 보전해주는(공직선거법 제57조, 122조의2) 제도 등이다.
극단적 양당 체제 키우는 토양 그럼에도 소수 정당에 던지는 표를 ‘사표(死票)’로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다.
‘최선만을 좇다가는 최악이 찾아온다’라거나 ‘같은 편끼리 싸우면 상대편만 웃는다’는 식의 협박성 훈계도 여전하다.
정치를 긴 호흡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선거를 일회성 제로섬 게임으로 여기는 단편적이고 편협한 사고가 아닐 수 없다.
그러한 사고를 양분 삼아 지금의 거대 양당 체제가 공고해졌다.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는 정치, 상대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것에 집중하는 정치가 가장 가성비 뛰어난 정치가 되어버렸다.
정책이나 이념 대결이 사라진 선거판은 단순한 권력투쟁의 장이 되었다.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의 삶과 고통을 살피는 정치는 자꾸 보류되다가 결국 사라질 판이다.
우리가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벼락같은 재난을 마주하게 된 것도 극단적 양당 체제와 무관하지 않다.
그가 대선후보이던 시절, 그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비난하는 것 말고 무엇을 했던가. 대통령이 되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한 전략과 태도만으로도 제왕적 권력을 쥐고 흔들 수 있는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가 자행한 12·3 내란 사태는 또 어떠한가. 강성 지지층과 맹목적 추종자들에게 둘러싸이고 상대를 악마화하는 정서에 사로잡혀, 합법은커녕 최소한의 합리성과 현실성조차 판단하지 못하는 행태의 극단이 아니었던가. 그러니 이번 내란 사태의 온전한 극복은 그 주동자와 동조자들에게 올바르게 정치적·사법적 책임을 지우는 과업 너머에 있다.
그러한 자들이 또 자라날 수 있는 토양을 제거해야 한다.
5월12일 민주노동당 권영국 대선후보가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선거를 단순히 선출직 공무원을 결정하는 이벤트에 그치게 해서는 안 된다.
민심의 세부 지형이 나타나는 장이 되도록 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간절한 목소리가 공론장에 스며드는 통로가 되게 해야 한다.
거대 양당이 독점해온 정치 담론의 경계가 허물어지게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표’라는 말도 폐기하는 것보다는 고쳐 쓰는 쪽이 좋겠다.
선거 결과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표가 사표인 게 아니다.
내 삶과 언어 바깥에 던져지는 표가 사표다.
후보 중 누가, 어느 당이 내 삶에 다가왔는지 보자. 나의 목소리에 누가 귀를 기울이는지, 내 불편이나 아픔에 누가 공감하는지 보자. 나와 내 가족, 내 이웃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할 수 있는 집단이 어느 쪽인지 보자. 그들에게 표를 던지자. 내 표가 살아 숨 쉬게 하자.
‘사표’를 살아 숨 쉬게 하는 방법 [세상에 이런 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