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이근 교사와 곽노근 교사는 아홉 살 차이 나는 교대 동기다.
2023년 7월, ‘서이초 사건’ 이후 교육 현실을 답답해하던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무기력 교사의 탄생〉으로 묶여 나왔다.
19년 차, 초등교사 권이근씨(51). 2023년 그는 학교를 떠나려 했다.
기자 생활을 잠시 하다 2003년 스물아홉 늦깎이로 교대에 입학한 그는 2007년 경기도 부천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 첫 발령을 받았다.
하지만 ‘시골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따라 2009년 자원해 충남 홍성으로 전출을 갔다.
교사의 전출입은 일대일로 매칭이 되어야 교육청 간 이동이 가능하다.
수도권으로 오려는 교사는 많아도 지역으로 내려가려는 교사는 드물다.
그는 전국교사연극모임을 하고 동시를 쓰며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에서 활동했다.
아이들과의 상담에 도움이 될 것 같아 타로를 배우기도 했다.
그런 그가 1년간(2024년) 자율연수 휴직을 신청하고 가족이 머무르는 캐나다로 떠났다.
교직을 떠나려는 마음이 컸다.
2021년, 권 교사는 ‘아동학대’ 신고를 당했다.
한 학생이 점심시간에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이 출동했다.
5교시 체육 수업을 하던 그는 빈 교실에서 조사를 받았다.
그날 저녁, 아이의 부모가 사과 전화를 해왔지만 ‘매뉴얼에 따라’ 경찰 조사, 지자체 아동복지과 조사를 받아야 했다.
그 일로 처벌을 받지는 않았지만 충격이 컸다고 한다.
1년 동안 주고받은 교육 편지를 책으로 묶은 권이근 교사(왼쪽)와 곽노근 교사. ©시사IN 조남진
억눌러왔던 감정이 올라온 건 2023년 7월, ‘서이초 사건’ 이후였다.
교육 문제를 다룬 시사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가슴이 떨렸다.
‘학교를 떠나야 하나’ 하는 마음에 자율연수 휴직을 신청한 그는 경기도 파주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교대 동기 곽노근 교사(42)를 떠올렸다.
아홉 살 어린 동기였지만 빡빡한 교대 시절에 큰 의지가 되었던 이고, 초등토론교육연구회,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실천교육교사모임에 참여하며 교육 문제를 깊이 고민해온 교사였다.
권 교사는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편지를 주고받으며 교육 문제를 풀어보자’고 곽 교사에게 제안했다.
곽 교사는 “형은 대학 시절 〈녹색평론〉을 들고 다니며 누구보다 대안교육, 혁신교육을 고민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아동학대’로 신고를 당한 현실이 충격적이었고, 교직의 끈을 놓을 것 같은 태도에 놀라 편지로 얘기를 하다 보면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까 해서 제안을 수락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편지는 2023년 10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1년 조금 넘는 동안 이어졌다.
초등학교 교실 안팎의 현실을 담은 그 교육 편지가 책 〈무기력 교사의 탄생〉(이매진 펴냄)으로 묶여 나왔다.
스승의날을 하루 앞둔 5월14일, 교사노동조합연맹은 전국 유·초·중·고·특수학교 교사 825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응답자의 58%가 최근 1년간 이직·사직을 고민했고, 그 이유로 77.5%가 ‘교권 침해 및 과도한 민원’을 꼽았다.
또 응답자의 90.9%가 ‘수업 연구보다 각종 행정 업무를 우선적으로 처리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설문 결과처럼, 두 사람은 실제 학교 현장이 교대에서 배운 것과는 매우 차이가 컸다고 말한다.
우선 행정 업무가 지나치게 많다.
초등학교 교사는 오후 4시30분에 퇴근한다.
아이들의 생활지도를 해야 하기 때문에 점심시간도 근무시간에 포함된다.
학생들 간 다툼은 학부모의 민원으로 이어질 수 있어 점심시간에도 아이들에게서 눈을 뗄 수 없다.
수업이 끝난 뒤 2시간~2시간30분 사이에 행정 업무 처리, 과제 점검, 다음 수업 준비를 마쳐야 한다.
새 학기가 되면 교사들은 업무 분장을 한다.
곽노근 교사가 업무 분장표에 있는 항목을 세어보았다.
130개였다.
교무행정실무사, 행정직원, 비교과 교사가 맡은 업무를 빼고 일반적으로 교사가 수행해야 하는 업무가 그 정도였다.
그 업무 분장표에는 학생 생활지도, 교육과정 연구 및 운영, 학생 평가 문항 작성 및 학교생활기록부 작성, 학부모 상담, 수업 등은 빠져 있었다.
권이근 교사는 ‘교내 CCTV 관리가 어떻게 교사 업무냐’고 행정실 직원과 다툰 일화를 들려준다.
곽노근 교사는 “공문 중심의 행정이 문제다.
수없이 공문이 오고, 그에 대응해 끊임없이 문서를 생산해야 한다.
소소한 일도 기안을 해서 올려야 하는데, 아무리 능숙해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 편지가 학부모에게 어떻게 읽힐까
학급 운영과 학생 생활지도는 현장에서 필요한 실전 지식이다.
그런데 교대에서는 관련 과목 비중이 매우 적다.
배우더라도 이론 위주다.
현장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에게 수업을 들을 기회가 없었다.
곽노근 교사는 최근 한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교감 뺨을 때린 아이’ 사건을 언급했다.
그는 “이런 일이 생기면 교사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학생의 팔을 잡는 걸 교사가 주저하게 된다.
그러다 멍이 들면 신고당할까 봐”라고 말했다.
곽 교사는 편지에서 ‘친절하며 단호한 생활지도’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요약하자면, 아이 마음에 공감하되 아이 행동 중 잘못된 점은 반드시 일러주고 책임지는 행동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 곽노근 교사는 “아이의 팔을 붙잡고 아이가 폭력 행동을 멈출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한 시간이건 두 시간이건. 서이초 사건 이후에 나온 ‘교원의 학생 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에 따르면, 이는 ‘정당한 학생 생활지도’에 해당한다.
그런데 ‘고시’ 수준에서 이렇게 보장한다고 하더라도, 아이의 부모가 ‘아동학대’로 신고해 벌어지는 일을 막지는 못한다”라고 말했다.
서이초등학교에서 숨진 교사의 49재인 2023년 9월4일, 학교 운동장에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시사IN 신선영
학교에는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을 중재할 시스템이 없다.
교사들이 민원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권이근 교사는 “교육활동 관련해 아동학대 고소 등이 벌어질 경우를 대비해 소송비를 지원하는 교직원 보험이 있을 정도다”라고 말했다.
“지금 현실이 그렇다.
무기력한 교원이 나올 수밖에 없다.
” 두 사람은 책 제목을 〈무기력 교사의 탄생〉으로 지었다.
두 사람의 편지는 ‘지금 교사의 현실’을 차분하게 되짚는다.
교사의 시각에서 본 ‘교사 편향’을 인정하면서도, 되도록 균형 잡힌 시선을 유지하고자 애썼다고 말한다.
곽노근 교사는 책 출간 이후 ‘위로가 되었다’는 지인 교사의 말을 들었다.
그는 이 교육 편지가 학부모에게 어떻게 읽힐지 궁금해했다.
2024년 11월, 권이근 교사는 편지에서 시골 학교로 복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전교생 30명, 한 학년에 한 반만 있는 작은 학교다.
1학년 때 가르친 아이들이 4학년이 되었고, 그 반 담임이 되었다.
학교에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권이근 교사를 보자마자 ‘보고 싶어 잠도 못 잤다’고 말했다.
그 말에 권 교사는 새 학년 첫날, 퇴근하고 돌아와 펑펑 울었다.
1년간 곽노근 교사와 나눈 편지가 그를 교실로 이끌었다.
그가 학교로 돌아왔다.
선생님을 다시 교실로 이끈 1년간의 ‘교육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