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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운데). ©사진공동취재단
이번 대선은 어쩌면 1970년대가 극적으로 교차하는 선거다.
고도성장 시절 소년공이었던 이재명과 노동운동가였던 김문수가 너무나 다른 모습으로 마주 섰다.
우여곡절 끝에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된 김문수는 우리 정치사의 미스터리이기도 하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노동운동, 민주화, 진보의 영역에서 헌신한 인물이 어쩌다 극우 세력으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는 대통령 후보가 되었을까. 변절이든 사상 전향이든 나는 그가 자신의 정치적 변신에 대해 그럴듯한 설명을 내놓는 걸 본 기억이 없다.
최근 공개된 청년들과의 대화 영상에서는 “나이가 들다 보니 과격한 변화보다는 점진적 변화를 좋아하게 됐다”라고 말한다.
그의 극우적 행보에 ‘점진적 변화’라는 말이 어울릴까. 같은 시기 민주화운동을 하다 보수정당에 뛰어든 이재오, 이우재 등과도 ‘변신의 질’이 다르다.
두 개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하나는 희망제작소 소장을 지낸 유시주씨가 과거 〈한겨레〉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유시민씨의 동생인 유시주씨는 1986년 인천 5·3 민주항쟁 직후 김문수가 보안사에 끌려가 전기고문으로 피오줌을 눌 때 함께 고초를 겪은 사이다.
“과거 함께 고생한 김문수 지사는 가끔 만나나요?”라는 질문에 유씨는 이렇게 답한다.
“1997년 대통령선거 때 김문수 의원이 김대중 후보를 불온한 자로 모는 걸 버스에서 듣고 토할 뻔했어요. (···) 빨갱이로 몰려 고생한 사람이 남에게 빨갱이 딱지를 붙이는 건 예의가 아니죠. 운동권 중에서 한 부류는 과거를 액자에 걸고, 다른 한 부류는 쓰레기통에 처박아요. (···) 그 연설 이후로 김문수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어요.” 또 하나는 2010년 SBS의 〈출세 만세〉라는 다큐멘터리에서다.
“언제 출세했다고 느끼느냐”라는 질문에 김문수는 “결재 도장을 찍을 때”라고 말했다.
당시 제주도의 숙소에서 돌도 안 된 딸아이를 토닥토닥 재우며 이 장면을 매우 인상적으로 보았다.
그 말을 할 때 김문수의 흡족했던 표정과 목소리가 또렷하다.
5월10일 김문수가 당원 투표 결과로 기사회생할 때 극우 보수 유튜브가 단결했다.
박근혜와 윤석열의 탄핵에 모두 반대한 김문수를 선택해야 한다며 동원령이 내려졌다.
이제 그는 명실공히 극우 보수의 아이콘이 됐다.
그는 지금 ‘출세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을까. 정치 행보가 어떻게 막을 내리든, 그는 두고두고 회자될 우리 시대의 ‘사례’다.
김문수에 관한 두 개의 인터뷰 [프리스타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