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었다.
또 SPC다.
5월19일 새벽 3시경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한 여성 노동자 A씨(55)가 가동 중인 기계에 윤활유를 뿌리던 중 냉각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사망했다.
사망사고가 발생한 경기도 시흥 SPC삼립 시화공장의 5월21일 모습.©시사IN 이명익 “(언니가) 회사 자랑을 많이 했어요. 대기업이라 복지가 좋다고. 가끔 힘들다고는 했지만 괜찮다고 하기에 진짜 괜찮은 줄 알았지. 이렇게 힘들고 위험한 직업이라는 걸 몰랐죠.” 사람이 죽었다.
또 SPC다.
5월19일 새벽 3시경 경기도 시흥시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여성 노동자 A씨(55)가 업무 중 사망했다.
5월20일 오후 5시40분 빈소 앞에서 만난 고인의 여동생(54)은 말했다.
“회사에서 어제 (유족에게) 죄송하다고 와서 사과했어요. 그럼 뭐 하나요. 사람은 가고 이제 없는데.” 고인의 딸은 “(엄마가) 10년도 넘게 같은 공장에서 일하셨어요. 주야간 교대를 하시니까 가끔 힘들다는 말만 했지 기계(가 위험하단) 얘기는 하신 적이 없었는데···”라고 말했다.
이번 사고는 크림빵 생산 라인의 냉각 컨베이어벨트에서 윤활 작업을 하다 A씨의 상반신이 끼여 발생했다.
냉각 컨베이어벨트는 높이 3.5m가량으로, 설비 프레임이 계속 돌아가면서 갓 만들어진 뜨거운 빵을 식히는 작업을 하는 기계다.
냉각 컨베이어벨트가 회전하려면 기계 바깥쪽에 별도로 장착된 주입구에다 식품용 윤활유를 넣어야 한다.
주입된 윤활유를 자동 살포 장비가 컨베이어벨트의 체인 부위에 뿌린다.
이처럼 자동 살포 장비가 있는데도, A씨는 기계 밑으로 기어 들어가 좁은 공간에서 수동으로 윤활유를 뿌려야 했던 것으로 보인다.
평소 공장에서 이 같은 형태의 작업이 상시적으로 이뤄졌는지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경기 시흥경찰서는 공장 측이 안전수칙을 준수하지 않아 사고를 막지 못했을 정황을 살펴보고 있다.
앞서 본 것처럼 윤활유 살포는 기계로 자동 작업이 가능한 데다, 만약 수동 작업이 필요하다 치더라도 기계 작동을 멈춘 상태에서 해야 하는데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찰은 A씨 동료들로부터 공장이 이른바 ‘풀가동’을 할 때는 냉각 컨베이어벨트에서 삐걱대는 소리가 나서,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안쪽으로 몸을 깊숙이 넣어 직접 윤활유를 뿌려야 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그동안 공장이 무리한 지시 또는 미흡한 사고 예방 조처를 내리진 않았는지, 해당 장비에 대한 안전 검사와 노동자 안전교육이 원칙대로 이뤄졌는지 살펴볼 계획이다.
5월20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공장 관계자를 형사 입건했다.
고인의 동료들이 지적한 ‘풀가동’의 배경에는 발주된 빵 물량을 채워야 한다는 압박이 존재한다.
포켓몬빵, KBO빵(SPC삼립이 한국야구위원회(KBO),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와 협업해 3월 출시한 빵) 등 인기가 폭발하는 빵의 생산량을 맞추려면, 잠시도 쉬지 않고 공장을 가동해야 한다.
빵 생산 작업이 연속 과정인 만큼, 정비가 필요한 기계 한 라인을 중단하면 사실상 연결된 라인 전체가 쉬어야 한다.
사고 위험이 있음에도 컨베이어벨트를 멈추지 못하는 이유다.
SPC 산하 공장 산재사고 3건의 공통점 2022년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산하 평택 SPL 공장 노동자인 김정석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SPL지회 수석부지회장은 말했다.
“3년 전 경기 평택 SPL 공장 사망사고, 2023년 10월 같은 공장에서 발생한 손가락 골절 사고와 이번 사건의 공통점은, 모두 끼임 사고였고 하나같이 기계 가동 중에 발생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위험한 기계라도 일단 세워놓으면 사고 날 일이 뭐가 있겠나.” 그는 “현장에서는 기계 라인을 멈추면 죽는 줄 안다” “평택 공장에서도 윤활유 주입 등 기계 정비 작업 중에 기계를 멈추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라고 증언했다.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안전관리학과 교수는 “기계 정비·보수를 할 때에는 반드시 운전을 정지해야 하고, 작업을 시행하는 노동자 외에 작업 지휘자를 두도록 법에 규정돼 있다.
불가피하게 기계 작동 과정에서 작업을 시행해야 한다면 비상시에 노동자가 기계를 정지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사고는 이 세 가지 모두가 안 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5월21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조정식 의원(오른쪽)이 시흥 SPC삼립 시화공장을 방문했다.
©시사IN 이명익 주야 12시간 맞교대 체계 역시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현재 SPC 산하 공장에서는 공장과 라인별로 3조 2교대 및 2조 2교대가 각기 다르게 적용되고 있다.
5월21일 〈경인일보〉에 따르면 사고가 발생한 생산 라인은 주간·야간 각각 12시간씩 이틀간 근무한 뒤 하루를 쉬는 3조 2교대 방식으로 운영돼왔다.
야간 근무와 장시간 고강도 노동이 반복될 경우 피로 누적으로 집중력이 떨어지게 되고, 그만큼 산재사고가 발생하기 쉽다.
2022년 10월15일 평택 SPL 공장에서 일하던 박선빈씨(당시 23세)가 소스 배합 기계에 몸이 끼여 사망한 사건은 야간 교대조가 근무하는 오전 6시20분경에 발생했다.
2022년 10월 성남 샤니 공장에서 일하던 40대 노동자가 손가락이 절단된 사고, 2023년 7월 같은 공장에서 50대 노동자의 손가락이 부러진 사고, 2023년 10월 평택 SPL 공장에서 50대 노동자의 손가락이 부러진 사고, 2025년 1월 같은 공장에서 50대 노동자의 손가락이 절단된 사고도 모두 야간근무 시간대에 일어났다.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는 5월19일 성명을 통해 2022년 사망사고 당시부터 주야 12시간 맞교대 개선 등 시스템 개선안을 요구해왔으나 회사에서는 응답이 없었다고 밝혔다.
노후 설비도 사고의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
이번 사고가 난 SPC삼립 시화공장 컨베이어벨트는 30년 이상 노후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이번 사건이 발생한 공장 안 냉각 컨베이어벨트 옆에서 일했던 한 남성 노동자(28)는 〈시사IN〉에 “기계가 노후화돼서 자주 멈추곤 했다.
그러면 기계에서 빵이 도미노처럼 잔뜩 떨어지는데, 컨베이어벨트 밑으로 떨어져서 (들어가) 줍곤 했던 경험이 있다”라고 말했다.
설비가 오래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사고가 발생하는 건 아니다.
사건 수사를 맡고 있는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설비가 노후화되면 위험성이 높아질 수는 있지만, 시설을 잘 관리하고 주기적으로 정비해주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노후화로 인한 기계 작동 오류인지, 다른 요인에 의한 사고인지 여러 가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라고 밝혔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SPC 계열사의 산업재해 건수는 2020년부터 2024년 상반기까지 총 572건에 달한다.
월평균 10건 이상의 재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한 셈이다.
그중 2022년 10월15일 평택 SPL 공장 끼임 사망사고, 2023년 8월8일 성남 샤니 공장 끼임 사망사고에 이어 이번 시흥시 SPC삼립 시화공장 끼임 사망사고까지 SPC 계열사에서 발생한 중대재해만 세 건이다.
2023년 8월11일 정의당 의원들이 끼임 사고로 사망자가 발생한 SPC그룹 샤니 성남공장에 대한 현장 검증에 나서자 회사 관계자들이 의원들의 출입을 막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평택 SPL 공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한 직후인 2022년 10월21일 허영인 SPC 회장은 대국민 사과를 하며 3년간 1000억원 규모의 안전 투자와 개선 완료를 약속했다.
올해는 허 회장이 약속한 안전 투자 확대의 마지막 해다.
SPC는 2023년부터 안전경영위원회를 운영하며 안전경영 레터와 활동보고서를 발간해왔다.
SPC가 발간한 ‘2023년 안전경영위원회 활동보고서’에 따르면 안전설비 확충, 장비 안전성 강화, 작업환경 개선 등에만 500억원이 넘는 투자를 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막대한 투자 규모에도 2023년 성남 샤니 공장 사고와 이번 시흥 SPC삼립 공장 사고까지 사망사고 두 건이 추가로 발생했다.
SPC 안전경영위원회가 발간한 ‘안전경영레터 Vol. 9’에 따르면, 이번에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삼립 시화생산센터의 안전보건팀은 위원회에 의해 2024년 안전경영포상 올해의 수상팀으로 선정됐다.
SPC 홍보실 관계자는 사고 원인과 안전 투자 약속의 효과를 묻는 〈시사IN〉의 질문에 “사고가 난 상황에서 더 드릴 말씀이 없다” “사건과 관련한 구체적인 논의는 수사 중이라 더 말씀드리기 어렵다”라고만 했다.
5월21일 김범수 SPC삼립 대표이사는 경기 시흥시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더불어민주당 중앙선대위 잘사니즘위원회·을지로위원회와의 간담회에 앞서 이번 사고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했다.
그는 “제조 사업장과 본사의 안전관리자 등 관련 인력 충원 및 안전관리 역량을 보다 강화할 방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
사고 발생에 대해 사과드리며 고인과 유족분들께도 사죄드린다”라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어떻게 악법인가” 2022년 평택 SPL 공장 사망사고와 관련해, 지난 1월21일 수원지법 평택지원 형사6단독 박효송 판사는 강동석 전 SPL 대표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안전관리 책임자이자 경영 책임자로서 사망사고가 발생한 혼합기의 안전 덮개를 하지 않는 등 유사 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조치를 다하지 않았다(중대재해처벌법 등 위반)”라는 이유였다.
2023년 성남 샤니 공장 사망사고에 관해서는 이강섭 전 샤니 대표 등 7명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허영인 SPC 그룹 회장은 2024년 4월 계열사인 파리바게뜨 제빵 기사들에게 민주노총 탈퇴를 강요한 혐의를 받아 구속됐다가 5개월 만인 같은 해 9월 석방됐다.
5월21일 오후 SPC 김범수 대표이사가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조성식 동아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법률만 바뀐다고 해서 직장의 안전 문화나 인력, 시설 등이 바뀌는 건 아니다.
안전 관행을 바꾸려면 사측의 경영 목표가 바뀌어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가 실질적인 관리감독을 시행하고, 처벌 이상으로 실제로 자원이 제대로 투입되었는지 등을 실효성 있게 검증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강태선 교수 역시 SPC뿐 아니라 정부에도 막중한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처벌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고 사례를 구체적으로 기업에 공개하고 예방할 수 있게 하는 것 역시 산업안전을 구축하는 인프라 중 하나다.
정부가 겁만 주고 참고서를 안 주면 학생이 공부할 수가 없다.
”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 중 발생한 산재사고에 대선후보들도 이 사건을 언급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5월20일 경기 일산 유세에서 이 사고를 언급하며 “일을 시켜 이익을 보는 주체가 잘못해 심하게 다치게 하면 처벌하겠다는 게 중대재해처벌법이다.
(···) 상식에 부합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반면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5월21일 이번 사건과 관련해 “사업주를 구속한다고 해서 사망사고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5월15일 중소기업중앙회 조찬 강연 축사에서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이런 악법이 여러분을 더 이상 괴롭히지 못하도록 고치겠다”라고 말한 바 있다.
SPC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불매운동 움직임도 보인다.
사고가 발생한 SPC삼립 시화공장은 한국야구위원회와 콜라보로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KBO빵(크보빵) 생산시설이다.
이에 X(구 트위터)에서는 5월20일 ‘크보빵에 반대하는 크보팬’ 계정이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선수들의 얼굴이 산재 기업의 이미지 세탁에 쓰이는 것에 반대합니다” “화려한 콜라보 뒤에 감춰진 비극, 크보팬은 외면하지 않겠습니다”라며 SPC 불매운동에 나섰다.
기계 멈추기 힘든 빵 공장, 끼여 죽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