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에서 열린 비넥스포 아시아 2025 전시장에서 영국 크래프트맥주 업체로 널리 알려진 브루독이 스피릿 전용 부스로 전시회에 참가에 이목을 끌었다.
사진은 브루독 아시아 지역 담당인 스티븐이 브루독의 스피릿 제품들을 모아놓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사진=심현희 기자   지난달 27일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에서 열린 비넥스포 아시아 2025 전시장에서 이례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영국에서 시작해 글로벌 크래프트 맥주의 전설로 통하는 브루독(BrewDog)이 맥주가 아닌 스피릿 전용 부스를 차리고 참가한 것이다.
진, 보드카, 럼이 진열된 브루독 부스 앞에는 "정말 그 브루독이 맞나?"라며 의아해하는 참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현장에서 만난 브루독 아시아 지역 담당인 스티븐은 "아시아 시장에서 스피릿 제품들은 대만과 일본에만 진출해 있다"면서 "아세안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비넥스포 아시아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3년 뒤엔 브루독 위스키가 나올 것"이라고 예고하면서 "위스키까지 라인업을 갖추면 크래프트맥주에 이어 크래프트 스피릿 업체로 아시아 시장 공략에 본격적으로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크래프트 맥주 침체가 만든 '브루스틸러리'  브루독의 스피릿 진출은 업계의 변화를 반영한 결과다.
 미국 크래프트 맥주 시장이 연속 3년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면서 많은 맥주 업체들이 생존을 위해 스피릿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크래프트 맥주 생산량은 전년 대비 4% 감소한 2310만 배럴을 기록했으며, 이는 2020년 팬데믹 이후 최대 감소폭이다.
이처럼 맥주 업체(브루어리)가 증류사업에 나서는 현상을 '브루스틸러리(Brewstillery)' 트렌드라고 한다.
도그피시 헤드(Dogfish Head), 로그(Rogue), 앵커 브루잉(Anchor Brewing) 등 유명 미국 크래프트 맥주 업체들도 앞다퉈 증류소를 설립했거나 준비 중이다.
특히 도그피시 헤드는 2002년부터 소규모 증류를 시작해 2015년 본격 생산에 들어갔으며, 현재 9종의 스피릿을 생산하고 있다.
세계 최대 크래프트맥주 시장을 보유한 미국에서만 현재 256개 업체가 맥주와 스피릿 제조 라이선스를 동시에 보유하고 있으며, 크래프트 스피릿 시장은 연간 30% 가까운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반면 크래프트 맥주 시장은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특히 Z세대는 맥주보다 스피릿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순수 맥주 업체들의 위기감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2007년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된 브루독은 '펑크 브루어리'라는 슬로건으로 기존 맥주 업계에 혁신을 가져온 크래프트 맥주의 대표 브랜드다.
브루독도 10년 전부터 스피릿 사업에 뛰어들어 현재 맥주에 이어 스피릿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현재 브루독 디스틸링 컴퍼니는 스코틀랜드 애버딘셔 엘론에 위치한 최첨단 증류소에서 진, 보드카, 럼, 테킬라 등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시그니처 제품인 '론 울프 진(Lone Wolf Gin)'은 기존 플로럴 보타니컬 중심의 진과 차별화된 대담한 맛으로 주목받고 있다.
스티븐은 "브루독의 DNA인 반항정신과 혁신을 스피릿에도 그대로 담았다"며 "우리는 크래프트고 적게 만드니 희소성의 가치를 알아주리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브루독은 자체 '트리플 버블' 구리 증류기와 20미터 높이의 정류탑을 갖춘 독특한 시설로 '그레인 투 글래스(grain to glass)' 생산을 고집하고 있다.
  위스키 출시로 스피릿 라인업 완성 브루독의 가장 중요한 스피릿 목표는 3년 뒤 예정된 위스키 출시다.
2016년 증류소 건설 당시부터 위스키를 염두에 둔 브루독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위스키 생산에 들어갔다.
스티븐 커슬리 마스터 디스틸러는 "수백 개의 캐스크를 눕혀두고 있다"고 밝혔다.
브루독 위스키의 특징은 기존 스카치 위스키 규정에 얽매이지 않는 실험정신이다.
맥주 양조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효모 균주를 실험하고, 체리나 사과나무로 건조한 맥아, 라이와 옥수수 등 다양한 곡물을 사용한다.
또한 온도와 습도를 조절할 수 있는 창고에서 세계 어느 기후든 모방할 수 있는 숙성 환경을 구축했다.
브루독 관계자는 "75%는 하우스 스타일로, 25%는 미친 듯이 혁신적인 실험을 한다"며 "품질이 충분하지 않거나 준비되지 않으면 출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스티븐은 유독 한국 시장에 대한 높은 관심을 드러냈다.
그는"특히 한국은 프리미엄 시장이 성장하고 있고 독특한 위스키가 잘 팔리고 있어 매력적"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한국 주류 시장은 최근 급속한 프리미엄화와 다양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기존 주요 브랜드 위주에서 벗어나 소규모 증류소나 독특한 스토리를 가진 위스키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젊은 소비층을 중심으로 새로운 브랜드에 대한 개방성이 높아지고 있어 브루독 같은 혁신적 브랜드에게는 기회가 되고 있다.
한국에 이미 맥주로 탄탄한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크래프트 맥주 붐과 함께 한국에서도 브루독은 혁신적이고 대담한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어, 스피릿 진출 시 브랜드 파워를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브루독 디스틸링 컴퍼니는 현재 연매출 1000만 파운드(약 170억원) 규모에서 향후 3~5년 내 10배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해 700만 파운드를 투자해 생산 시설을 3배 확대했으며, 올해부터 본격적인 국제 시장 확대에 나서고 있다.
이 관계자는 "비넥스포 첫날 오전에만 태국과 말레이시아 관계자 5명이 다녀가 계약이 성사됐다"며 "아시아 시장의 반응이 매우 긍정적"이라고 전했다.
그는 "브루독 스피릿은 희소성과 스토리, 그리고 혁신적인 맛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비넥스포 아시아 2025] 英 크래프트 맥주 전설 브루독, 증류주로 아시아 공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