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기후변화 영향으로 생태계 불확실성 심화
● 中 북부에서 넘어와 매년 여름 수도권 대량 출몰
● “익충이니 참자” vs “유행성 도시해충으로 분류” 팽팽
● 천적 몰라…‘산성 체액’ 탓에 참새, 사마귀도 먹다 뱉어
● 대벌레 등 대발생 우려종 이미 산지서 기승
● 개체수 조절 연구 필요…“민관 합동으로 논의 이어가”
6월 30일 인천 계양구 계양산 정상에 붉은등우단털파리(러브버그) 무리가 하늘을 뒤덮고 있다.
동아DB
뉴스1
“어느 날부터 아파트 창밖으로 ‘검은 점’이 가득했다.
자세히 보니 러브버그였다.
한동안 환기는 꿈도 못 꿨다.
방충망을 교체해도 러브버그가 집 안으로 계속 들어와 창문 틈새는 물론 물 빠짐 구멍까지 막았다.
입주자 단체 채팅방에서는 수시로 러브버그 인증 사진이 올라왔다.
한 입주자는 ‘러브버그를 10마리나 잡았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하기도 했다.
”
인천 계양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박모(45) 씨는 이번 여름 러브버그로 인해 악몽 같은 시간을 보냈다.
동네 곳곳에 러브버그가 날아다니면서 일상생활에 제약이 생긴 탓이다.
아파트 6층 역시 러브버그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입주자 단체 채팅방에서는 “계양산에 러브버그가 깔렸으니 절대로 등산을 가지 마라” “12층인데 러브버그가 보인다” 등 관련 이야기가 수시로 올라왔다.
박씨는 “생태계에 도움이 되는 익충이라지만 이 정도로 대량 출몰하면 불쾌감을 주고 생활에도 피해를 준다”고 말했다.
중국 북부에서 넘어와 매년 여름 수도권 대량 출몰
한국에서 ‘러브버그’라고 불리는 이 곤충의 진짜 이름은 ‘붉은등우단털파리(Plecia longiforceps)’다.
파리목 털파릿과에 속하며 몸길이는 6~6.5㎜ 정도다.
사실 우리가 말하는 러브버그는 미국에 사는 별개 종으로, 붉은등우단털파리의 먼 친척뻘이다.
두 곤충은 생김새나 습성이 매우 비슷하다.
이 때문에 붉은등우단털파리가 한국에 처음 나타났을 때 러브버그로 잘못 알려졌고, 해당 이름이 널리 퍼지면서 붉은등우단털파리가 곧 러브버그로 불리게 됐다.
러브버그는 매년 6월 말이면 수도권 곳곳에 대량 출몰한다.
당초 중국 남부와 대만, 일본 오키나와에서 서식하는 종이 유입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들어 산둥반도 등 중국 북부에 서식하는 종이 물류 운송 과정에서 흘러들어왔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국내 러브버그를 연구한 결과, 추위에 내성을 가진 것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신승관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통상적으로 외래종은 (따뜻한) 남쪽 지역에서 올라오는 경우가 많아 중국 남부나 오키나와에서 넘어온 것으로 추정했는데, 데이터를 비교 분석한 결과 중국 북부에서 추위에 일정 정도 적응한 종이 건너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러브버그 성충은 6월 말~7월 초 무리 지어 비행하며 3~4일 동안 짝짓기를 한다.
이때 수컷은 수정을 마칠 때까지 암컷에 붙어 다닌다.
다른 수컷의 접근을 막기 위한 조치로, 번식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한 종 고유의 습성이다.
러브버그가 대량 출몰하는 시기는 이때다.
수컷은 짝짓기가 끝나면 바로 죽으며, 암컷 역시 흙 표면에 300~500개의 알을 낳고 일주일가량 지난 후 뒤따라 죽는다.
이 때문에 러브버그는 7월 중순 자연스레 사라지는 추세다.
한 참새가 러브버그를 맛본 후 뱉고 있다.
유튜브채널 ‘제발돼라 PleaseBee’ 갈무리
“익충이니 참자” vs “유행성 도시해충으로 분류” 팽팽
곤충은 인간에게 이로운지, 아닌지를 두고 익충과 해충으로 나뉜다.
해충은 피해 양상에 따라 △농업해충 △산림해충 △돌발해충 △위생해충으로 구분된다.
돌발해충은 시기나 장소에 한정되지 않고 돌발적으로 발생해 농업, 산림 등에 피해를 주는 해충을 일컫는다.
그간 도시에서 발생하는 곤충 관련 문제는 대부분 위생해충 문제였다.
2023년 프랑스에서 빈대가 대유행하는 예외가 있었지만, 대부분은 도시의 위생 수준이 향상되면서 관련 문제도 잦아들었다.
이러한 흐름을 뒤집은 게 러브버그다.
세간의 악명과 달리 러브버그는 익충으로 분류된다.
유충은 무리 지어 생활하며 낙엽이나 썩은 나무 아래서 부식층을 먹으며 유기물을 분해한다.
성충 역시 꽃의 수분을 돕는 등 생태계에 긍정적 역할을 맡고 있다.
게다가 독성이 없으며, 질병을 옮기기는커녕 인간을 물지도 않는다.
문제는 수다.
많아도 너무 많다.
떼 지어 몰려다니는 습성 역시 혐오감을 더한다.
2015년쯤 한국에서 처음 발견된 러브버그는 2022년을 기점으로 악명을 떨친다.
그해 서울 은평구에서 대발생하면서 본격적으로 수도권 각지에 퍼지기 시작한 탓이다.
올해 러브버그 핫플레이스는 인천 계양산 일대였다.
윤환 인천 계양구청장은 7월 2일 취임 3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민원을 많이 받다 보니 러브버그의 ‘러’자만 나와도 잠을 못 잤다”면서도 “국민이라면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해 질타를 받았다.
결국 러브버그는 계양산이 까맣게 물들 정도로 늘어났고, 환경부와 계양구청은 뒤늦게 송풍기·포충망·살수장비 등을 활용해 방제 작업을 펼쳤다.
익충이라지만 마냥 피해가 없지만도 않다.
도심에서 대량 발생하면 카페나 식당 등의 운영에 지장이 가고, 계양구처럼 일상생활에 피해를 주기도 한다.
러브버그 사체가 쌓이면 건축물이 부식될 수 있고, 악취 문제도 생긴다.
실제로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러브버그 방제 민원이 9296건 접수됐다.
민원 건수 역시 2022년 4418건, 2023년 5600건으로 증가 추세다.
올해 상반기에만 관련 민원이 4695건이 접수돼 최다 민원 기록을 경신할 가능성도 높다.
금천구가 698건으로 가장 많았고, 은평구(599건)·관악구(508건)·강서구(410건)가 뒤를 이었다.
“익충이니 한 달만 참아라”는 반응이 잇따르자 “익충 가스라이팅을 멈춰라”는 목소리마저 나오는 형국이다.
이에 서울연구원은 “러브버그는 학계의 분류 및 사회 통념상 익충으로 분류되지만, 개체수 증가로 시민의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행성 도시해충’으로 새롭게 분류해 도시행정 차원에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바뀐 도시환경에 발맞춰 해충 개념을 재정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현재로서는 익충으로 분류돼 러브버그에 대한 화학적 방제가 어렵다.
개체수를 줄이려다 자칫 생태계 전반을 파괴할 수 있어서다.
곰팡이균 등을 활용한 생물학적 방제가 대안으로 꼽히지만, 이마저 연구가 부족해 제약이 있다.
이준호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명예교수는 “개체수를 줄이려면 유충일 때 방제하는 것이 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며 “토양에서 서식하는 만큼 곰팡이균을 이용해 생물학적 방제가 가능해 보이나, 아직 연구로 확인된 바 없다”고 말했다.
해외 역시 러브버그에 대해 체계적 연구가 이뤄지지 않아 관련 자료가 부족한 상황이다.
게다가 외래종인 만큼 아직 국내에서 천적이 확인되지 않았다.
참새, 비둘기, 까치, 거미, 사마귀 등이 러브버그를 먹는다고 알려졌으나, 선호하는 먹잇감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러브버그가 산성 체액을 갖고 있어 ‘찾아 먹을 정도의 맛’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유튜버가 참새, 사마귀, 거미, 잠자리에 러브버그를 먹이로 줘봤으나 하나같이 러브버그를 먹다 뱉었다.
다른 유튜버는 인천 계양산에서 러브버그 2000여 마리를 채집해 찜, 전 등으로 요리해 직접 먹은 후 “씁쓸한 향이 올라온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다행히 아직까지 러브버그는 수도권에서만 발견되고 있다.
하지만 비수도권이라도 안심할 수는 없다.
2022년 ‘통합해충관리저널’에 게재된 ‘동아시아에서의 러브버그 분포 확대와 발생’에 따르면 기후온난화가 심화하면서 2070년이면 한반도 전역에서 러브버그가 서식할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게다가 인위적으로 전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지방에서는 러브버그가 보이지 않아, ‘익충인데 왜 싫어하지’ 등으로 반응한다”며 “러브버그 20여 마리를 채집통에 담아 부산의 한 숲에 퍼뜨렸다”고 글이 게시되기도 했다.
2023년 5월 21일 서울 한강공원 일대에 동양하루살이가 몰려든 모습. 동아DB
대벌레·동양하루살이·깔다구 등 대발생 우려종 주의
7월 중순에 접어들며 러브버그가 잦아드는 분위기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환경부는 향후 대벌레, 동양하루살이, 깔따구 등이 대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김태오 환경부 자연보전국장은 “올해 곤충 대발생 상황이 매우 심각하고, 기후변화 영향으로 생태계 불확실성이 심해지는 추세이므로 올여름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환경부는 살충제 등 화학 방제는 생태계 전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곤충별 습성을 이용해 방제하겠다는 입장이다.
흰색을 좋아하는 동양하루살이의 습성을 이용해 하얀 방제포를 출몰지에 설치한 다음 끈끈이로 처리하는 식이다.
올해 상대적으로 비가 적게 내리는 ‘마른장마’가 이어지면서 나무줄기나 잎과 비슷하게 생긴 대벌레의 발생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벌레는 곤충에만 감염되는 곰팡이인 녹강균에 약한데, 강수량이 줄면서 녹강균의 수가 줄어들 확률이 높아서다.
이미 산지에는 대벌레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몸통보다 큰 날개를 가져 ‘팅커벨’로 불리는 동양하루살이 역시 대표적 ‘대발생 우려종’이다.
동양하루살이 역시 러브버그처럼 익충으로 분류돼 방역이 마땅치 않다.
유충은 하천의 유기물을 분해하고, 성충 역시 새 등 생태계 피라미드 상부의 먹이로 기능한다.
성충은 입이 없어 사람을 물 수 없으며, 병균 역시 옮기지 않는다.
게다가 동양하루살이는 수질 상태를 나타내는 수질지표종으로, 2급수 이상의 깨끗한 하천에서 서식한다.
개체수 증가는 곧 환경이 깨끗해졌다는 사실을 의미하므로 마냥 부정적으로 볼 수도 없다.
하지만 그 수가 과도하게 불어나면서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는 것 역시 현실이다.
곤충 대발생이 줄지어 예고된 상태이지만 전문가들은 마땅한 방법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대발생한 곤충의 경우 10년가량 흐르면 자연스레 생태계에 녹아들며 수가 조정되니 “참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마저 나온다.
신승관 교수는 “대표적 해충인 모기마저 박멸을 위해 100여 년간 애를 썼지만 성공하지 못했다”며 “생물다양성을 높여 각 종의 개체수가 적절한 수준으로 조절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이준호 교수 역시 “인간에게 훨씬 큰 피해를 주는 해충이 많은 상황”이라며 “익충의 개체수 조절을 목적으로 하는 연구는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각계 목소리를 종합해 유행성 대발생 곤충에 대한 대응체계를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최근 환경부는 전통적 해충 관리 체계가 포괄하지 못하는 다양한 피해에 대응하기 위해 민관합동으로 대책 마련에 나섰다.
관련 문제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편하는 한편, 유행성 대발생 곤충 관련 연구개발(R&D)을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환경부 관계자는 “러브버그 등 기존 체계에서 해충에 포함되지 않는 곤충은 관리 대상에서 벗어나 있어, 관리 책무가 있는 지역자치단체 입장에서 애로가 있다”며 “관리 인력 및 예산 확보를 위해서라도 제도적 근거가 필요한 만큼 민관 합동으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러브버그 이어 대벌레, 동양하루살이, 깔따구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