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인사이드] 족쇄만 주렁주렁, 소비자 권익은 ‘뒷전’
● 정부의 대형마트 향한 인식, 조선시대와 다를 바 없어
● 올해 더욱 위기에 처한 대형마트…업계 전반 위기
● ‘알·테·쉬’ 등 中 전자상거래 플랫폼 장악력 갈수록 확대
● 대형마트 경쟁력 강화 시급…규제도 ‘시대 흐름’ 읽어야
● “오프라인 유통업계 생존 환경 만들어줘야”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뉴시스 조선시대 정치 엘리트의 시장관(觀)은 오늘날의 ‘유무상통(有無相通·있는 것과 없는 것을 서로 융통함)’ 개념과는 거리가 멀었다.
신분제 사회에서 ‘사농공상(士農工商)’은 엄격히 구분됐고, 이 중에서도 상공인은 단지 돈을 좇는 속물로 여겨졌다.
시장이 기근과 흉년 속 백성의 생계에 실질적 역할을 한다는 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당시의 정치가와 사대부들은 시장 개설을 경계하고 억제하는 데 앞장섰다.
  중종실록(1506~1544)에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청도 관찰사 소세양은 중종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농사를 게을리하고 도둑질하는 무리들이 모두 시장에 몰려듭니다.
본디 금지하고자 했으나 흉년을 감안해 한 달에 세 번만 열도록 허락했습니다.
” 시장은 원칙적으로 금지 대상이지만, 생계를 고려해 10일장만 예외적으로 허용한 것이다.
그런데 중종은 이조차 못마땅했는지 “수령이라면 농업과 양잠(누에치기)을 권장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덧붙였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다소 황당한 논리지만, 당시 사대부들은 시장이 도적을 불러오고, 도적을 없애려면 시장부터 금해야 한다고 믿었다.
조선 전기 성리학자이자 정치가인 회재 이언적(1491~1553)이 명종에게 올린 상소문에도 당시 지배층의 시장관이 그대로 녹아 있다.
1546년 그가 명종에게 올린 상소문에는 “기근이 들어 도적이 창궐하고 살인과 약탈이 벌어지는 것은 시장을 금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시장을 일절 금해 도적으로 인한 근심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 정부는 시장을 ‘도적의 온상’으로 본 조선 사대부의 낡은 인식을 그대로 표방하고 있다.
소비자의 선택권과 기업의 성장까지 저해하며 규제 옥죄기에 앞다퉈 강도를 높이는 분위기다.
시장의 필요성과 효용을 인정하면서도 조선시대와 마찬가지로 그 기능을 금지하거나 제한해 시장을 통제하는 방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심야·의무휴업일 온라인 배송 금지…전국 유통망 무색 현재 국내 대형마트는 다양한 규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10년 도입된 유통산업발전법이 업계를 괴롭히는 대표 규제로 지목된다.
전통시장 인근에 대형마트 등 대규모 유통시설의 입점을 제한하고, 월 2회 의무휴업과 밤 12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을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대형마트는 온라인 배송 규제도 함께 받는다.
심야 시간은 물론 의무휴업일에도 온라인 배송이 금지돼 있다.
새벽 배송 시장이 날로 커지는 가운데서도 규제에 가로막혀 전국 유통망의 기동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결과적으로 2019년까지 대형마트-백화점-편의점 순이던 매출 순위는 지난해부터 백화점-편의점-대형마트 순으로 재편됐다.
대형마트의 추락은 직·간접 고용뿐만 아니라 주변 상권 고용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온라인 배송 규제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는 심각하다.
한번 온라인 시장으로 이탈한 고객은 오프라인으로 다시 돌아오기 쉽지 않은 데다, 납품업체 대부분이 중견·중소기업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기업형 슈퍼마켓(SSM) 역시 예외는 아니다.
절반은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가맹점이지만 대기업 간판을 달고 있다는 이유로 출점 제한, 의무휴업, 영업시간 제한 등의 규제를 함께 받고 있다.
심지어 올해 들어선 대형마트를 향한 규제가 더 강화될 위기에 처했다.
오세희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9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자체 자율이었던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법정공휴일 고정’으로 못 박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 법안이 통과할 경우 대형마트는 매달 두 번꼴로 반드시 공휴일에 영업을 중단해야 한다.
현재 해당 법안은 국회 소위에서 논의 중이다.
  다만 민주당 내에서도 이에 대한 반대의견이 많은 만큼 여당이 적극적으로 추진하진 않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실제로 민주당의 법안 추진 가능성이 보도되자 같은 당 전용기·장철민 의원은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소관 상임위인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인 장철민 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소상공인 보호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다양한 생활 편의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마트는 기업의 이익 공간이면서도 주민들에게는 필수 생활공간이다.
맞벌이·1인가구 등은 평일 장보기가 쉽지 않은 만큼, 제도가 불편을 감수할 만큼 효과적인지 객관적으로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시내 한 홈플러스의 외관. 뉴시스 대형마트 업계 ‘옥죄기’ 지속…효과는 ‘최악’ 국내 대형마트를 둘러싼 영업 환경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최근 수년간 유통산업 패러다임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급격히 넘어가면서 유통가 경쟁이 심화해 타격이 컸다.
1인가구 등의 영향으로 소비 패턴까지 바뀌면서 매출 하락을 거듭하고 있다.
단적으로 3월에는 국내 대형마트 2위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며 사실상 법정관리 체제에 들어갔다.
이를 지켜보던 경쟁사들은 두려움에 덜덜 떨었다.
‘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입을 모아 오래된 규제도 한몫한다며 화살을 돌리기도 했다.
지난해 윤석열 정부가 출범 당시부터 의지를 밝힌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대통령 탄핵 사태 등으로 인해 국회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대형마트 규제에 따른 업계 지원책 마련으로 문을 닫는 점포도 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3사(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가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폐쇄한 점포만 25곳으로 지난해에만 7곳이 문을 닫았다.
  이는 해외 사례와 정반대되는 개념이다.
해외는 시장 자율에 맡기는 경우가 많다.
미국과 일본은 24시간 운영도 가능할 만큼 규제가 거의 없고, 영국과 프랑스는 일부 공휴일 제한 외엔 비교적 유연한 편이다.
이처럼 규제를 두지 않은 국가들은 소비자의 접근성과 편의성이 높아지는 효과가 크다.
저녁 늦게나 주말에도 쇼핑이 가능해져 소비 진작에 도움이 된다.
유통업체들도 자율적 운영을 통해 비용 효율화와 서비스 품질 제고에 집중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소비자 편익을 상실한 지 오래다.
대형마트 이용 비중이 높은 맞벌이 가구나 1인가구 등은 주말 쇼핑이 제한되며 생필품 구매에 제약을 받는다.
온라인 장보기 수단이 대안으로 제시되지만, 배송 지연이나 품질 문제 등으로 완전한 대체 수단이 되기 어렵다는 한계도 존재한다.
마트 내 문화센터나 약국, 서점 등 공공 성격을 지닌 시설까지 함께 문을 닫게 되면서 생활 밀착형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 역시 떨어지고 있다.
변화된 유통 환경과 소비 패턴을 반영하지 못한 일률적 규제가 오히려 소비자 후생을 저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가장 큰 문제는 국내서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의 장악력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알·테·쉬(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로 불리는 중국 ‘크로스보더’ 플랫폼이 최근 한국 시장에서 공세를 펼치고 있다.
크로스보더는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든다는 의미다.
해외 상품을 싸게 들여와 팔거나(직구) 국내 생산자 상품을 해외에 판매할 수 있도록(역직구) 도와주는 플랫폼을 말한다.
중국 쇼핑 앱의 최대 무기는 상식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가격’과 ‘상품 구색’이다.
파격적으로 싼 가격인데 그런대로 쓸 만한 물건이 많다.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다는 뜻으로 ‘알리지옥’ ‘테무지옥’이란 신조어까지 생겼을 정도다.
해외 직구 방식으로 판매자와 소비자를 바로 연결하니 사실상 무관세 혜택을 받고, KC인증(안전 인증) 의무도 면제받는다.
무료배송·무료반품 정책까지 동원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상품 구색도 다양해지고 있다.
알리는 그동안 무풍지대로 여겨졌던 신선식품으로까지 영토를 넓혔다.
최근 알리의 모회사인 알리바바그룹은 향후 3년간 한국 시장에 약 1조50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간 공산품을 토대로 영향력을 행사해 왔으나, 대형마트와 동네 슈퍼마켓이 마지막 보루로 여기던 신선식품 분야로 까지 최저가 공세를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판매자 유치를 위해 입점수수료뿐 아니라 판매수수료도 면제해 주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역직구도 시작했다.
알리익스프레스는 지난해 10월부터 한국 판매자가 해외시장에서 상품을 판매하도록 ‘글로벌 셀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중소 판매자가 여건상 독자적으로 해외 진출에 나서기 어려운 점을 중국 이커머스(C커머스) 업체들이 반영해 마케팅, 물류 등을 지원하고 나선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주요 브랜드와 공산품 업체들 역시 앞다퉈 C커머스로 몰리는 형태가 됐다.
이미 셀러 3만 명 이상이 알리익스프레스 입점을 타진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내 대표 식품기업들도 예외가 아니다.
CJ제일제당과 남양유업 등이 나란히 입점해 주요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국내 소비자 입장에서는 싼 가격에 다양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효용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왜 한국일까. 한국이 C커머스 플랫폼의 격전장이 된 것은 중국의 출생률 감소와 소비 둔화와 관련이 깊다.
내수시장 성장이 정체되자 해외로 눈을 돌렸다.
한국은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데다 인터넷 보급률이 높고 물류 인프라가 우수하다.
인구가 수도권에 집중돼 배송이 편리하며 대부분 구매력을 갖추고 트렌드에 민감하다.
또 미국이 최근 테무·쉬인에 대한 규제 움직임을 가시화하면서 이들이 미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함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내 대형마트, 경쟁력 확보에 ‘힘’…글로벌 시장 정조준 국내 대형마트업계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경쟁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올해 공격적인 할인 행사와 신규 점포 개점, 기존 점포 리뉴얼 등을 통해 사업 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을 238% 늘리며 8년 만에 최대 실적을 달성한 이마트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강조한 ‘본업 경쟁력’ 강화 전략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계속할 예정이다.
이마트는 작년 기업형 슈퍼마켓(SSM) 이마트 에브리데이와 편의점인 이마트24의 통합 매입 체계를 구축해 원가 절감과 수익성 개선에 나섰다.
또 지난 2월과 4월에는 ‘트레이더스 마곡점’과 ‘푸드마켓 고덕점’을 열었다.
2027년까지 3개의 점포를 추가로 열겠다는 구상이다.
경쟁사 롯데마트는 △매장 리뉴얼 △신선 및 자체 브랜드(PB) 상품 경쟁력 강화 등에 집중한다.
영국의 글로벌 리테일 테크 기업 오카도와 협업해 온라인 그로서리(식료품) 사업에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여기에 지난 1월 ‘천호점’을 6년 만에 개점한 데 이어 상반기 안으로 ‘구리점’ 개장도 준비하고 있다.
글로벌 확장에도 속도를 낸다.
이마트는 6월 기준 몽골 5개, 베트남 3개 등 4개국에 진출해 대부분 ‘마스터 프랜차이즈(MF)’ 방식으로 브랜드와 운영 노하우를 수출하고 있다.
몽골은 2016년 1호점 이후 8년 만에 5개 점포로 확대되며 ‘K유통’ 성공 사례로 꼽힌다.
베트남에선 현지 대기업 타코그룹과 협업해 대형 쇼핑몰 내 입점을 늘리고 있으며, 필리핀과 라오스에서도 노브랜드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다.
올 상반기 기준 이마트 PB상품 수출은 전년 대비 약 20% 증가했다.
롯데마트는 6월 초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국내 중소기업과 현지 바이어를 연결하는 수출 상담을 진행했고, ‘플레이 마켓’ 팝업스토어와 온라인 플랫폼 기업과 세미나를 열어 현지 소비자 접점을 확대했다.
오프라인 매장 직접 운영과 노하우 전수를 통해 차별화를 시도 중이다.
업계는 저출산 등으로 어려운 국내 산업 상황을 타개할 ‘히든 카드’로 해외 진출을 긍정 평가하며, 국내 강소기업 제품 홍보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다만 규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시대 흐름’을 읽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온라인 시장이 강세를 보이는 만큼, 이런 흐름에 맞는 극약처방을 통해 이제는 오프라인 유통업계가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뜻이다.
강성진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대형마트 문을 닫게 했더니 소비자들이 전통시장을 찾는 게 아니라 쿠팡 같은 온라인 플랫폼으로 옮겨가 규제 실효성이 떨어졌다”며 “정부가 정책을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지 않고 펼치는 것이 문제다.
직장인은 대형마트가 밤늦게까지 열려 있어야 편리한데, 강제로 문을 닫는다고 해서 전통시장에 이득이 가는 것도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중국 플랫폼들이 국내시장을 장악해 중국산 제품이 쏟아져 들어오면 결국 국내 제품 점유율이 떨어져 기업은 물론 시장 전체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하며 “해외 진출은 임시방편일 뿐, 국내에서 대형마트들이 자생할 수 있는 유통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휘청이는 대형마트에 돌 던지는 정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