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바로알기] 시장 연 ‘테더’, 금융권 도입 이끌어 낸 ‘서클’
● 美, 지니어스법 통과로 스테이블코인 관심↑
● 스테이블코인, 제도권 금융 편입 움직임
● 실제 화폐와 가치 연동돼 있는 것이 장점
● 언제든 환금 가능하도록 하는 준비금이 중요
● 선발 주자 ‘테더’, 준비금 문제로 벌금형 받기도
● 후발 주자 ‘서클’, 금융권 문법 따르며 각광
Gettyimage
2025년 6월, 미국 상원이 초당적 지지(찬성 68, 반대 30)로 ‘미국 스테이블코인 국가 혁신 확립 및 지침 법안(Guiding and Establishing National Innovation for U.S. Stablecoins Act·이하 지니어스법)’을 통과시킨 것은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중대한 분기점이다.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화폐의 안정성과 블록체인 기술의 효율성을 결합한 디지털 자산이다.
비트코인과 같은 기존 암호화폐가 지닌 극심한 가격변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기술이다.
  안정된 가격을 유지하는 비결은 미국 달러와 같은 특정 기준 자산에 가치를 1대 1로 고정(pegging)하는 구조다.
발행된 스테이블코인의 총량이 달러 액수와 동일하거나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고품질 유동자산(준비금)을 보유함으로써 유지된다.
이 구조 덕분에 스테이블코인은 전통적인 은행 시스템의 중개 없이도 24시간 내내 거의 실시간으로 저렴한 수수료의 외환거래를 할 수 있다.
  지니어스법 통과는 암호화폐가 제도권 금융시스템으로 편입되는 결정적 전환을 의미한다.
초당적 합의는 달러 기반 디지털 자산을 육성하고 규제하는 것이 국가적 전략 과제라는 정치적 공감대가 형성됐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시장을 양분하는 두 거인, ‘테더(Tether·USDT)’와 ‘서클(Circle·USDC)’이 있다.
두 암호화폐의 성장 경로는 정반대다.
테더는 논란 속에서도 시장을 선점했다.
반면 서클은 규제 준수를 최우선으로 내세웠다.
  6월 17일 미국 상원은 ‘미국 스테이블코인 국가 혁신 확립 및 지침 법안(Guiding and Establishing National Innovation for U.S. Stablecoins Act)’을 통과시켰다.
미국 의회 홈페이지 스테이블코인, 화폐 시스템과 신기술 결합하다 최근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가장 중요한 동력은 명확한 규제다.
지니어스법은 발행사, 준비금, 감사에 대한 명확한 규칙을 제시한다.
금융기관이 암호화폐 시장 참여를 주저하게 만들었던 법적 불확실성을 상당 부분 해소했다.
규제 준수와 투명성을 핵심 전략으로 삼아온 서클은 최적의 수혜자로 부상했다.
  규제는 서클과 같은 준법적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성장을 돕는다.
이들의 시장 성공은 다시금 규제의 경제적 효용성을 입증하며 추가적 제도 정비의 정치적 동력을 제공한다.
바로 이 선순환 구조가 스테이블코인을 암호자산 시장의 주변부에서 글로벌 금융 인프라의 중심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025년 중반 기준 전체 시가총액은 약 2500억 달러에 달한다.
미국 재무부와 번스타인(Bernstein) 투자은행은 2028년까지 시장규모가 2조 달러에서 3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미 연간 거래 처리량은 33조 달러를 넘어서며 주요 신용카드 네트워크의 규모를 추월했다.
시장 성장은 단순히 암호자산 시장 내의 현상을 넘어 거시경제적 함의를 지닌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2조 달러 규모로 성장한다면 발행사들이 보유해야 할 준비금 자산도 그만큼 늘어야 한다.
지니어스법은 준비금을 현금이나 미국 단기 국채와 같은 고품질 유동자산으로 보유하도록 강제한다.
이미 2025년 초, 테더와 서클은 합산 2040억 달러 이상의 미국 국채를 보유하며 웬만한 국가보다 더 큰 국채 보유 주체로 부상했다.
만약 시장이 2조 달러 규모로 성장하고 준비금의 80%가 국채로 구성된다고 가정하면, 이는 미국 국채 시장에 약 1조6000억 달러의 새로운 수요가 생긴다.
이는 미국 재정정책, 금리, 그리고 달러의 국제 위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된다.
즉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의 성장은 디지털 영역으로 미국 통화 패권의 영향력을 확장하는 효과를 낳는다.
DeFi 영향력 큰 테더 vs 금융권 각광 서클 테더는 2014년 브록 피어스(Brock Pierce), 리브 콜린스(Reeve Collins), 크레이그 셀러스(Craig Sellars)에 의해 ‘리얼코인(Realcoin)’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됐고, 같은 해 이름을 테더로 바꿨다.
테더 개발은 코인 블록체인에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인 ‘마스터코인 프로토콜(현 옴니레이어)’을 기반으로 시작했다.
이후 테더가 2015년 암호화폐 거래소 비트파이넥스(Bitfinex)에 통합되면서 폭발적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테더와 비트파이넥스는 모회사 아이파이넥스(iFinex)와 주요 경영진을 공유하는 사실상의 형제 회사다.
2017~2018년 암호화폐 상승장에서 테더는 거래소 간 자금 이동을 위한 기축통화 역할을 하며 수요가 급증했다.
법정화폐 담보 스테이블코인의 핵심은 준비금이다.
준비금이 있어야 유통되는 모든 토큰을 언제든 실물화폐로 환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테이블코인의 신뢰도는 이 준비금의 품질과 투명성에 달려 있다.
  테더는 백서에서 준비금이 100% 보장되며 자산이 부채를 초과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과거 준비금에는 상당량의 상업어음(CP) 등 유동성이 낮은 자산이 포함돼 논란이 됐다.
2021년에는 뉴욕 검찰이 테더가 준비금에 대해 허위 진술을 했다는 혐의로 185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하는 일도 있었다.
규제 당국의 압박 이후 테더는 포트폴리오를 미국 국채 중심으로 재편했다.
  지금도 테더는 완전한 독립 감사를 받은 적이 없다.
대신 회계법인으로부터 특정 시점의 자산과 부채를 확인하는 수준의 ‘증명(attestation)’ 보고서를 분기별로 공개하고 있다.
이는 특정 시점의 자산 현황을 보여줄 뿐, 지속적인 검증이 이루어지는 감사와는 거리가 멀다.
  스테이블코인 테더의 로고. 테더 홈페이지 2018년 코인베이스(Coinbase)와 합작해 탄생한 서클은 처음부터 준비금에 관한 투명성을 강조했다.
서클은 일반 금융권 수준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차별화된 전략을 내놨다.
대표적으로 ‘빅4’ 회계법인인 딜로이트(Deloitte)로부터 매월 증명 보고서를 발간한 일이다.
보고서를 통해 매달 유통량보다 준비금이 많다는 사실을 검증해 보여준다.
준비금의 대부분도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이 운용하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등록 머니마켓펀드(MMF)인 ‘서클 리저브 펀드(Circle Reserve Fund·USDXX)’에 보관한다.
금융기관과 협력을 앞세운 스테이블코인 서클의 로고. 서클 홈페이지 서클의 금융 친화적 접근은 성공적이었다.
비자(Visa), 블랙록, BNY멜론 등 주요 금융기관들이 파트너로 서클을 선택했다.
서클은 전통 금융시스템에 성공적으로 녹아들었다.
서클은 2025년 6월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에도 성공했다.
스테이블코인 업계 역사적 사건이었다.
공모가 31달러로 시작한 주식은 상장 후 불과 몇 주 만에 700% 이상 급등하며 시가총액이 600억 달러에 육박했다.
금융권 규제를 준수하는 암호화폐가 시장의 인정을 받았다는 신호였다.
SEC의 감독과 정기적 실적 공시라는 제도권의 규칙을 받아들임으로써, 서클은 업계에 새로운 신뢰의 기준을 제시했다.
물론 테더에도 강점은 있다.
테더는 규제가 덜한 역외시장과 탈중앙화 금융(DeFi)시장의 주인공이다.
반면, 서클은 금융기관과 일반 금융시장에 진출하며 덩치를 키우고 있다.
DeFi의 시장규모는 2025년 6월 기준 320억 달러를 넘어섰다.
테더는 DeFi의 혈액 구실을 한다.
대출, 예금 등 모든 DeFi 활동의 기본 회계 단위이자 교환 매개, 그리고 핵심 담보 자산으로 사용된다.
  금융의 미래, 스테이블코인 스테이블코인은 암호화폐 거래라는 초기 목적을 넘어 글로벌 금융의 핵심 영역으로 진출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느리고 비싼 기존의 중개은행망(SWIFT)을 우회해 거의 즉각적이고 저렴한 글로벌 결제를 가능하게 한다.
기업 간(B2B) 결제 시장에서 월간 스테이블코인 거래량은 2년 만에 1억 달러 미만에서 2025년 30억 달러 이상으로 30배 넘게 급증했다.
  주요 금융기관과 대기업은 이미 스테이블코인을 도입하고 있다.
독일의 지멘스(Siemens)는 JP모건의 JPM 코인을 사용해 유로화 기반의 기업 재무 결제를 처리한다.
씨티그룹은 세계 최대 해운사 머스크(Maersk)와 함께 스마트 계약을 통해 선박의 통관이 완료되면 자동으로 결제가 이루어지는 토큰화 예금 파일럿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러한 사용 사례의 확장은 스테이블코인의 본질이 단순한 ‘암호화폐’에서 ‘프로그래머블 머니(Programmable Money)’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초기 스테이블코인은 트레이더들이 자금을 임시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됐다.
이제는 회사 간 대금 결제, 국가 간 급여 지급, 무역 금융 등 실제 금융 환경에 쓰인다.
이는 단순히 송금이 빠르고 저렴해지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거래가 데이터로 남고 스마트 계약에 의해 자동화된다.
은행에서만 하던 자동이체를 더 다양한 형태로 더 빠르게 할 수 있게 된다.
  세계 주요 경제권은 암호화폐의 미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동시다발적으로 스테이블코인 규제 법안을 만들고 있다.
미국은 지니어스법을 유럽연합(EU)은 ‘암호자산 규제 법안(Markets in Crypto-Assets Regulation)’을 통해 암호화폐를 기존 금융권에 편입시키고 있다.
홍콩이나 싱가포르 같은 아시아의 금융 허브도 자산 담보, 발행사 인가, 소비자 보호라는 핵심 원칙에서 유사한 접근법을 보이며 경쟁적으로 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한국은 민간 혁신과 중앙은행의 통제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고 있다.
정부는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공개된 초안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 발행은 금융위원회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 허용에 대한 정치적 논의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7월 1일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열린 유럽중앙은행(ECB) 주최 연례 통화정책 포럼에서 “최근 미국에서 지니어스법이 통과되며 많은 한국 회사들이 정부에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며 “하지만 비은행 금융기관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은 한은의 권한을 넘어서 정부 기관과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스테이블코인 규제 경쟁은 미래 화폐의 표준을 정하고, 새롭게 부상하는 디지털 경제의 중심에 자국 통화를 위치시키기 위한 국가 간의 전략적 경쟁이다.
이 경쟁의 결과가 21세기 금융 인프라의 주도권을 결정할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규제받는 스테이블코인은 은행 예금처럼 일상적 금융 도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은행 앱, 기업 재무 시스템, 전자상거래 플랫폼에 완벽하게 통합돼 전통 금융과 디지털 금융의 최종 융합을 이끌 것이다.
테더와 서클의 이야기는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준다.
그리고 지금 만들어지는 규제의 틀은 그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우리는 더는 기술적 실험을 관찰하는 방관자가 아니라, 새로운 글로벌 금융 체계가 생기는 현장을 목도하고 그 과정에 참여하는 주체가 됐다.
금융의 미래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국가 전략 자산’된 스테이블코인의 정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