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이재명 정부 첫 ‘조 단위’ 투자 주인공
● 정부 출범 2주 만에 1.3조 투자 보따리 풀어
● 고성장 OLED 시장 대응…LCD서 중심 이동
● 영업 현금으로 투자금 마련…中 공장 매각 대금도 투입
● ‘리쇼어링’ 모범 사례…보조금 최대 500억 기대
LG디스플레이 파주 사업장은 패널 공장, 사무동, R&D동으로 구성돼 있다.
사진은 경기 파주에 위치한 LG디스플레이 파주 사업장 전경. LG디스플레이 대규모 국내 투자의 주인공은 재계 4위 LG그룹, 정확히는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계열사 LG디스플레이였다.
6월 4일 이재명 정부 출범 후 누가 가장 먼저 조 단위 국내 투자 계획을 발표할지를 두고 눈치 싸움이 벌어진 가운데, 조용히 있던 LG디스플레이가 번쩍 손을 든 것이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LG그룹을 봐도, LG디스플레이를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그간 LG그룹은 먼저 나서서 주목받기보다 조용히 실리를 챙기는 걸 선호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실제로 다른 그룹사와 비교해 각종 행보에 신중한 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LG디스플레이가 영업실적이나 시가총액 규모 등에서 재계를 대표하는 ‘간판 기업’인 것도 아니다.
특히 최근 들어 더욱 내세울 게 마땅치 않아졌다.
중국 업체들의 가격 공세에 맞서느라 수년째 적자를 면치 못했고, 거듭된 주가 하락으로 시가총액 역시 코스피 100위 근방에서 머물렀기 때문이다.
LG디스플레이는 5월 13일(현지 시간) 미국 새너제이 맥에너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SID 2025’에 참가했다.
사진은 LG디스플레이 전시 부스. LG디스플레이 정부 출범 2주 만에 1.3조 투자 보따리 풀어 앞서의 요인들이 맞물려 LG디스플레이의 투자 발표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현시점 반드시 투자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누적된 적자 운영으로 현금 곳간이 풍족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대규모 투자금을 마련할지에 대한 궁금증도 커졌다.
LG디스플레이는 6월 17일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신기술과 설비 확보에 1조2600억 원을 신규 투자한다고 발표했고, 이날 이사회에서 이를 의결했다.
OLED 기술경쟁력과 성장 기반을 선제적으로 강화해 글로벌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정철동 LG디스플레이 사장은 투자 계획 발표 직후 “LG디스플레이만의 차별화 기술과 제품을 선제적으로 발굴해 고객 가치를 제공하고 시장을 선도하겠다”고 강조했다.
  해당 투자는 이례적으로 주목받았다.
무엇보다 시점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지 2주도 채 되지 않은 때였기 때문이다.
국내외 언론이 앞다퉈 쏟아낸 LG디스플레이 투자 발표 기사는 제목과 내용이 대동소이했다.
모두가 ‘신(新)정부 출범 이후 대기업 최초 조 단위 투자’를 헤드라인으로 뽑았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을 때 주요 기업들이 경쟁하듯 대규모 투자, 고용 계획을 내놓는 건 이상할 게 없는 일이다.
기업들은 진보·보수 정권을 막론하고 정부의 경제 살리기 행보에 큰 보탬이 돼왔다.
전례도 비일비재하다.
기업들은 이왕이면 규모나 순서 면에서 주목도가 가장 높은 ‘1등’이 되고자 치열하게 물밑 경쟁을 벌이곤 했다.
하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이 촉발한 조기 대선으로 투자 계획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던 탓이다.
게다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폭탄’ 등 글로벌 통상 리스크로 투자 불확실성 역시 어느 때보다 커졌다.
지난해 연말부터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경영 환경이 이어지자 기업들은 눈치를 보며 몸 사리기에 돌입했다.
통상정책과 각종 규제, 보조금 등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 투자 발표를 서두르기보단 일단 천천히 상황을 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섣불리 움직였다간 괜히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어서다.
투자 계획 같은 공식 발표는 현실적으로 ‘낙장불입’이다.
  그러던 차에 LG디스플레이가 손을 들고 나섰다.
LG디스플레이가 국내에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고 밝힌 것은 2021년 8월(3조3000억 원) 이후 약 3년 10개월여 만이다.
LG디스플레이는 전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OLED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높은 성장세가 예상되는 OLED 기술경쟁력 강화와 차세대 기술이 적용된 패널·모듈 생산 인프라 구축에 1조 원 이상을 쏟아붓겠다는 것이다.
고성장 중인 OLED 시장 대응…LCD서 중심 이동 이는 회사가 수년 전부터 추진 중인 사업구조 전환과도 맥을 같이한다.
LG디스플레이는 시장 환경 변화에 발맞춰 사업의 중심축을 액정표시장치(LCD)에서 OLED로 옮기고 있다.
OLED는 백라이트 없이 각 픽셀이 스스로 빛을 내 LCD보다 생생한 색상과 뛰어난 시야각을 자랑하는 고부가 제품이다.
LG디스플레이는 안정적 기술개발과 양산 체제 확보뿐 아니라 시장의 수요 등을 철저히 계산해 가며 이번 투자를 준비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789억4304만 달러를 기록한 세계 LCD 시장은 2028년까지 연평균 성장률이 약 1%에 그칠 전망이다.
반면 OLED는 같은 기간 매년 5%씩 성장해 2028년 관련 시장이 686억7500만 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분석했다.
시장규모 자체는 LCD가 크지만, 성장률에선 OLED가 월등히 앞선다.
머잖아 역전이 일어날 거란 데는 업계 내 이견이 없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중국 광저우에 있는 LCD 공장을 중국 최대 가전업체 TCL의 디스플레이 자회사 CSOT(차이나스타)에 매각하는 등 사업구조를 OLED 중심으로 재편하는 데 공들여 왔다.
물론 여기엔 중국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글로벌 LCD 시장을 장악하다시피 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LCD의 경우 한중 기업 간 기술격차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다만 OLED는 이야기가 다르다.
중국 업체의 거센 추격에도 기술격차가 여전해 한국 기업의 미래 먹거리로 손색없다.
LG디스플레이는 이번 집중 투자로 경쟁사와 격차를 더욱 벌리겠다는 각오를 보였다.
이를 통해 ‘미래성장동력’과 ‘수익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단 복안이다.
  정철동 LG디스플레이 사장이 1월 16일 마곡 LG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4세대 OLED 패널 기술 설명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 문제는 돈이다.
LG디스플레이는 최근 3년간 영업 적자를 낸 탓에 재무 여건이 크게 악화한 상태다.
지난해 초 1조3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 등을 실시하며 재무 개선에 나섰지만,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다.
  이런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는 자칫 재무구조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투자 계획이 알려진 뒤 투자금 마련 방안에 관심이 집중된 배경이다.
올해 1분기 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LG디스플레이의 현금성 자산(별도 기준)은 1353억 원에 불과하다.
LG디스플레이는 사채 발행이나 유상증자, 금융권 차입과 같은 인위적 외부 조달 없이, 자연스럽게 유입되는 현금을 바탕으로 투자를 집행할 계획이다.
올해 6월부터 2027년 6월까지 3년에 걸쳐 투자가 진행되는 만큼,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투자가 분산돼 집행된다고 가정하면 올해 하반기에 약 3000억 원, 내년 연간 약 6000억 원, 2027년 상반기 약 3000억 원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재 영업활동을 통해 유입되는 현금흐름 등을 고려할 때 충분히 충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LG디스플레이의 영업활동을 통한 현금흐름은 지난해 1분기까지 마이너스(-)였다가 2분기부터 플러스(+)로 전환됐다.
구체적으로 2분기 8110억 원, 3분기는 6420억 원, 4분기엔 1조5380억 원으로 집계됐다.
투자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충분하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에도 영업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현금으로 시설투자(CAPEX)를 하는 등 보유 현금으로 투자비용을 해결해 왔다.
지난해 연간 2조6340억 원의 현금이 들어왔는데, 대부분(약 2조2840억 원)이 CAPEX에 들어갔다.
LG디스플레이 관계자는 “에비타(EBITDA·상각 전 영업이익)와 현금 창출 능력이 괜찮은 편이라 투자를 위한 별도의 자금 조달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LG디스플레이는 이번에 발표한 투자를 포함해 올해도 지난해와 비슷한 2조2000억~2조3000억 원 수준의 CAPEX를 실시할 방침이다.
‘리쇼어링’ 모범 사례…보조금 최대 500억 기대 광저우 LCD 공장 매각 대금도 일부 쓰일 것으로 전망된다.
매각 당시 2조2446억 원을 받았는데 이 중 1조 원을 사용해 LG전자와 채무 관계를 해결했을 뿐 나머지는 남아 있다.
앞서 김성현 LG디스플레이 최고재무책임자(CFO)는 4월 24일 1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 콜에서 “(광저우) 공장 매각을 통해 나오는 캐시플로 중 일부는 재무구조 개선과 사업력 강화를 위한 OLED 부문 투자, 미래 부문 투자에 들어가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투자는 국내 경제 회복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의미도 가진다.
LG디스플레이는 전체 1조2600억 원 가운데 7000억 원을 경기도 파주 사업장에 최신 OLED 설비를 설치하는 데 사용할 계획이다.
나머지 5600억 원은 베트남 OLED 모듈 공장에 투입할 방침이다.
내부에서는 이번 투자가 파주를 비롯한 경기도 지역 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설비투자뿐 아니라, 중소 협력업체와 연계가 이루어지면서 발생하는 간접 경제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골목상권 등 지역 활성화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이다.
무엇보다 중국 LCD 공장 매각 대금으로 국내 투자를 집행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일종의 ‘리쇼어링’으로도 볼 수 있다.
리쇼어링은 기업이 해외로 진출했다가 다시 본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한다.
LG디스플레이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첨단기술 유출 리스크 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는 LG디스플레이의 국내 투자 발표가 다른 기업의 리쇼어링을 이끄는 마중물이 될지 주목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 격화와 첨단기술 유출 리스크 등으로 해외 공장 운영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데다, 이재명 정부도 국내 투자를 독려하고 있어서다.
  앞서 이 대통령은 6월 13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5대 그룹 총수·경제단체장 간담회’에서 “기업이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협조하는 게 정부의 가장 중요한 일”이라며 실용적 시장주의 노선을 걷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실제로 정부는 리쇼어링 기업을 대상으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국가전략·첨단산업 기술 분야 기업이 국내 복귀를 결정할 경우 최대 500억 원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첨단산업의 국내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자본 리쇼어링’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도 검토 중이다.
LG디스플레이도 광저우 공장을 매각하면서 산업통상자원부에 리쇼어링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턴 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정부의 노력에 화답하는 모습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보조금 규모는 정부 심사를 통해 최종적으로 확정된다.
LG를 시작으로 주요 기업이 줄줄이 대규모 ‘투자 보따리’를 풀 거란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이 대통령이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협조 당부차 실시한 첫 국회 시정연설에서 경제를 스물네 번 언급하는 등 경제 살리기에 드라이브를 걸겠단 뜻을 분명히 밝히며 이 같은 관측에 힘이 실리는 추세다.
향후 LG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을 기업이 어디가 될지 역시 핵심 관전 요소다.
 
LG디스플레이의 ‘리쇼어링’, 한국 경제 마중물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