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승경의 Into the Arte] 스티븐 킹 원작, 프랭크 다라본트 각색 ‘쇼생크 탈출’
●  살인 누명으로 쇼생크 교도소에 수감된 주인공
●  교도소에 적응하는 동안에도 ‘탈옥’이란 희망 놓지 않아
●  동료들에게도 도서관, 음악으로 자유 선사
●  아카데미 7개 부문 노미네이트됐으나 수상엔 실패
영화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 앤디 듀프레인이 탈옥에 성공하는 장면. IMDB
희망이란 게 참 끈질기다.
절망적 상황에서도 마음 한구석 남은 작은 희망이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스티븐 킹(78)은 희망의 본질을 집요하게 파헤친 작가다.
1947년 미국 메인주 포틀랜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와 각지를 떠돌며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 와중에도 형이 발행하던 동네 신문에 기사를 쓰며 글쓰기에 눈을 떴다.
이후 40년 넘게 500편이 넘는 작품을 쏟아내며 ‘이야기의 제왕’으로 우뚝 섰다.
  그의 문체는 대중적이면서도 인간의 마음 깊은 곳을 파고드는 힘이 있다.
그는 단순한 공포를 넘어, 인간의 내면과 본질적 문제를 집요하게 탐구한다.
대표작 ‘캐리’ ‘샤이닝’ ‘미저리’ ‘그것’ 모두 공포·스릴러 소설이지만, 이야기 안에서는 두려움과 희망, 절망과 구원이 교차한다.
영화 ‘쇼생크 탈출’의 원작이 된 중편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을 집필한 스티븐 킹. 스티븐 킹 홈페이지 특히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이하 쇼생크 탈출)’은 1982년 출간된 중편집 ‘사계(Different Seasons)’에 실린 네 편의 작품 중 하나다.
이 네 작품은 각각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테마로 묶였으며, 각기 다른 인생의 계절과 인간의 운명을 상징한다.
‘봄’에 해당하는 ‘쇼생크 탈출’은 희망의 시작을, ‘여름’의 ‘소년 시절의 끝(스탠 바이 미)’은 우정과 성장, ‘가을’의 ‘시체’는 인간 내면의 어둠, ‘겨울’의 ‘방법적 호흡’은 절망과 죽음을 다룬다.
이들은 모두 인간이 극한 상황에서 어떻게 자신을 지키고, 어떤 선택을 하는지 탐구한다.
원작 ‘쇼생크 탈출’을 영화로 옮긴 프랭크 다라본트(66) 감독의 삶의 궤적도 녹록지 않다.
1959년 헝가리 난민의 아들로 프랑스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미국으로 건너왔다.
영화제작 조수로 시작해 시나리오도 쓰고, 감독으로 카메라 뒤를 지휘하다가 배우로도 스크린을 채웠다.
소설을 읽고 확신에 친 다라본트 감독은 ‘쇼생크 탈출’의 영화 판권을 사들였다.
이후 직접 8주간 각색한 끝에 대본을 완성했다.
직접 제작사 문을 두드려 34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았다.
다라본트 감독은 이후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그린마일’과 ‘미스트’도 연출한다.
킹 원작, 다라본트 각색 3부작의 첫 영화가 ‘쇼생크 탈출’인 셈이다.
  누명으로 ‘감옥’이라는 절망에 떨어진 주인공 소설과 영화 모두 ‘엘리스 보이드 레딩(모건 프리먼)’, 통칭 ‘레드’의 내레이션을 통해 주인공 앤디 듀프레인(팀 로빈스)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다만 소설에서 레드는 아일랜드계 백인으로 묘사되는 반면, 영화에서는 흑인으로 등장해 인상적 변화를 보여준다.
  영화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 앤디 듀프레인(팀 로빈스)이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LP를 골라 3막에 나오는 ‘편지의 이중창(Che soave zeffiretto)’을 교도소장 사무실에서 틀어주는 장면. IMDB 앤디는 유망한 은행원이었지만 아내와 그 불륜 상대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무기징역형을 선고받는다.
하루아침에 범죄자가 돼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셈이다.
앤디는 절망 대신 자신만의 방식으로 희망을 품는다.
  그가 수감된 쇼생크 교도소는 그야말로 ‘지옥’이다.
강력범들이 주로 수감된 곳이라 재소자의 인권은 없다.
간수들에게 밉보였다가는 죽음을 피하기 어려울 정도다.
앤디는 교도소 내 밀수업자인 레드와 가까워지며 교도소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 나간다.
  그는 자신이 수감된 쇼생크 교도소 내의 부패와 불의를 목격하면서도 좌절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이용한다.
은행원 시절의 능력을 발휘해 교도관들의 세금 컨설팅에 나선다.
거의 모든 교도관이 그에게 세금 문제를 상담하는 지경에 이르며 그는 조금은 편하게 수감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교도소 생활에 안주하는 것도 아니다.
수감 기간 내내 탈옥 통로를 만들고, 작은 도서관을 세우며 동료 죄수들에게 희망의 씨앗을 뿌린다.
영화의 백미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이중창이 교도소에 울려퍼지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통해 교도소 안이라도 마음만은 자유로울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앤디는 교도소장의 사무실에 몰래 들어가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LP를 골라 3막에 나오는 ‘편지의 이중창(Che soave zeffiretto)’을 튼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은 바람둥이인 알마비바 백작이 피가로와 결혼을 앞두고 있는 하녀 수잔나를 유혹하려 하지만 백작부인과 수잔나, 피가로가 기지를 발휘해 이를 막는 이야기다.
영화에 삽입된 곡은 오페라의 등장인물인 알마비바 백작부인과 수잔나가 백작을 속이기 위한 몰래 편지를 쓰는 장면에서 부르는 곡이다.
  음악은 죄수들에게 잠시나마 자유와 희망의 감정을 선사한다.
레드(모건 프리먼)는 “지금도 저 두 이탈리아 여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
사실 알고 싶지도 않다.
그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 가슴이 저릴 만큼 벅찬 무언가를 노래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고 독백한다.
  이 장면은 영화 전체의 복선이기도 하다.
오페라 속 두 여인이 권력자를 속여 자유를 얻으려 하듯, 앤디 역시 감옥이라는 거대한 권력의 벽을 교묘하게 이용해 탈출을 준비한다.
앤디가 교도소 내 ‘비공식 회계사’라는 소문은 교도소장에게까지 퍼진다.
교도소장은 앤디에게 그가 받은 뇌물 등 자금을 세탁하라는 특명을 맡긴다.
교도소장의 일을 해주는 만큼 앤디는 교도소 내 사무실에 드나드는 특권을 누린다.
하지만 앤디는 편안한 수감 생활에 안주하지 않는다.
돌망치로 조금씩 교도소 방 안을 파가며 탈옥 통로를 만든다.
  앤디는 감옥 안에 도서관도 만든다.
그가 만든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쌓아놓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는 6년 넘게 정부에 편지를 보내 예산을 요청하고, 마침내 ‘브룩스 도서관’을 세운다.
이곳에서 죄수들은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세상과 연결되는 작은 창을 발견한다.
도서관은 앤디가 자신만의 탈출을 준비하는 동안, 다른 죄수들에게도 마음의 탈출구를 내주는 공간이었다.
앤디는 희망은 먼 미래의 기적이 아니라, 오늘의 작은 실천과 반복에서 자란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인물이다.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희망 그러나 모두가 암흑 속에서 희망을 견디는 것은 아니다.
영화 중반, 쇼생크 교도소의 상징적 인물 브룩스가 가석방되는 장면은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브룩스는 50년 가까이 감옥에서 복역한 끝에 세상 밖으로 나간다.
  그는 감옥이라는 작은 세계에 너무 익숙해졌다.
오히려 자유가 숨 막히게 다가온다.
결국 브룩스는 “브룩스가 여기 있었다”라는 쓸쓸한 문구를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이 장면은 관객에게 ‘희망’이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난관일 수 있음을 일깨운다.
레드는 이 사건을 두고 “이 벽이란 참 이상하다.
처음엔 미워하다가, 나중엔 익숙해지고, 결국엔 그 벽에 의지하게 된다”고 말한다.
브룩스의 비극은, 환경에 너무 길들여진 나머지 희망을 품는 것조차 잊어버린 인간의 슬픈 초상이다.
시간이 흘러 마침내 레드도 가석방된다.
그는 브룩스와 똑같은 방, 똑같은 일자리를 배정받고, 심지어 같은 가게 창문 앞에서 망설인다.
브룩스의 흔적과 두려움이 레드의 마음을 짓누른다.
레드는 한때 “희망은 위험한 것”이라며, 희망을 마음에서 지워내려 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 역시 바깥세상에서 극심한 두려움과 무력감에 시달리고, 브룩스와 똑같이 모든 것을 포기할 위기에 놓인다.
이때 레드를 붙잡아준 것은 앤디가 남긴 희망의 메시지였다.
레드는 마침내 익숙함의 사슬을 끊고, 앤디가 남긴 약속의 장소로 향한다.
그곳에서 앤디의 편지를 발견한다.
레드가 앤디를 만나러 버스에 올라타 국경을 넘어가는 마지막 장면은 희망이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영화 ‘쇼생크 탈출’의 등장인물 엘리스 보이드 레딩(모건 프리먼)이 주인공 앤디 듀프레인을 찾아 멕시코 지와타네호를 찾아가는 모습. IMDB 치밀한 탈출, 그리고 자유의 쾌감 앤디는 19년 동안 돌망치로 벽을 파내며 탈출을 준비한다.
그의 탈출은 리타 헤이워스, 매릴린 먼로, 라켈 웰치 등 시대의 스타 포스터 뒤에서 이루어진다.
폭풍우 치는 밤, 앤디는 벽을 뚫고 하수관을 타고 쇼생크 교도소를 탈출한다.
그는 교도소장의 비자금을 인출하고, 비리 증거를 언론과 경찰에 넘긴다.
교도소장은 체포 직전 자살하고, 간수들은 체포된다.
  앤디는 멕시코의 지와타네호에서 새 삶을 시작하고, 레드는 앤디의 편지와 초대를 받아 마침내 희망을 품고 국경을 넘어 그와 재회한다.
두 사람은 태평양 앞에서 새로운 인생을 맞이한다.
그 바다의 푸른빛은, 어쩌면 희망 자체일지도 모른다.
소설은 레드가 앤디를 만나러 떠나는 여정만을 암시하는 열린 결말을 택하지만, 영화는 두 사람이 멕시코 해변에서 재회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영화는 빗속 탈출 장면이나 소장의 자살 등 극적인 시각적 연출이 강조되는 반면, 소설은 인물의 내면 심리와 현실적 분위기에 더 집중한다.
영화 ‘쇼생크 탈출’은 상복이 없는 영화다.
개봉 당시에도 큰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CNN의 창립자이자 케이블 TV 업계 거물 테드 터너가 영화의 2차 판권을 사들여 자신의 채널에 틀며 입소문이 퍼졌다.
뒤늦은 TV 채널 속 흥행 덕에 ‘쇼생크 탈출’은 1995년 아카데미상에서 작품상·남우주연상·각색상·음악상·음향상·촬영상·편집상 등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하지만 ‘포레스트 검프’ ‘펄프 픽션’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등 쟁쟁한 경쟁작들에 밀려 수상하는 영예를 안지는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존재감이 빛나는 명작으로 꼽힌다.
쇼생크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교도소지만, 영화는 미국 오하이오주 맨스필드의 실제 교도소에서 촬영됐다.
1940~50년대 미국 교도소의 어둡고 비인간적 현실,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교도소장,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는 죄수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팀 로빈스와 모건 프리먼의 명연기, 그리고 희망에 대한 신념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빛나는 명작으로 남았다.
‘쇼생크 탈출’은 단순한 탈옥극이 아니다.
절망의 감옥에서 희망을 행동으로 옮긴 한 인간의 치밀한 여정, 그리고 그 희망이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전달돼 모두를 변화시키는 기적을 보여준다.
희망은 언젠가 찾아올 대단한 기적이 아니라,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절망의 벽 앞에서도, 우리는 매일의 작은 행동으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작은 희망이, 언젠가 우리를 진짜 자유로 이끈다.
  황승경 ‌● 1976년 서울 출생 ● 이탈리아 레피체국립음악원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성균관대 공연예술학 박사 ● 前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 리포터, 월간 ‘영카페’ 편집장 ● 저서 : ‘3S 보컬트레이닝’ ‘무한한 상상과 놀이의 변주’ 外
19년간 놓지 않았던 탈옥 의지, 그 희망이 낳은 기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