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왜, 굳이, 지금 다시 만들었을까. 요즘 신작들을 쭉 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질문이 불쑥 튀어나온다.
오리지널 스토리의 부재는 영화업계의 유구한 전통이자 고질병이다.
많은 자본과 인력이 투입되는 만큼 (어떤 방식이든) 검증된 소재에 끌리는 건 당연한 일이라 소설에서 코믹스로, 웹툰에서 웹소설로 시대마다 인기 IP는늘 영상화의 표적이 된다.
그마저 몇해 전부터는 곳간에 동이 났는지 아예 고전 클래식을 리메이크, 리부트하는 프로젝트가 부쩍 늘어났는데, 넓게 보면 애니메이션 실사화 프로젝트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여러 시도 중에서도 유독, 과거 성공한 영화를 다시 만들거나 이어 만드는 경우는 미묘하게 다르게 다가온다.
단지 인기 있을 만한 소재를 반복하는 것과는 다른 욕망이 슬쩍 끼어든다고 할까. 그 시절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노스탤지어가 묻어난다고 해도 좋겠다.
슬프지만 노스탤지어는 기본적으로 되돌아갈수 없음을 전제로 한 감정이다.
불가능함을 알기에, 더 그립고 애잔하고 애틋해지는 법. 다시 부활해버린 영화들을 마주하는 시선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개러스 에드워즈 감독의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이나 제임스 건 감독의 <슈퍼맨>이 제작된 (현실적인) 이유는 간단하다.
원작에 대한 아우라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만큼 성공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자본의 욕망은 이미 죽은 존재도 무덤에서 끄집어낼 만큼 강렬하다.
본래 팬심이란 직접 보고 나서 투덜거리는 법이라 아쉽다고 투덜대면서도 안 보긴 어렵다.
그렇게 비판해도 내가 해야 직성이 풀리겠다는 마음으로 극장으로 걸음을 옮겨 예정된 실망을 수행한다.
왜 만들었는지 머리로는 납득되지만 여전히 가슴이 뛰진 않는다.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과 <슈퍼맨> 모두 되돌아가고 싶은 방향이 명확해 보였다.
원전에 대한 존경심이 깔려 있었고 무엇을 그리워하는지도 보였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두 작품 모두 2시간을 즐기기엔 충분히 만족스러웠지만 왜, 지금 다시 돌아와야 했는지에 대해선 명확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달리 표현하면 새로운 클래식으로 거듭나겠다는 야심이 부족하다.
2025년 부활한 공룡과 원조 슈퍼히어로에겐 지금 시대에 맞춘 과감한 해석이 모자랐다.
물론 과감한 재해석을 했다면 그건 그것대로 비판받았을 게 뻔하다.
달리 말해 어느 방향으로 가도 비판받을 수밖에 없는게 되살아난 자의 숙명이다.
(상업적으로) 안전한 포지션은 (작품성에서) 어정쩡함이란 리스크를 동반하는 셈이다.
클래식이란 단지 시간이 묻은, 옛것이 아니다.
그걸 어떻게 다루겠다는 방향성의 유무가 클래식을 결정짓는다.
지나간 것을 다시 다루는 건 결국 (작가적) 태도의 문제라는 말이다.
왕가위 감독의 첫 드라마 <번화>를 보며 새삼 태도에 대한 생각에 잠긴다.
드라마를 찍어도, 무대를 1990년대 상하이로 옮겨도,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해도 왕가위는 왕가위였다.
자신이 기억하는 감각으로 무언가 ‘되어가던’ 시대를 포착하는 손길은 그가 왜 이 작품을 만들어야 했는지를 증명한다.
국내 최초 개봉하는 소마이 신지의 <이사>도 마찬가지다.
1993년에 태어난 이 영화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30년의 시간을 가볍게 뛰어넘어, 2025년 한국에서 다시 태어난다.
현재가 된다.
작가가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무엇을 갈망하는지, 관객은 이미 알고 있다.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전지적 관객 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