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부장박대리] 전기차 시장 수요 부진 장기화로 혼돈 시기 돌입
디지털데일리 소부장박대리 독자 여러분, 이번 주도 열심히 달린 박대리가 이차전지·에너지 이슈를 들려드립니다.
<박대리보고서>에서는 금주에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뉴스를 선정해, 보다 쉽게 풀어드리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코너입니다.
박대리보고서와 함께 놓친 이차전지·에너지 이슈, 체크해보시죠. <편집자주>
삼성SDI 기흥 본사 [ⓒ삼성SDI]
[디지털데일리 고성현 기자] 전기차 시장이 수요 부진 장기화로 혼돈의 시기에 돌입했습니다.
배터리 사와 합작해 대규모 생산라인을 구축한 자동차사들은 리튬인산철(LFP) 등 저가형 전기차용 배터리 전환에 이어, 에너지저장장치(ESS)로의 용도 전환까지 고려하면서 수익화 의지를 드러내고 있죠. 일부 업체들은 전기차보다 내연기관에 좀 더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며 전동화 속도를 늦추는 모습도 보이고 있습니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삼성SDI는 GM과 짓는 합작법인 발주에 LFP 배터리용 설비를 추가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 중 발주가 유력했던 3개 라인에 대한 발주에 LFP 배터리 전용 라인 설비를 넣는 식입니다.
당초 업계에서는 삼성SDI가 올해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배터리 생산 라인 3곳, 내년 LFP 등 추가 라인을 1곳 짓는 '3+1' 구도를 진행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그러다 최근 GM의 요청 등으로 앞서 짓기로 한 3개 라인 중 하나를 전기차용 LFP 배터리 라인으로 변경하는 안이 검토되는 겁니다.
GM과 삼성SDI가 선제적인 LFP 라인 투자를 결정하게 된 원인은 예상보다도 훨씬 더딘 전기차 수요 때문입니다.
지난해 본격화된 캐즘이 올해 상반기까지 이어지면서 전기차 판매량이 떨어졌고, 오히려 내연기관 중심 판매가 늘어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기존 계획을 미루게 됐다는 의미죠. 실제로 시장조사업체 콕스오토모티브는 지난달 미국 전기차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5.6% 줄어든 10만대에 그친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 미국 자동차 판매량은 9.9% 가량 늘면서 내연기관 차량은 증가세를 유지했죠.
이미 삼성SDI와 1차 라인을 가동 중인 스텔란티스도 일부 라인의 LFP 배터리 전환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이한 점은 기존 전기차용 NCA 라인을 LFP, 그것도 ESS용 LFP 배터리로 전환하는 방안을 일부 검토하고 있다는 겁니다.
당장 LFP 기반 전기차용 라인을 깔더라도 수요를 확신하기 어려운 만큼 ESS용 배터리를 외부에 판매하자는 이유에서죠. 현재까지는 내부 검토 정도 수준 단계로, 실질적인 변경 계획으로는 구체화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스텔란티스가 배터리 생산라인을 아예 ESS로 바꾸는 것은 저조한 미국 내 판매량 때문입니다.
이 회사의 1분기 기준 미국 내 차량 판매량은 전년 대비 20% 가량 떨어졌죠. 전기차로 한정하면 그 폭은 더욱 커질 수 있어, 사실상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등과 합작한 배터리 생산 라인을 온전히 가동하기 어려운 상황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이를 ESS로 전환해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를 우선 수령하고, 유의미한 성장세에 들어선 ESS 시장을 겨냥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옵니다.
BYD 전기차 시걸(Seagull). [ⓒBYD]
미국 이외의 시장에서는 중국 전기차의 공세가 두드러지면서 국내 배터리 3사,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부담이 커지는 모양새입니다.
최근 BYD가 '시걸(Seagull)', '돌핀(Dolphin)', '씰(Seal)' 등 전기차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차량 총 22개 모델을 내달 말까지 대폭 할인한다고 발표하면서죠. 시걸은 기존 6만9800위안(약 1290만원)에서 5만5800위안(약 1030만원)으로, 씰은 34% 내린 10만2800위안(약 1900만원)에 판매됩니다.
업계에선 BYD가 재고 해소와 생산 목표 달성을 동시에 노리고 있다고 봅니다.
BYD의 올해 목표는 전년 대비 28% 늘어난 550만 대 판매고요. 하지만 지난달까지 약 15만 대의 재고가 쌓여 있는 상태로 전해지며, 이는 BYD 한 달 판매량의 절반 수준에 해당합니다.
이 같은 움직임이 중국 전기차 업계 전반으로 확산하는 분위기라는 겁니다.
BYD가 가격 인하 방침을 발표한 직후 창안자동차는 10% 이상 가격을 낮춘다고 밝혔고, 립모터는 일부 모델의 가격을 30% 이상 인하했습니다.
지리자동차 역시 7개 차종을 최대 18%까지 할인 판매하며 치킨게임 양상에 가세한 상태입니다.
주목되는 점은 이 같은 정책에 중국 내수시장에 진출한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의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겁니다.
테슬라, 현대차, 기아차는 중국을 주요 거점으로 삼고 있으며, 이들 기업도 BYD와의 가격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대응 전략을 수립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장용호 SK이노베이션 신임 총괄사장(왼쪽)과 추형욱 SK이노베이션 신임 대표이사. [ⓒSK이노베이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다 보니 국내 배터리 관련 기업들도 새판짜기에 돌입한 모양새입니다.
지난 28일 SK이노베이션은 이사회를 열고 추형욱 대표이사와 장용호 총괄사장 선임 안건을 의결했습니다.
기존 대표이사였던 박상규 사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을 결정했죠. SK이노베이션은 "조직 안정화와 사업전략의 흔들림 없는 실행을 위해 내부 이사를 대표이사와 총괄사장에 각각 선임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인사는 단순한 인물 교체를 넘어 SK이노베이션의 에너지 포트폴리오 전반에 걸친 전략적 '새판 짜기'로 해석됩니다.
SK온의 배터리 사업이 전환점에 있는 가운데,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 역시 '넷제로(Net Zero)'와 수익성 균형을 위한 중장기적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는 판단입니다.
신임 추형욱 대표이사는 저탄소 LNG, 재생에너지, 수소 등 '그린 포트폴리오'를 중심으로 SK E&S의 구조적 전환을 주도해온 인물입니다.
특히 지난해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이후에는 E&S CIC 사장과 시너지추진단장을 겸임하며 양사 간 역량 통합을 진두지휘했습니다.
에너지솔루션 중심의 신규 성장 축 확보와 더불어, 기존 정유·석유화학 자산의 전환 구도를 설계해 온 만큼, 앞으로의 리더십 기조 역시 ‘에너지 리밸런싱’이 핵심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총괄사장으로 선임된 장용호 대표는 SK그룹 내 반도체·소재 분야 투자와 M&A를 주도해온 전략가입니. 과거 SK머티리얼즈, SK실트론 인수를 성사시킨 주역으로, SK(주)의 포트폴리오 전략을 이끌어온 만큼, 이번 선임은 SK이노베이션의 성장 축을 '배터리·소재'로 확장하려는 포석이라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장 총괄사장은 앞으로도 SK(주) 대표이사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을 겸직할 예정입니다.
이번 인사를 두고 업계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단순한 수직 계열화가 아닌, 에너지-배터리-신사업 간 구조적 시너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체질을 바꿔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특히 ESG 기반의 자산 리밸런싱, 고정비 구조 개선, 배터리 사업 턴어라운드 등 복합적 과제를 고려할 때, '에너지 중심 전략가(추형욱)'와 '투자·포트폴리오 전략가(장용호)'의 조합은 상징적이라는 분석입니다.
[박대리보고서] 혼돈의 판도 들어선 전기차…K-배터리 생존 전략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