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가까이 ‘쉼표’ 있다
하늘에서 본 목섬 해변.
*출연자 인천관광공사 이도혜 대리, 이하영 주임.
"꽃인데 향기가 없어요."
언니와의 첫 만남이었다.
목소리에 알 수 없는 포근함이 있어, 혼자 온 여행자의 경계심이 무너졌다.
이름은 백리향인데 코를 가까이 가져가도 향이 없다.
언니가 손으로 꽃을 쓸어 만지자 은은한 향기가 퍼졌다.
'향기가 백리까지 퍼진다'는 백리향은 높은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어쩌다 승봉도까지 왔는지 언니는 궁금해 했다.
혼자 여행하기를 즐기는 언니와 처음 혼자만의 여행에 나선 동생, '임시 자매'의 승봉도 여정이 시작되었다.
당산(승봉산림욕장). "멍 때리기 천국인가요?" 이일레해수욕장에 닿자 그 말이 튀어나왔다.
흰색의 고운 모래해변엔 파도 소리만 가득했다.
그 흔한 스피커 음악 소리, 자동차 소리, 관광객 소리 없는, 자연뿐인 해변이었다.
혼자 승봉도에 오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
사회생활 하노라면 누구나 겪는 일인데, 익숙해지지 않았다.
무거운 마음을 비우고 싶었다.
쫓기듯 살아왔는데, 바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일레해수욕장. 마음을 가라앉히는 얼레빗 옛날 빗살이 굵고 성긴 반달모양의 빗을 '얼레빗'이라고 불렀는데, 해변이 반달모양이라 '얼레'에서 '이일레'가 되었다.
소나무 아래 텐트 치고 누워 있으면, 파도 소리를 내는 얼레빗이 할머니 손길처럼 머릿결을 빗겨줄 것 같았다.
바다만 보고 있는데, 마음이 잠잠해졌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해변은 처음이었다.
벗앞해변. 당신 대신 당산 초록이 쏟아졌다.
눈을 감아도 잎은 자라고, 귀를 닫아도 초록이 불어왔다.
살겠다고, 먹고 살겠다고 아득바득 양팔 걷어붙이고, 숲이 자라고 있었다.
*여름은 더워서가 아니라, 너무 살아 있어서 숨 막혔다(출처: 유튜브 메르헨). 당산 소나무숲에서 만난 건, 삶의 욕구였다.
빽빽하게 아우성치는 삶의 열기가 몸을 휘감았다.
한때 7월의 숲을 닮은 사내가 내게 있었다.
당신 없으면 안 되는 시절 지나, 당산 꼭대기에 이르러 있었다.
신황정과 큰섬배·작은섬배해변. 내게 부딪치는 부두치 파도가 바위에 부딪힌다 하여 부두치해변이다.
물검둥오리가 찾아오는 곳이라 하여, 물오리 부鳧에 머리 두頭 자를 써서 부두치라고도 한다.
어떤 말이 맞는지 알 수 없지만 파도와 바람이 거센 곳이란 건 알겠다.
언니와 해변을 맨발로 걸었다.
눈부신 바다가 마음에 와서 부서졌다.
부채바위. 이토록 아름다운 목섬 처음 보는 바다였다.
파랑과 초록, 노랑이 묘하게 섞인 바다 빛깔이 고와서 정신이 아득해졌다.
내가 알던 인천이 아니었다.
사람 발길 닿지 않은 깨끗한 섬에서 볼 법한 바다 빛깔. 부두치해변을 지나 닿은 목섬은 감미로웠다.
미인의 목선처럼 가늘고 매끄러운 해안선, 물에 잠겼다가 드러나길 반복하는 목섬 가는 길만 보고 있어도, 여름이 끝나버릴 것 같다.
목섬 앞 해변. 신씨와 황씨, 풍랑 끝에 닿은 곳 옛날 어부 신씨와 황씨가 고기를 잡던 중 풍랑을 만나 승봉도에 며칠 피했다.
섬을 둘러보니 땅이 비옥하고 경치가 아름다워 정착했다고 한다.
처음엔 '신황도申黃島'라고 불리다가 섬 모양이 봉황이 하늘을 나는 모양 같다 하여 승봉도昇鳳島가 되었다.
섬에서 가장 경치 좋은 신황정申黃亭에 오르면 육지가 아스라이 보인다.
그리운 이가 있다면, 신황정은 오지 말 것이다.
뭍으로 떠난 그리운 사람 기다리며 하염없이 세월 보내기에 좋은 곳이다.
부채바위. 엄마가 섬 그늘에 작은섬배·큰섬배 해변은 배가 난파한 곳이라 그 이름이 유래한다.
큰섬배해변에는 삼형제바위가 있다.
옛날 효심 깊은 세 아들이 어머니 약을 구하려다 여우에게 홀려 삼형제 모두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세 자식 잃은 병든 어미는 얼마나 비통했을까. 비슷하면서 슬픈 전설은 우리 땅 곳곳에 있다.
마을마다 효자는 꼭 있고 결말은 슬픈 것이 닮았다.
작은섬배 해변에는 아무 연관 없는 '섬집 아기' 동요가 울리는 것만 같다.
엄마를 기다리던 아기는 커서 엄마 병 고치려다 바위가 되고. 목섬. "내 사랑을 부탁해" 옛날 양가 집안의 반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던 연인이 이 바위에서 기원하자 사랑이 이뤄졌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코끼리바위(남대문바위). 나는 사랑을 기원하지 않았다.
코끼리 닮은 바위가 신기해서 바라만 보았다.
밀물이면 긴 코를 수면에 담그고 바닷물을 마신다는 바위 코끼리와 함께, 언니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지금이라도 괜찮다면, 내 사랑을 부탁해. 코끼리바위. "승봉도이고 싶다" 백리향이 핀 길을 따라 걸었다.
백리향은 작아서 눈에 잘 띄지 않고 만지기 전에는 향기도 없는 게 꼭 승봉도 같았다.
몇 시간이면 돌 수 있는 작은 섬이지만, 눈길 닿는 곳곳이 꽃향기만큼 여운 깊다.
'백리향 자매'가 된 우리는 한결 걸음이 홀가분해져 있었다.
배를 타고 섬을 떠나는 길, '고요하고 아름다운 승봉도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일레해변 해안길. 월간산 7월호 기사입니다.
비우러 왔는데…채워 준 섬 [인천 승봉도 바캉스 특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