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 논설위원
1988년 9월 30일, '위험한 정사'를 상영(上映)하던 서울 명동 코리아극장 객석에서 물뱀과 꽃뱀 4마리가 발견됐다.
다음 날 다른 극장 화장실에 뱀 10마리가 나타났다.
이듬해 5월 '레인맨'이 상영되던 강남 씨네하우스 영화관엔 뱀 10여 마리와 암모니아가스 4통이 등장했고, 다른 극장에선 객석에 분말(粉末) 최루가스가 뿌려져 관객이 대피하는 소동도 벌어졌다.
할리우드 직접 배급·판매, 즉 미국 대중 영화 직배에 반발한 저항의 일환이었다.
당시 한국 영화계는 '국산 영화 멸종' '문화 주권 침해' '미국의 문화 침략'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일본 대중문화 개방(開放)을 추진하자 '새로운 문화적 침략' '국내 산업 붕괴' 등 우려와 함께 반발이 거셌다.
"일본 팝이 국내 음악산업을 위협한다"는 기사와 연예계 단체의 반대 성명이 잇따랐다.
"국가 정신을 팔아넘긴다"는 반대 여론이 들끓었고, '정체성 침해' '문화제국주의' '침공' 등 저항이 극심했다.
지난달 군 복무(服務)를 끝낸 세계적인 아이돌 방탄소년단(BTS)의 완전체 복귀 소식에 세계가 들썩이며 환호한다.
2년 만에 완전체로 공식 복귀해 이달부터 한국, 미국, 캐나다, 유럽 등 대규모 월드 투어에 들어간 블랙핑크도 마찬가지다.
지난달엔 국내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연극·뮤지컬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미국 토니상에서 작품상 등 모두 6개 부문 상을 휩쓸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은 미국 최고 권위의 에미상에서 감독상 등 6관왕에 올랐다.
K-팝 아이돌을 소재·주제로 다양한 한국 문화를 다룬 애니메이션(케이팝 데몬 헌터스)까지 만들어지는 세상이 됐다.
언감생심(焉敢生心), 불과 30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런데 너무 잘나가다 보니 걱정도 든다.
어느 순간 한류(韓流)가 꺼지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이다.
앞서 아시아를 주름잡던 홍콩 영화의 몰락과 세계적으로 '소프트파워' 영향력을 드리웠던 일본 대중문화의 추락을 직접 목도(目睹)한 바 있어서다.
그래도 우리는 지금 세계 대중문화의 중심에 있고, 그게 그저 너무 자랑스럽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 했는데, 걱정 내려놓고 노 저으면서 뱃놀이하며 즐기는 게 또 대중문화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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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이호준] 대중문화 개방과 K-컬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