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마다 내세우는 바다
부산사람에겐 기시감 드는 약속
기업과 청년들 떠난 제2의 도시
핵심 동력 없어 생존 한계 봉착
부산에 남은 건 ‘노인과 바다’ 조롱
실질적 변화 없다면 책임 물어야
부산 사람들에게 바다는 자연 그 이상이다.
무심코 우리 곁에 있는 듯 보여도, 바다는 부산 역사의 무대이자 희망을 품게 하는 삶의 터전이다.
어떤 미사여구를 보태도 충분하지 않은 소중한 삶의 원천이다.
그런 의미를 간파한 역대 대통령 후보들은 선거 때마다 부산 바다를 주목했다.
유권자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대통령 후보들의 구애는 언제나 거대하고 화려했다.
어린 시절부터 듣던 그들의 모토가 ‘해양수도 부산’이었다.
거창한 이름 아래 그럴듯한 청사진을 그려내며 수많은 약속을 남겼다.
세계적인 항만 도시로 도약시키겠다거나, 동북아 물류 허브이자 해양 관광 중심지로, 첨단 해양 산업의 메카로, 글로벌 해양수산 중추 국가로 발전시키겠다는 그들의 말과 글은 매번 부산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바다를 내세운 대선 공약을 들고 “이번에는 믿어달라”며 팔을 힘차게 내젓고 소리치며 유세할 때마다, 시민들은 의구심 속에서도 작은 희망의 씨앗을 키웠다.
그렇게 화려했던 약속들과 함께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부산은 어떤 모습인가. 고 노무현 대통령의 의지로 시작된 부산 북항 재개발 사업만 봐도 20년이 다 되도록 여전히 미완성이다.
2020년까지 완공하려던 목표는 2027년까지로 연장됐다.
수많은 난관 속에서 더딜 수밖에 없었을 거라 이해한다 해도 시민들은 이미 기다림에 지쳤다.
피로감과 실망감만 가득하다.
시민들이 바라는 건 거창한 구호나 단발성 지원이 아니다.
실제로 일어나는 변화다.
작은 실천이 부산 바다를 바꾼 사례가 있다.
2009년 부산 용호만 바닷가. 공유수면 매립 개발이 마무리되던 이곳에는 바다를 따라 높은 철조망이 둘러쳐질 예정이었다.
바다가 시민들과 철저히 단절될 위기였다.
당시 〈부산일보〉 보도를 통해 ‘시민에게 워터프런트를 돌려달라’는 여론이 일었다.
결국 용호만 일대는 산책로와 쉼터가 있는 공원 같은 수변 공간으로 탄생해 지금껏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부산시민들은 바다에서 평범한 일상을 즐기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는 소박한 바람을 품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다 야구장’에 대한 염원이다.
1985년 준공돼 40년이 된 사직야구장은 대규모 리모델링이나 신축을 하지 않은 유일한 야구장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부산시의 재건축 계획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이제 부산시민들은 탁 트인 바다를 품은 야구장에서 경기를 즐기는 모습을 꿈꾼다.
2000억 원에 달하는 기업가의 기부 소식도 전해졌다.
전문가들 역시 바다 야구장이 부울경은 물론 전국에서 사람을 끌어들이는 부산의 새로운 랜드마크이자 원도심 부활의 상징이 될 것이라 입을 모은다.
유력 대선 후보들도 바다 야구장 건설 사업을 부산의 주요 공약에 포함할 것처럼 움직이다가 복잡한 이해타산을 핑계로 슬쩍 발을 빼면서 크고 작은 논란이 인다.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실현할 수 있다’는 전문가 의견에도 정치적 논리에 밀려 발을 떼지 못한다.
북항 바닷가에 들어설 오페라하우스가 있다지만 시민의 기대를 품었다고 말하기 힘들다.
어떤 의사소통 과정을 거쳐 오페라하우스를 짓게 되었나를 돌이켜 보면, 그 누구도 시민 대다수의 열망이 오롯이 반영된 것이라 자신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 6·3 대선에도 어김없이 많은 ‘바다 공약’이 등장했다.
북극항로 시대 해양 중심 도시 부산이라는 기치 아래 해양수산부와 HMM(옛 현대상선) 부산 이전, 해사법원 유치 등이 오르내린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선거용 공약 남발로 부산시민들이 헛된 기대만 가지게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약속보다 더 중요한 건 실제로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지 실천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이를 실현하는 일이다.
내일이면 우여곡절 끝에 대한민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한다.
예정에 없던 6월의 대통령 선거가 막을 내린다.
신임 대통령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혼란에 빠진 우리 사회를 안정시키려고 곧장 여러 국정과제 추진에 속도를 낼 것이다.
그 속에 부산 바다를 향한 공약을 반드시 포함해 실현할 책임이 그에게 있다.
부산 유권자들이 이번 대선에 던진 한 표, 한 표에는 청년 유출과 저출생, 수도권 과밀화로 소멸하는 지역에서도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달라는 간절한 바람과 기대가 담겨 있다.
그런 시민들은 새로운 대한민국 리더가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내뱉은 말에 책임을 지는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바다에 새겨진 약속, 시민들은 모두 기억하고 행동에 나설 것이다.
박세익 디지털영상센터장 run@busan.com
[편집국에서] 대통령과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