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근 부산항만공사 사장
지난 5월 31일은 서른 번째를 맞는 ‘바다의날’이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대륙과 연결이 끊긴 대한민국은 바다 없이 존재할 수 없는 국가다.
수출입 물동량의 99.7%를 바다를 통해 처리하는 명실상부한 ‘해양국가’다.
그 바다를 통해 우리는 전 세계가 놀라워하는 산업화를 이뤘고, 부산항을 중심으로 한 해운·항만산업은 대한민국 경제의 든든한 뒷받침이 돼 왔다.
지금 세계 해운산업이 거대한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바로 탈탄소와 디지털화다.
지난 4월 국제해사기구(IMO)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는 2027년부터 국제항로를 오가는 선박에 대한 강력한 온실가스 배출 규제를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그동안 자발적 감축노력에 머물던 온실가스 저감 노력이 본격적인 규제체제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글로벌 선사들은 친환경 선박 발주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국내 조선소들도 LNG, 메탄올, 수소, 암모니아 추진선 개발과 건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해운과 조선업계는 이미 ‘탈탄소 시대’를 향한 항해를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항만은 어떠한가? 정작 항만은 이 논의에서 살짝 비껴가 있는 듯하다.
IMO 규제도, 업계 대응도 온통 ‘선박’중심이다.
하지만, 탄소중립 선박이 제대로 운항하려면 친환경 연료를 공급할 인프라가 항만에 구축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 항만은, 부산항은 준비 되어 있는가?
대한민국 최대이자 세계 2위 환적 컨테이너 항만인 부산항이 동북아 친환경 해운의 중심지가 되어야 함에도 수소나 암모니아는 고사하고 LNG 벙커링 인프라조차 아직 없다.
지금까지 글로벌 해운시장에서 선박 연료 공급 허브 역할은 싱가포르, 로테르담 등이 독점해 왔고 막대한 부가가치는 그들에게 돌아갔다.
새롭게 열리는 친환경 연료 시장에서도 주도권을 놓친다면 바다가 주는 기회를 또 다시 경쟁 항만에 내어주게 된다.
필자는 지난주 유럽 주요 항만을 살펴보고 항만 당국, 친환경 에너지 기업 수장들을 만났다.
그들의 준비는 한마디로 ‘놀라웠다’. 로테르담항과 함부르크항은 항만도 ‘해운 탈탄소’체계의 중요한 한 축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이미 탈탄소 항만 전환을 위한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었다.
로테르담항은 지난 4월 액화 암모니아의 선박 대 선박(STS) 벙커링 테스트에 성공했고, 내년부터 암모니아 벙커링을 시행할 계획임을 밝혔다.
또 유럽 수소 생산·저장·공급 허브 위상을 구축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야심찬 조치를 하나 하나 실행하고 있었다.
함부르크항은 암모니아 터미널 건설계획을 수립하는 등 사업 구체화에 나섰다.
나아가 이들은 LNG, 암모니아 외에도 다양한 대체 연료 가능성도 열어 놓고 친환경 연료 패러다임의 가변성에 대응하고 있었다.
부산항이 지속 가능한 글로벌 해운의 중심지가 되기 위해 ‘탈탄소’를 첫째로 논의해야 할 이유다.
우리는 지금 세계 해운 변혁기의 중심에 서 있다.
늦지 않았다.
하지만 더 늦으면 기회를 놓친다.
이런 대전환의 시기에 우리 정부는 지난해 말 ‘글로벌 거점항만 구축전략’을 발표하며 LNG, 수소, 암모니아 등 대체연료 수급체계 구축을 예고했다.
부산항은 연간 약 1만 4000척 이상의 컨테이너선이 드나드는 자타가 공인하는 동북아 중심 항만이다.
인프라만 제대로 적기에 갖춘다면 해상 연료 공급 허브, ‘바다 위 주유소’가 될 최적지다.
앞선 세대들이 해운으로 바다를 개척하고, 부산항을 세계적인 항만으로 일궈낸 덕분에 우리는 해양강국의 이점을 누리고 있다.
다음 세대도 바다가 주는 기회와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지금, 우리가 준비해야 한다.
지구를, 우리 바다를 살리자는 인류 공동의 요구에 국제기구와 해운·조선업계는 이미 답했다.
이제는 항만이, 우리 부산항이 답할 차례다.
[기고] 이제는 항만이 답할 차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