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4일 오클라호마시티에서 열린 오클라호마시티 선더의 NBA 농구 챔피언십 축하 행사에서 오클라호마시티 시장 데이비드 홀트(가운데)가 선더 선수들인 제일런 윌리엄스(왼쪽), 이사야 하르텐슈타인(가운데 뒤), 제일린 윌리엄스(오른쪽)와 함께 서서 발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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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인스턴트와 도파민이 감각을 점령한 시대다.
이제는 사람들의 일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요소가 돼버린 소셜미디어에는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쳐흐른다.
이런 감각의 흐름은 시대를 관통하며 짧고 빠르고 즉각적인 것이 마치 최고의 미덕인 것처럼 여겨지곤 한다.
즉각적 만족에 집착하는 시대, 오클라호마시티 선더가 미국 프로농구(NBA) 최종 우승을 차지하며 이런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통찰을 던졌다.
오클라호마시티 선더는 2008년 시애틀 슈퍼소닉스를 인수해 연고지와 팀 이름을 바꾸고 새롭게 출발한 이후 처음으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들의 승리는 단순한 승리가 아니라 궁지에 몰린 약자가 챔피언으로 탈바꿈한 '언더도그(underdog)'의 승리라는 점에서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
현지 언론과 스포츠 평론가들은 오클라호마시티 선더의 승리를 두고 "느리지만 꾸준한 리더십의 증거"라며 찬사를 이어갔다.
이 구단의 샘 프레스티 단장의 남다른 리더십이 빛을 발했다는 것이다.
지난 6월 22일 오클라호마시티에서 열린 NBA 파이널 7차전 인디애나 페이서스와 오클라호마시티 선더의 경기 전반전을 팬들이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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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마켓 팀 운영의 정석 보여준 리더십
샘 프레스티 단장은 구단의 리더로서 구단 창립 당시부터 거의 20년 동안 오클라호마시티 선더를 지켜왔다.
그는 장기적 안목을 바탕으로 조용히 팀의 뭔가에 투자를 해왔다.
바로 구단 특유의 '문화'였다.
이번 NBA 최종 우승 후 많은 사람들이 이 구단만이 갖고 있는 특별함에 주목했다.
수년 동안 오클라호마시티 선더는 프로 농구의 '윈나우(win-now)' 지형에서 이례적인 행보를 보여 왔다.
윈나우는 구단이 현재 시즌 우승을 목표로 즉각적 전력 강화를 위한 선수를 영입하거나 유망주를 트레이드하는 전략이다.
장기적 구단의 잠재력 구축보단 단기적 성과에 집중하는 접근 방식이다.
오클라호마시티 선더의 전략은 마치 이를 완전히 거스르는 듯해 보였다.
그것은 미국 스포츠 전문매체 디애슬레틱의 평론가 앤서니 슬레이터의 표현처럼 '놀라울 정도의 안정성'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프레스티 단장의 주도로 인내심, 지속성, 유기적 성장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라는 키워드가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구단을 장악해갔다.
창립 초반부터 그는 감각적 트레이드로 대표되는 윈나우 전략 대신 지속적인 성장과 안정성, 그리고 인성 위주로 조직을 세심하게 구성해왔다.
이 기초 공사는 단장의 헌신과 구단주, 감독의 믿음을 자양분 삼아 오랜 시간 일관되게 이뤄졌다.
안정성과 일관성으로 점철된 문화는 구단의 아주 작은 부분까지 스며들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샘 앤더슨 자신의 책 '붐 타운'에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로 구단의 연습실 풍경을 말했다.
오클라호마시티 선더의 연습실엔 코트 주위를 둘러싼 선반 위 가득 찬 농구공들이 언제나 완벽할 정도로 대칭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농구공들은 모두 로고가 정면을 향하도록 정렬되어 있는데, 하루는 프레스티 단장이 직접 비뚤어진 농구공 각도를 조정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완벽한 일직선 배열은 곧 나에게 프레스티가 이 조직을 어떻게 운영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가 됐다"며 "세심한 디테일에 대한 철저한 관리, 그리고 완벽한 질서였다"고 말했다.
이 구단의 주전 선수인 쳇 홈그렌은 한 인터뷰에서 "내가 이 팀에 와서 첫날 들은 말은 '여기 있는 모든 물건들은 항상 정돈되어 있어야 한다'였다"며 "이 팀엔 잔디가 길게 자란 모습을 절대 볼 수 없다.
덤불도 늘 정리되어 있고, 냉장고는 항상 가득 차 있다.
물병은 항상 라벨이 정면을 향하고 있다"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구단 특유의 문화적 면모를 볼 수 있는 곳은 연습실뿐만이 아니다.
1984년 오클라호마시티 선더의 전신인 시애틀 슈퍼소닉스 때부터 구단의 장비를 관리해 온 사람이 지금도 여전히 이 NBA 챔피언의 물류를 감독하고 있다.
이것은 사람을 지속적인 자산으로 소중히 여기는 리더십 철학의 부산물로, 성과와 일시적 트렌드를 중시하기보단 보다 깊은 상호 신뢰와 발전을 중시하는 문화를 촉진했다.
18년간 일관되게 이어진 디테일한 운영, 그 결과 젊고 잠재력 가득한 선수들은 견고하고 조화롭게 스타플레이어들로 성장할 수 있었다.
다른 팀에 비해 젊은 연령의 선수들로 구성된 오클라호마시티 선더는 NBA 구단 중 보기 드물게 선수들 간의 견고한 팀워크와 겸손한 태도로 잘 알려졌다.
플레이어의 주축을 이루는 샤이 길저스 알렉산더, 제일런 윌리엄스, 쳇 홈그렌 등 3인방은 각각 27세, 24세, 23세로 20대다.
이들은 서로 경쟁의식보다 공동체 의식으로 똘똘 뭉쳤다.
선수들뿐만 아니라 단장이나 구단주 등 팀을 이끄는 운영진들 역시 나서기보단 뒤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스타일이다.
이것은 '유기적 성장'을 강조해온 프레스티 단장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스타플레이어 의존 대신 동반성장 선택
프레스티 단장은 팀이 패배를 거듭하는 중에도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유기적이고 안정적인 조직 구성을 위한 구축을 이어갔다.
특히 선수의 영입에 매우 신중했다.
그가 원했던 선수들은 '배고프고, 이타적이며, 결과보다 과정에 집착하는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그가 모은 소중한 '패'들은 의외의 선택들이었다.
소위 '언더도그'라 불리는, 다른 팀에서는 외면당했던 선수들이었다.
프레스티 단장은 이런 잠재력만으로 가득한 선수들을 찾아내어 꾸준히 시합에 내보냈다.
다른 팀이었다면 로테이션 멤버 신세를 면치 못했을 이들이 꾸준히 출전 경험을 쌓아가며 마침내 NBA에 꼭 맞는 선수로 성장한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마치 체육 수업에서 가장 마지막에 뽑히던 아이들로 슈퍼팀을 만든 셈"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오클라호마시티 선더 성공의 중심에는 파이널 MVP를 수상한 가드 샤이 길저스 알렉산더가 있다.
하지만 이 NBA 슈퍼스타의 스토리 역시 인내와 꾸준함으로 점철된 오클라호마시티 선더 역사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는 오클라호마시티 선더의 시스템 내에서 여섯 시즌에 걸쳐 발전했으며, 루키 발굴에 서두르지 않으려는 조직 문화 속에 세심하게 육성됐다.
길저스 알렉산더 자신도 한 인터뷰에서 "우리 구단은 승리 환경을 구축하는 데 놀라운 일을 해냈다"며 "우리가 우리 자신이 되고 더 위대해질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즉 오클라호마시티 선더는 즉각적인 만족도보다 장기적 개발에 투자해 길저스 알렉산더처럼 유망한 신인이 진정한 슈퍼스타로 진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냈다.
일관성을 중시하는 조직문화를 만들어간 이 흔들림 없는 헌신은 선수 개발 측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오클라호마시티 선더 성공의 또 다른 설계자인 마크 데이그널트 감독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구축된 일관성이란 이름의 '근육'을 강조했다.
데이그널트 감독은 "선수를 포함해 우리 구단의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접근 방식을 취했을 때 크고 작은 성공을 이루는 것을 목격했다"며 반복적인 성공이 구단의 문화를 어떻게 강화하는지 강조했다.
포브스 코치위원회 위원인 레베카 패터슨은 이를 두고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일관성 있게 뭔가를 배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던 훨씬 더 큰 강점과 기회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절대적인 사실이다.
"
오클라호마시티 선더의 챔피언십은 속도에 사로잡힌 세상에서 '느린 것은 매끄럽고 매끄러운 것은 빠르다'는 메시지를 상기시켜준다.
그들은 덧없는 헤드라인을 좇거나 즉각적인 결과에 목매는 문화에 굴복하지 않았다.
대신 꾸준한 연습과 파트너 간의 심오한 대화, 흔들리지 않는 인내심, 깊은 신뢰라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추구했다.
이들의 승리는 농구 코트 안에서만 유의미한 것이 아니다.
개인 또는 기업 문화에 있어서 성공의 열쇠는 때론 장기적인 안목과 무엇보다도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의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냈다.
한때 NBA 신에서 최약체였던 오클라호마시티 선더는 이제 안정적이고 신중한 길이 가장 놀라운 승리로 이어질 수 있음을 세상에 보여주는 살아있는 역사가 됐다.
NBA 오클라호마시티 선더 우승 스토리 속 메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