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5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파리 플라주(Paris Plages)’ 행사 일환으로 세 개의 센강 수영장이 개장한 가운데, 사람들이 파리 센강의 그르넬 안전수영구역에서 수영을 즐기고 있다.
photo 뉴시스
기록적인 폭염이 전 세계를 덮쳤다.
뜨거워지는 도심 속에서 시민들은 더위를 피할 곳을 찾아헤맨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열을 식혀주는 역할 이상으로 도시 공간에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물'이다.
100년 만에 돌아온 센강
2025년 7월 파리 시민들은 100년 만에 처음으로 센강에서 합법적으로 수영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에펠탑 근처와 생루이섬 인근에 새로 설치된 목재 데크에는 수영복을 챙긴 시민들이 줄을 섰다.
14억 유로를 투입해 대규모 정화 프로젝트를 벌인 결과 1923년부터 금지되었던 센강 수영이 다시 가능해진 것이다.
가깝게는 2024년 올림픽을 위해서였지만 파리시는 센강을 시민들에게 돌려주겠다는 보다 큰 비전을 갖고 있었다.
매일 수질을 검사해 녹색 깃발이 걸린 날에만 수영을 허용하는 등 관리시스템도 구축했다.
물론 회의적인 시선도 없지 않지만, 대부분의 파리 시민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지난 6월부터는 서울의 한강 수영장도 개장했다.
특히 올해부터는 폭염과 열대야에 지친 사람들을 위해 밤 10시까지 운영하는 곳도 있는 모양이다.
서울 한복판 한강변에서 수영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콘크리트 정글 속에서 잠시나마 물놀이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특히 여의도 수영장은 우뚝 솟은 고층 빌딩들과 함께한 배경이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코펜하겐은 이미 20여년 전부터 이러한 변화를 선도해왔다.
한때 심각하게 오염되었던 코펜하겐 항구는 대대적인 정화 작업을 거쳐 지금은 도심 곳곳에서 수영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특히 브뤼게섬의 '하버배스'는 다양한 깊이의 수영장과 다이빙 보드, 피크닉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여름이면 수천 명의 시민들이 몰려든다.
스위스에서는 강에서 수영하며 통근하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바젤의 라인강과 베른의 아레강에서는 여름이면 진풍경이 펼쳐진다.
퇴근시간이 되면 사람들은 '비켈피시(Wickelfisch)'라 불리는 물고기 모양의 방수 가방에 옷과 노트북 등 소지품을 넣고 강물에 몸을 맡긴다.
강까지 30초만 걸어가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15분간 강을 따라 내려가면 집에 도착한다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가 실제로 벌어지는 곳이다.
한편 어떤 예술가들은 '물'을 매개로 다양한 공공미술을 시도해 색다른 경험을 창조하기도 한다.
스페인 예술가 하우메 플렌자가 시카고 밀레니엄파크에 설치한 '크라운분수'가 대표적이다.
이 분수는 두 개의 타워 사이에 얕은 반사 풀을 배치했다.
타워에는 1000명의 시카고 시민들 얼굴이 LED 스크린을 통해 투사되며, 특히 아이들은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 아래에서 뛰어놀며 즐거워한다.
여기 크라운분수에서 시민들은 작품의 일부가 된다.
검은 화강암 바닥에 얇게 퍼진 물은 거울처럼 하늘과 도시를 비추고 사람들은 물 위를 걸으며 마치 하늘 위를 걷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예전에는 분수가 사람들이 물을 길으러 오는 곳이었다면, 이제는 서로 만나고 어울리는 놀이터가 됐다.
2017년 독일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에서 선보인 아이셰 에르크멘의 '물 위에서'는 좀 더 심오하다.
작가는 뮌스터 내륙 항구의 북쪽 부두와 남쪽 부두 사이 수면 바로 아래에 다리를 설치했다.
방문객들이 이 다리를 건널 때 마치 물 위를 걷는 것처럼 보이게 한 의도다.
단순한 즐길거리나 신기한 볼거리가 아니라 도시의 경계와 사회문화적 접근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인데, 수면 아래 숨겨진 다리는 도시 계획에서 의도하지 않았던 경로를 만들어냄으로써 기존 도시 구조에 대한 비판을 제기한다.
물을 일상 속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나아가 도시에 대한 철학적 성찰의 매개로 활용하는 모습이다.
그에 비해 우리의 현실은 아쉬움이 남는다.
서울 용마폭포공원의 '타원본부'는 '서울은 미술관' 사업으로 만들어진 공공미술 작품이다.
폭포가 떨어지는 연못 가운데 섬처럼 떠 있는 거대한 타원 형태를 하고 있다.
용마폭포공원은 본래 채석장이었는데, 이 장소에 얽힌 시민들의 추억을 기반 삼아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추진해 진정성 있는 '시민들의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고자 했다.
바닥이 원의 중심을 향해 약간 기울어져 중심부에 물을 담아 시민들이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된 점이 특징이다.
그러나 현재는 물이 없는 상태로 둔 지 오래이며 이용시간도 제한돼 있다.
관리상 편의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좋은 의도로 시작된 프로젝트였지만 실제로 공간 운영을 맡은 이들의 작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본래 목적을 잃어버린 아쉬운 사례다.
그나마 광화문광장의 바닥분수는 성공적이다.
처음 광장 리모델링 당시에는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바닥분수를 설치하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역사적 공간의 엄숙함을 해친다는 비판부터 안전 문제까지 다양한 반대 의견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광화문광장의 명물이 됐다.
특히 여름철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기는 모습은 삭막한 도시 풍경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광화문 앞 공간이 '차도'에서 '광장'으로 완전히 변모했음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더 획기적인 친수 공간이 만들어지기 어려운 이유는 '접근제한'의 프레임 때문이다.
도시의 '블루 스페이스'는 '그린 스페이스'만큼이나 시민들의 정신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폭염 속 도시의 열을 식히고 아이들에게는 자연과 교감하는 놀이 공간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물을 '위험한 것' '관리해야 할 대상'이란 점을 너무 크게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안전확보와 접근성 보장
물론 물을 활용한 도시 시설은 안전과 수질 관리란 큰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많은 수경시설이 안전을 이유로 울타리를 치거나 접근을 제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린이가 물에 빠질 위험, 미끄러짐 사고, 수인성 질병 등 다양한 위험 요소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과도한 제한으로 본래 의미나 취지를 살릴 수 없다면 그 또한 모순이다.
단지 접근을 제한함으로써 골치아픈 문제를 애초에 차단하려는 소극적인 태도만으로는 해외 사례들처럼 도시의 다양한 친수 공간들을 앞으로도 기대할 수 없다.
용마폭포공원의 텅 빈 타원본부가 보여주듯 우리 사회는 아직도 시민들이 물과 직접 만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안전이라는 명목하에 울타리를 치고, 접근을 막고, 결국 처음 의도와는 전혀 다른 공간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광화문광장 바닥분수가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곳에서는 물을 만질 수 있고, 물 속에서 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공간은 여전히 예외적이며 대부분의 수경시설은 감상용에 그치고 있다.
앞으로는 안전을 확보하면서도 접근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균형점을 찾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자 도시 문명의 시작점이었다.
산업화 과정에서 오염되고 멀어졌던 도시의 물이 이제 다시 시민들 곁으로 돌아와야 할 때다.
한강수영장 개장은 그 변화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변화는 단순히 수영장 하나를 여는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물과 함께 숨쉬는 유기체로 거듭나는 것에서 시작된다.
안전에 대한 과도한 집착에서 벗어나 물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되찾을 때, 우리 도시는 조금 더 풍부한 감각과 여유를 시민들에게 돌려줄 수 있을 것이다.
파리지앵에게 돌아간 센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