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회복 소비쿠폰 사전 알림 서비스를 개시한 지난 7월 14일 서울 시내 한 편의점에 민생회복 지원금 사용 관련 안내문이 부착되어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 모두에게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제안한다"며 "소고기 사먹고 좋잖아요"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7월 초 기자회견에서도 "민생지원금은 소비 진작 더하기 소득 지원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가족 데리고 소고기 한 번 실컷 먹어봐야지' 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소고기는 5년 전 1차 코로나 재난지원금을 나눠줄 때에도 화제의 단어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재난지원금이 모처럼 소고기 국거리를 사는 데 쓰였다는 보도를 보고 가슴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전 국민 지원금으로 소고기를 많이 사 먹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농촌진흥청 소비자 패널 조사에선 국민 60%가 1차 코로나 지원금(4인 가구 기준 100만원)을 농식품 구입과 외식 등 먹거리에 사용했다고 답했다.
특히 육류 소비가 증가한 가운데 한우(34%)와 수입 소고기(15%) 등 소고기 구입이 늘었다는 응답이 49%로 돼지고기(44%)보다 높았다.
재난지원금으로 소고기 소비만 상승한 게 아니다.
돈을 뿌린 정부와 여당이던 민주당의 지지율도 덩달아 뛰었다.
한국갤럽 조사의 월평균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2020년 초반까지 15개월간 40%대에서 맴돌았지만 1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결정했던 3월부터 상승 곡선을 그리더니 5월엔 67%까지 급등했다.
재난지원금 효과 본 4·15 총선
2020년 4·15 총선도 민주당이 재난지원금 효과로 재미를 톡톡히 봤다.
문 대통령은 총선 하루 전인 4월 14일 국무회의에서 "지원금 지급 대상자들에게 미리 통보해 주고 신청을 받으라"고 지시했다.
투표 직전까지 찍을 후보를 못 정한 부동층은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야당이던 미래통합당은 "대통령이 재난지원금 줄 테니 표 달라는 것 아닌가"라고 분노했지만, 표심(票心)의 저울추는 여당 쪽으로 확 기울었다.
민주당은 지지율이 총선 직전 37%에서 갑자기 44%로 올랐고 180석을 얻으며 미래통합당(103석)에 압승을 거뒀다.
헌정 역사상 최초의 '전 국민 지원금'이었던 1차 코로나 재난지원금은 찬성 여론도 높았다.
2020년 4월 한국리서치 조사에서 지원금 지급 찬성이 70%였고, 한국갤럽의 5월 조사에선 찬성이 73%로 더 높아졌다.
문 대통령의 집권 하반기 지지율 최고 기록과 유사한 수치였다.
당시에 1차 코로나 지원금을 신청해서 받은 가구는 99.5%였다.
국민의 관심이 쏠리며 다른 이슈들을 압도한 블랙홀이었다.
지원금을 나눠주기 전까진 시큰둥했던 30%가량의 국민도 막상 25만원 지급이 시작되자 '못 받으면 바보'라는 생각으로 대열에 합류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선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이 대선 때 득표율(49.4%)보다 높은 60%대를 기록하고 있다.
출범한 지 한 달 반밖에 안 된 새 정부의 '실적' 때문이 아니다.
정권 초반 '허니문 효과'와 계엄·탄핵으로 물러난 전임자와의 비교에서 오는 '기저효과' 영향이 크다.
여기에 7월 21일부터 전 국민에게 15만~50만원 상당의 소비쿠폰으로 지급하기로 한 민생지원금도 한몫을 하고 있다.
'돈이 보이면 마음도 움직인다'는 말처럼 공돈에 혹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다.
전 국민 지원금은 여권 지지층을 흩어지지 않게 하는 효과도 있다.
국민을 이념성향에 따라 갈라치며 지지층을 묶는 정치 이슈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보수층은 '물가를 자극하고 국가 채무가 늘어나는 부정적 효과'에 주목하지만 진보층은 '소비를 늘리고 경제를 회복시키는 긍정적 효과' 쪽으로 쏠려 있다.
지원금 긍정여론도 낮아져
5년 전엔 문재인 대통령의 월평균 지지율이 1차 재난지원금 지급이 결정되고 나눠줄 때까지 3개월간 44%에서 67%로 23%포인트 올랐다(한국갤럽). 지원금 규모가 14조원인 것을 감안하면 대통령 지지율 1%포인트 상승에 6000억원가량 소요된 셈이다.
하지만 이번 민생지원금은 1차 코로나 지원금과 규모가 비슷해도 그때처럼 20%포인트 이상 지지율을 끌어올리긴 힘들 것이다.
석 달간 지지율 상승세가 이어졌던 5년 전과 달리 민생지원금은 지급이 속전속결로 진행되면서 '지지율 호황'을 누릴 시간이 짧아졌다.
전 국민 지원금에 대한 긍정 여론도 예전만 못하다.
2020년 코로나 지원금은 찬성이 73%에 달했지만, 지난 7~8일 코리아정보리서치 조사에선 민생지원금 찬성이 57%였다.
최근 대통령 국정 평가에 비해서도 낮다.
민생지원금 여론이 정권 지지율을 지금보다 끌어올릴 여지가 적다는 의미다.
민생지원금 찬성이 5년 전 코로나 지원금에 못 미치는 이유는 재난지원금을 받아도 살림살이가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분석에서도 코로나 지원금은 소비 진작과 경기 부양 효과가 미흡했다.
"반짝 효과는 있었지만 지원금을 다 쓰고 나선 좋아진 게 없다"는 상인이 많았다.
물가 상승 공포도 만만치 않다.
안 그래도 '미친 물가'로 너무 힘든데 민생지원금이 풀려서 물가를 더 자극할 것이란 불안감이 크다.
나라빚 1300조원 시대에 국가 재정 악화가 미래 세대에 가혹한 짐을 지울 것이란 위기감도 크다.
실제로 각 여론조사에서 2030세대의 민생지원금 여론은 부모 세대보다 부정적이다.
정권 지지율은 시간이 흐를수록 법칙처럼 필연적인 하락을 피하기 어렵다.
요즘 대통령이 뽑은 장관 후보자들을 둘러싼 의혹이 거의 매일 불거지고 있는 것을 보면 벌써부터 지지율을 까먹을 조짐이 보인다.
그래도 "대통령님의 눈이 너무 높다"는 참모의 아첨에만 귀를 연다면 민심과 척을 지고 국정 동력이 약화될 수 있다.
그럴 때 정부·여당은 또다시 지지율 상승용 불쏘시개로 현금 뿌리기 유혹에 빠질 공산이 크다.
내년 지방선거와 총선, 대선 등 줄줄이 닥칠 선거에서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2020년부터 두 번의 총선과 두 번의 대선에서 전 국민 지원금 공약을 내걸고 "우리 당을 찍어야 돈 나온다"며 표심을 자극했다.
야당은 다음에 이기고 싶으면 '퍼주기 포퓰리즘'에 맞설 전략을 미리 짜놓는 게 좋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이 다섯 차례에 걸쳐 코로나 지원금 55조8000억원을 풀었어도 1차 이외엔 지지율에 거의 효과가 없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2021년 4차 지원금은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코앞에 둔 3월부터 나눠줬지만 선거에선 여당이 패했다.
최근 일본은 이시바 정권의 '돈 살포' 선거 공약에 반대 여론이 70%에 육박했다.
우리나라도 갈수록 현금 살포 중독 효과의 유통기한이 짧아지고 있다.
지지율을 계산하며 돈 뿌리기를 반복한다면 경제를 망치고 민심도 잃은 정권이란 낙인이 깊게 새겨질 수 있다.
현금살포 유통기한 효과 갈수록 짧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