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서정아트센터 서울갤러리.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국내 유명 아트갤러리 서정아트센터의 '폰지사기' 의혹에 대해 결국 경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주간조선 2864호 '미술계 덮친 1조원 아트테크 다단계 사기 의혹' 참조) 지난 5월부터 투자자에게 수익을 지급하지 않았던 서정아트센터와 이대희 대표는 이미 '사기 및 유사수신행위법 위반' 혐의로 고소당한 상태다.
경찰은 이후 이 대표를 입건했으며, 지난 6월 말에는 그의 주거지와 서울 강남구 소재 사무실, 수장고 등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건이 피해액만 수조원에 달하며 역대 '아트테크 사기'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피해 규모로 봤을 때 사건이 이 대표의 단독범행이 아닌 조직적인 공모가 있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피해자들 사이에서도 서로를 공범으로 의심하는 등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모인 피해자들은 투자 과정에서 연락이 닿았거나 자신에게 접근했던 갤러리 관계자들을 의심하고 있다.
결국 약속시한 넘겨… 수사 돌입 주간조선 취재에 따르면 이 대표를 비롯한 서정아트센터 측은 지난 6월초 딜러들을 통해 구매자들에게 보낸 사과문에서 '국세청 세무조사 때문에 6월 30일에 이자를 일괄 지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부분 피해자들은 "일단 6월 말일까지는 기다려보자"는 데에 대체적으로 동의했다.
당시 한 피해자는 주간조선에 "그래도 약속한 날까지는 기다린 다음, 그때도 해결되지 않으면 고소를 생각할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나 6월 말까지 이 대표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에 이 대표와 서정갤러리를 개인적으로 고소하는 사례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7월 초 딜러들을 통해 이 대표의 메시지가 투자자들에게 전해졌다.
이 대표는 메시지를 통해 "국세청의 압류와 경찰의 압수수색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업무가 중단된 상태"라며 "회사의 각종 자산 매각 및 환가 절차를 통해 고객 여러분들의 피해회복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해명했다.
이 대표의 체납액은 70억원, 서정아트센터의 체납액은 55억원인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대표의 약속이 지켜질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선이 많아지고 있다.
경찰의 수사강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가 지난 6월 말 서울 강남구에 있는 서정아트센터 본사와 이 대표의 휴대전화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후 박현수 서울경찰청장 직무대리는 지난 7월 14일 관련 수사에 대해 "첩보를 입수해 수사에 착수했으며, 이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의 지시로 서울을 비롯한 여러 곳에 접수된 37건을 병합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앞서 피해자들이 각자 개별 고소를 진행해왔는데, 이를 한 곳에 모아 경찰청 차원에서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피해자도 최소 300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뒤늦게 피해 사실을 깨닫거나 상황을 인식해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합류하는 피해자들도 꾸준히 있다.
특히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익명 채팅에 숨어 아트딜러나 관계자들이 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커졌다.
이에 자체적으로 피해자 인증을 거쳐야만 들어갈 수 있는 채팅방을 만드는 상황도 연출됐다.
그 사이 시간은 흘러 어느새 두 달째를 넘기며 투자자들의 실망감은 더 커지고 있다.
대표 혼자 한 게 아니다? 피해 규모도 쉽사리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법조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 대표가 혼자 이 정도 규모의 사기 행각을 벌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서정아트센터 피해자 대리를 하는 오기찬 법무법인 통 변호사는 주간조선에 "(아트테크가) 9년 이상 이어진 걸로 봐서는 이대희 대표 혼자만의 작품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관여자가 좀 더 있거나 이 대표는 실세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고 분석했다.
오 변호사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젊은 이 대표가 서정아트센터의 몸집을 키우기 시작한 계기는 모 보험업체를 통해 본격적인 투자 유치를 시작하면서부터다.
이후 아버지 이춘환 화백의 작품뿐만 아니라 유명 화백들의 작품을 통해서도 투자금을 모았다.
서정아트센터가 가장 최근까지 진행했던 행사에서도 다양한 화백의 작품들이 전시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오 변호사는 "투자금 규모가 굉장히 커졌다는 점에서 이 대표 혼자만의 작업으로는 불가능한 것 같고, 여러 명이 개입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다수의 피해자가 모인 것으로 추정되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도 공범을 거론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해당 채팅방에서는 "센터 총괄이사나 사내이사도 고소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복수의 피해자들에 따르면 총괄이사의 경우 아트테크 영업을 담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압수수색 등 경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지만, 이 대표 개인에 대한 수사만 이뤄질 경우 사건 해결에 역부족일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그를 비롯한 주변 가담자들까지 폭넓게 수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피해자들도 적극적으로 정보 제공해야" 문제는 이런 아트테크처럼 작지 않은 돈이 들어가는 투자사기 사건은 피해자들이 자신의 피해사실을 드러내기 꺼린다는 데에 있다.
아트테크 투자자들 중 평소 미술에 관심이 많은 유명인사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피해자들이 수사기관 등 관계 당국에 적극적으로 정보를 제공해야 수사에 속도가 붙을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오 변호사 역시 "피해자들이 '회복 가능성이 작다'고 생각해서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피해자들이) 말하지 않으면 수사기관에서는 이 대표만 처벌하고 끝나버린다"면서 "예를 들어 '모 이사가 어떤 역할을 했던 것 같다'는 식으로 진술하지 않으면 수사기관에서는 알 수 없다"고 조언했다.
궁극적으로는 이 대표를 포함해 가담자들이 피해자들과 합의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실제 재판까지 이어질 경우 자신의 형량을 낮추기 위해서다.
법조계 모 관계자는 "합의를 시도할 가능성은 낮지만, 형량을 낮추기 위해 (이 대표를 포함한 가담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올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오 변호사 역시 "일부는 합의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만약 가담자들까지도 신병 확보가 될 경우 이들 또한 합의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럴 경우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조금이나마 원금 회복에 가까워질 가능성도 있다.
서정아트센터 폰지사기… 경찰청 국수본 칼 빼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