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룡 납북자피해가족연합회 대표(맨 왼쪽)와 남북피해자 가족들이 지난 6월 16일 서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대북 전단지 내용과 실제 전단지를 보여주고 있다.
photo 뉴시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이후 남북관계 회복을 위한다는 취지로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이나 '북한 주민 해상 송환' 등의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전후 납북 피해자 가족 모임'이 지난 7월 8일 공식적으로 전단 살포를 중단하겠다고 나서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단체는 그동안 대북전단 살포를 주도해온 단체다.
지난해 10월 이들은 전후 납북자 피해 문제를 남북 모두에 알리기 위해 2013년경 중단했던 전단 살포를 재개했다.
지난해 10월과 올해 4월 두 차례 경기도 파주 임진각에서 공개 살포 행사를 열었으나, 당시 경기도 특별사법경찰단과 접경지역 주민 등의 반발로 무산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납북자 가족 모임은 지난 4월 27일 파주 임진각을 시작으로, 5월 8일에는 강원도 철원군에서, 대통령 선거 전날이었던 6월 2일에는 파주 접경지에서 각각 비공개로 대북전단을 날린 바 있다.
이들이 소위 '진보' 정부가 등장한 시점에서 진짜 대북전단 살포를 멈춘 이유는 무엇일까. 최성룡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는 주간조선에 "이재명 정부 인사를 가만 보니, 과거 납북자에게 가장 관심을 갖고 신경 썼던 노무현 정부 인사들이었다"며 "이들이 주요 요직에 들어왔으니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대표가 언급한 노무현 정부 인사는 이종석 국가정보원장(당시 통일부 장관), 위성락 국가안보실장(당시 주미한국대사관 참사관),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당시 통일부 장관), 김남중 통일부 차관(당시 통일부 실무자) 등이다.
납북자가족들은 '생사확인'과 '비공개 만남' 두 가지를 기대하고 있다.
정부가 북한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 최소한 북쪽에 납치된 가족들의 생사라도 알 수 있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또 이산가족 상봉처럼 대대적인 행사보다는 비공개적으로 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고 한다.
공개 행사를 진행할 경우 납북자들의 신변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휴전 이후 북한에 의해 납치된 3835명의 납북자 중 돌아오지 못한 이들은 516명이다.
그들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하는 가족들은 오늘도 애만 태우고 있지만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은 커지고 있다.
참여정부, 납북자 문제에 각별
지난 7월 15일 주간조선과 만난 최성룡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는 대북전단 살포를 중단하게 된 내막에 대해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반복했다.
우선 이재명 정부 대북 관련 주요 인사들에 대해 "다 노무현 대통령 때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치적 이념을 떠나서 우리에게 가장 관심 가져줬던 그 당시 사람들이 돌아왔는데, 그들이 '대북전단을 그만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가장 먼저 납북자 가족들은 김남중 통일부 차관과의 인연이 깊다.
최 대표에 따르면 김 차관은 2000년대 초반 통일부 실무자로 근무하던 당시 납북자 담당 관계자였다고 한다.
그는 노무현 정부 때 추진됐던 납북자 관련 특별법(전후 납북자법) 제정 과정에서도 책임자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전후 납북자법은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 4월 최종 제정됐다.
최 대표는 그에 대해 "차관 지명된 다음날 첫 출근을 하면서 (나한테) 전화를 줬다"면서 "'(대북) 전단을 좀 그만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김 차관에게 "(다른 납북자) 가족들하고 얘기해보겠다"고 말하고서 설득 끝에 중단 결정을 내렸다.
정동영 장관 후보자도 지명 후 최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이종석 국정원장과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역시 납북자 가족들과 특별한 관계다.
최 대표는 이 원장에 대해 "(노무현 정부 당시 통일부 장관이었던 그는) 납북자 문제 해결의 물꼬를 튼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과거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에 대해 북한 당국과 적극적으로 논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위 실장은 2000년대 초반 최 대표를 포함해 귀환한 납북자들이 미국에 방문했을 때 이들을 맞이했던 참사관이었다.
최 대표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때가 이태식 대사 때인데, 정무공사였던 위 실장이 행사를 마치고 우리에게 돈봉투를 하나 건넸다.
'저희 직원들이 사비로 조금 모았다.
선물이라도 사가시라'라고 하면서 말이다.
참 그게 고마웠다.
"
盧, 해수부 장관 시절 납북자 문제 '관심'
노무현 정부 시절 전후 납북자 문제는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앞서 전후 납북자법은 2007년 5월 제정됐으며, 노 전 대통령은 같은 해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납북자와 이산가족문제 해결을 요청했다고도 전해진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이전부터 납북자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최 대표는 이와 관련된 일화를 주간조선에 처음으로 전했다.
최 대표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해양수산부 장관이었던 시절 최 대표를 자신의 집무실로 불렀다.
최 대표는 "해수부 장관이 왜 납북자 관련 활동을 하는 나를 불렀지 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이) '최 대표, 내 얘기 나쁘게 듣지 마라. 납북자 문제는 정부를 믿고 알아서 하게끔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만남이 끝나고 노 전 대통령은 최 대표와 가족들에게 위로비를 전달했다고도 한다.
최 대표는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천륜(天倫)보다 앞서는 것은 없다'고 노무현 대통령이 말한 것"이라며 "그래서 이 문구를 임진각에서 중단 선언할 때 기자회견 제목에 쓴 것"이라고도 전했다.
이후 해수부 장관 출신 노무현은 대통령이 된 뒤에도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했다.
"생사확인·비공개 만남을 가장 바라"
'이재명의 사람들'이 된 '노무현의 사람들'이지만, 지금 당장 납북자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있다.
납북자 가족들은 이를 잘 알면서도 대화의 물꼬가 트이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분위기다.
최 대표는 "우리의 1번 목표는 생사확인"이라고 말한다.
아직 516명의 납북자가 돌아오지 못한 상황에서, 가족들은 생존 여부라도 확인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하다.
그는 "남한에 남은 가족들은 1200여명 정도 된다"며 "납북된 가족에게 무조건 북한에서 내려오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잘 살기만을 바라는 것인데, 살아있는지 확인만 하고 싶을 뿐"이라고 전했다.
남북 간의 논의가 진전될 경우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최 대표는 "비공개로 이산가족과 국군포로, 납북자들이 천륜의 아픔을 가진 가족과 만나게 되길 바란다"며 "우리는 천륜인데, 어디 공개하는 것 말고 가족끼리만 보면 되지 않겠느냐"고 한탄했다.
대북전단 살포 중단한 납북자 가족 단체의 속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