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5일 방송된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 photo 개그콘서트 유튜브 캡처
나는 한국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고 있다.
조회수가 수백만이 넘는 국내 스탠드업 코미디 영상이 수십 개쯤 되는 요즘에도 그게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저 그거 알아요"라고 하시는 분들도 물어보면 대개는 '스탠딩 개그' 정도로 어설프게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스탠드업 코미디는 마이크 하나만 들고 관객들을 웃기는 코미디의 한 장르다.
별다른 장치나 소품이 없고, 짧게는 5분에서 길게는 1시간 넘게 오로지 혼자서 관객을 웃기는 일이다.
그렇다 보니 관객과 직접적인 소통이 이루어진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은 영상으로 활동하는 코미디 크리에이터보다 영향력은 떨어질 수 있지만, 그들보다 훨씬 더 가까이서 대중들과 소통한다.
웃음을 비롯한 관객들의 반응은 짜릿할 때도 많지만 반대의 경우라도 우리는 온전히 마주할 수밖에 없다.
웃음과 박수, 야유뿐만 아니라 표정, 눈빛, 호흡까지 말이다.
우리는 코미디의 최전방이자 최첨단에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스탠드업 코미디언들끼리 대기실에서 가장 자주하는 대화도 관객에 관한 것이다.
"오늘 관객 어때?" 전반적인 연령대와 성별은 어떤지, 어색해 하는지 아니면 들떠 있는지, 어떤 주제의 농담에 더욱 반응하는지 등 상대를 알면 알수록 웃기기 쉬운 법이니 관객을 파악하기 위해 나름의 애를 쓴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관객을 온전히 파악하기는 힘들다.
파악한다 할지라도 그들의 공통된 관심사를 꿰뚫는 농담을 던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면 요즘 사람들의 관심사는 너무나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에 대한 개인 취향 강해져
요즘 사람들은 가장 개인적인 공간에 앉아서, 다양한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로 자기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시청한다.
알고리즘은 비슷한 영상을 눈앞에 들이밀며 개인 취향을 더 공고하게 만든다.
공감의 토대를 이루는 콘텐츠 시청이 다양해지고, 라이프스타일이 개인화되면서 사람들의 유머 코드도 이전보다 더 세분화되기 시작했다.
세대 간은 물론 비슷한 연령대나 배경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도 웃음의 취향 차가 두드러진다.
그렇다 보니 코미디언들이 무대에서 같은 농담을 해도 누구는 웃겨 죽겠다는 반응이고, 누구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도 못한다.
대부분의 경우에 웃음은 공감을 기반으로 한다.
공감대를 짚는 것만으로도 유머가 되는 경우가 있고, 공감을 비틀어 반전을 주는 것도 코미디에 자주 쓰이는 기법이다.
술자리에서 친한 사람들과 나누는 농담을 재미있어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서로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고, 함께 공유하는 경험도 많으니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요즘에는 비슷한 시대를 살아온 한국 사람이라면 옅게나마 공유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던 그 연결성이 까마득히 흐려지고 있다.
유머코드에도 파편화가 일어난 것이다.
'개그콘서트 엔딩곡 = 주말 끝'이라는 말에 누구나 공감할 정도로 개그 프로그램이 대세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학생들은 월요일이면 학교에서 친구들과 주말에 본 개그 프로그램 이야기를 하고, 새로 등장한 유행어를 써먹었다.
심지어 회사에서는 부장님들이 젊은 사원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유행어를 외워 쓴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 당시에는 나이 많은 사람들의 유행어 시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많았지만, 웃음으로 세대 간의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이 있었다는 점에서 낭만이 느껴지기도 한다.
유행어라는 개념은 인터넷 시대를 거치며 자주 쓰이지 않는 표현이 되었다.
대신에 '밈(meme)'이라는 것이 등장했다.
밈은 인터넷상에서 유행하는 문화 요소를 일컫는 말로 주로 해외에서 쓰이는 말이었지만,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쓰이기 시작했다.
'유행'과 관련 있다는 점에서 언뜻 보기엔 비슷해 보이지만 유행어와 밈의 속성은 많이 다르다.
대체로 유행어의 출발점인 개그 프로그램의 코너는 한 번 시작하면 짧게는 수개월부터 길게는 수년에 이르기까지 반복되는 것이기에 유행에 느린 세대들이 따라가기에도 큰 무리가 없었다.
반면에 밈은 소비자와 술래잡기라도 하듯, 익숙해질 때쯤 다른 것으로 대체된다.
단 일주일만 놓쳐도 "요즘 그거 지났는데"라는 소리를 듣기 일쑤다.
대중에게 알려지면 더 이상 인터넷에서 소비하던 이들이 흥미를 갖기 어려워지는 독특한 특성 때문이다.
또한 비교적 원작자가 명확한 유행어와는 달리 밈은 불특정 다수에 의해 동시다발적으로 생산되고 휘발된다.
그래서 밈이 어디서 발생했는지 아는 것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고, 특정 집단 내에서 발생한 경우에는 그에 대한 배경 지식을 갖고 있지 않는 한 유래와 용례를 제대로 이해하기조차 어려운 경우도 많다.
결국 유행어라는 개념이 희미해지고 밈을 따라갈 여력도 없어진 부장님들은 누구나 공감할 만한 말장난 개그를 시도했으나 약삭빠른 인터넷 세대는 아재개그라는 말로 그들의 노력을 내팽개쳐버렸다.
파편화된 유머
개인화된 소비 방식과 빠르게 변하는 유행은 사람들의 유머 코드를 완전히 파편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안타까운 점은 이러한 파편화가 그저 개인의 취향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인터넷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댓글 중에 "이게 웃긴가?"라는 것이 있다.
정말로 웃기지 않는다거나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불쾌감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쓰인다.
'나는 너의 유머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인 것이다.
이전에는 '웃기다'와 '웃기지 않는다'는 판단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너의 웃음은 틀렸다'라는 판단이 생겨났다.
누군가는 가까워지기 위해 던진 농담이 어떤 이가 듣기에는 무례한 것을 넘어 불편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소통'을 목적으로 던진 유머가 오히려 '단절'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웃음을 업으로 삼는 코미디언으로서는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웃음의 파편화가 부정적인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이제 자기 취향에 맞는 유머를 골라서 적절히 소비한다.
웃음 취향을 공유하고 이해하는 사람들과는 오히려 더욱 긴밀한 연결이 이루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과거에는 일반 대중들이 유머의 소비자였다면, 요즘에는 생산자가 되기도 하고 전달자가 되기도 한다.
일상에서의 짧은 영상을 올리는 사람들이나, 위트 가득한 댓글을 다는 사람들을 보면 대번에 그런 생각이 든다.
다시 무대 이야기로 돌아와서, 취향이 제각기인 관객들을 모두 만족시키려면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을까? 당연히 취향과 세대를 초월하는 완벽한 농담을 들려주면 좋겠지만, 그건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바로 '가까워지려는 마음'이다.
관객들끼리 공통된 관심사나 공유하고 있는 경험이 없다면, 그 자리에서 같이 만들어 주는 것이다.
같이 만든 공감대로 다시 웃음을 만든다.
웃음으로 두드리다 보면 언젠가 관객들도 마음의 문을 연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좋은 마음이야말로 웃음을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다.
유행어가 사라진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