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일대에 마을버스가 운행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낮 기온이 20도 안팎으로 오른 지난 5월 26일 낮 12시. 서울 6호선 새절역에서부터 은평구 산새마을 종점까지 걸어보기로 했다.
30도 이상 치솟는 한여름 정오보다 선선한 날씨였고, 휴대폰 지도앱에서 도보 약 20여분 정도 소요됐다.
지도앱은 오르막을 알려주지 않는 것에 함정이 있었다.
체감상 60도 같은 가파른 급경사 지역인데다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얽혀 있어 종점까지 올라가는 발걸음은 갈수록 무거워졌다.
작은 마트가 보이는 산새마을 종점에 다다르니 노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은평10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은평10번 버스는 이곳의 유일한 마을버스다.
가장 가까운 병원도 이 버스를 타고 언덕길을 내려가야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만난 70대 주민 이모씨는 노화로 인한 골다공증으로 고생 중이다.
그는 "이 마을버스가 없으면 오도가도 못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마을버스가 생기기 전에는 중간에서 쉬다 움직이다 하며 걸어왔는데 마을버스가 사라지면 다시 그렇게 되겠지"라고 푸념했다.
같이 앉아 있던 장모씨도 "양쪽 무릎 모두 수술해서 의사가 많이 걷지 말라고 했다"며 "이동할 때마다 5번을 쉬고 15분 거리도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데 마을버스가 없으면 안 되지"라며 손을 내젓는다.
이 동네 보람마트 사장은 "이런 동네는 마을버스가 없으면 거동이 어렵다.
마을버스는 1000원짜리 택시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보람마트 사장 말에 의하면 은평10번은 이제 하루에 3대, 그마저도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면 2대, 주말에는 1대만 다닌다고 한다.
"일요일에 버스를 놓치면 40분에서 1시간 기다리는 건 기본"이라며 "그마저도 구청에서 어르신들 이동 때문에 부탁해서 버티는 것"이라고 전했다.
용산구 후암동도 산새마을 못지않다.
오르막길 경사가 심한 후암동과 해방촌오거리는 최근 젊은 세대의 핫플(인기장소)이 되며 방문객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오래 살아온 주민들은 대부분 60대 이상 노인으로 매일 언덕을 오르내리기 버거운 연령대다.
해방촌오거리에서 '용산02번' 마을버스를 기다리던 주민 이모(68)씨는 "다리에 철심을 박아서 움직이기 불편하다"면서 "이거(02번) 타야 병원까지 쉽게 갈 수 있지 안 그러면 힘들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박모(76)씨는 "노인 일자리를 제공받는 곳까지 가려면 집에서부터 40분 이상 걸린다"며 "관절이 아파 오래 걸을 수 없고 마을버스가 멈추면 출근 자체가 힘들다"고 말했다.
마을버스 적자 누적
서울의 좁고 가파른 골목길 곳곳을 누비는 '달동네 시민의 발' 마을버스가 적자를 호소하며 멈춰 설 기로에 놓여 있다.
앞서 서울마을버스조합은 지난 5월 16일 서울시에 마을버스 요금 인상과 보조금 증액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조합은 현재 기본요금 1200원을 시내버스와 똑같은 1500원으로 올리고, 보조금 총액을 작년보다 83억원 인상해 달라고 주장했다.
현재 마을버스는 시내버스와는 달리 민영제로 운영된다.
적자가 나면 세금으로 보전해주는 '준공영제' 시내버스와 다른 구조다.
특히 조합은 운행 중단은 하지 않기로 했지만 대중교통 환승 체계 탈퇴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다.
요구 사항이 관철되지 않으면 환승 체계에서 이탈하겠다는 것이다.
마을버스 업계가 환승 할인제에서 이탈할 경우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쪽은 승객이다.
매번 환승 시 할인 없이 추가 요금을 내야 해 경제적 부담이 커진다.
예컨대 출근길에 마을버스 1200원을 낸 뒤 시내버스를 탈 때 1500원, 지하철에 탑승할 때 1400원을 그대로 내야 한다.
퇴근길에도 마을버스에 탈 때 1200원을 또 내야 한다.
출퇴근 때 쓰는 돈이 하루 3000원에서 5400원으로 늘어나는 셈이다.
서울마을버스조합 관계자는 "2004년 환승제 도입 당시, 서울시가 마을버스에 '100% 손해를 보전해주겠다'고 해서 동참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르다는 것. 관계자에 따르면 "요금 1200원을 받고, 환승 후 나눠 받는 건 646원, 667원으로 사실상 남는 게 없다"면서 "게다가 시는 '너희는 민간이니까'라고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시내버스, 지하철은 공영제라 손해 보전도 받고 기본운행원가도 정확히 책정되는데, 마을버스는 적자 보전도 제도적으로 미비하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운송 원가가 작년 기준 48만6998원인데, 지원은 10~20%밖에 못 받는다"면서 "몇 년간 누적되다 보니 이제는 못 버티겠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환승제가 없었으면 민간이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지만 제도에 따라 손해를 감수해왔다"면서 "하지만 최소한의 보전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서울시에서 보상을 안 해주면 마을버스조합은 탈퇴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미 확정됐고, 시기만 조율 중"이라며 "이번 주부터 마을버스에 안내문도 붙일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러면서 "마을버스는 골목 깊숙한 곳, 고지대, 노인 거주지역 등에서 필수 교통수단"이라며 "이렇게 손해만 보면 결국 누가 운영하겠나. 민간 사업자가 더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통상적으로 마을버스 재정지원기준액은 운송원가를 기준으로 정해진다.
운송원가는 하루에 버스 1대를 운영할 때 발생하는 비용을 일컫는다.
조례에 따라 서울시는 2년에 한 번씩 용역을 맡겨 운송원가를 책정하되 격년으로 시장의 재량에 따라 운송원가를 정할 수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용역을 맡겨 운송원가를 48만6000원으로 조정한 데 이어 올해 이미 14~15% 수준에서 지원금 예산을 올렸다는 입장이다.
예산은 지난해 361억원에서 올해 412억원으로 확대됐다.
반면 조합은 운송원가를 50만9720원으로 인상해 달라고 요구한다.
이 경우 서울시의 예산은 32억원가량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
박승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동력이 부족한 상황 속에서 실제 마을버스를 보면 운전하시는 분들이 대부분 노인"이라고 구조적인 문제를 짚었다.
박 교수는 "마을버스 기사들의 노동 여건이 상대적으로 안 좋은 것도 사실이고, 처우 개선도 필요할 수 있다"면서 "먹고사는 문제이기도 하다.
마을버스 운행에 의존해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업체 운영자들도, 기사들도 그렇다"고 덧붙였다.
교통약자 사각지대
당장 지하철이나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노인·장애인 등 교통약자들의 이동권이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우선 시민들이 일제히 마을버스 운행 중단을 걱정하고 있다.
용산02번 마을버스를 탑승한 김모(52)씨는 "무릎과 허리에 통증이 있어 5분 이상 걷기 힘들어 평소에도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닌다"면서 "돈이 있는 사람들은 택시나 자가용을 타면 되겠지만 우리같이 없는 사람들은 집까지 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이 마을버스"라고 말했다.
누적적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