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3일 서울 영등포구 KBS본관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선거 2차 토론회 시작에 앞서 각 정당 대선 후보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김문수 국민의힘, 권영국 민주노동당,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 photo 조선일보 공약발표는 유권자들에게 자신이 어떤 후보인지 알리는 행위다.
그런데 정치인들도, 유권자도 모두 '공약'에 그렇게 진중하지 않다.
각 후보의 캠프는 공약에 심혈을 기울이고, 심사숙고를 거치지 않는다고 필자는 느낀다.
대부분의 공약은 매번 선거 때 반짝하고, 선거가 끝나면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중앙경찰학교 공약을 두 곳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전국 시군별 맞춤형 지역 공약을 발표하며 이목을 끌었다.
그런데 시·군 단위로 맞춤 공약을 준비하다가, 지역 간의 이해관계나 갈등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이재명 후보의 공약에서도 이런 문제가 생겼다.
이 후보는 이번에 맞춤 공약으로 전북 남원시와 충남 아산시에 '중앙경찰학교' 유치를 약속했다.
그런데 남원시와 아산시는 지난해부터 제2중앙경찰학교를 두고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제2중앙경찰학교는 연간 5000 명 수준의 교육생을 수용하여, 해당 지역에 300억원이 넘는 규모의 경제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이유로 두 지자체는 치열한 유치경쟁을 벌였다.
특히 남원시는 인구 8만명 선도 붕괴한 상태라 학교 유치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후보는 두 군데 모두에 경찰학교를 유치하겠다고 발표했다.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광역자치단체 공약에선 제외하는 대신, 일단 이런 공약들을 시군 단위에는 모두 포함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일리 있는 해명이라 보기는 어렵다.
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남원시나 아산시 중 한 곳의 공약은 이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또 있었다.
민주당은 마사회와 경마장 유치를 남원시와 순창군에 약속했다.
문제는 같은 지역의 장수군과 김제시에서도 승마 산업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앙경찰학교같이 완전히 공약이 중복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승마산업에 대한 한정된 재원과 역량 속에서 모든 지역에 공약을 실현하기 어렵다.
결국 숙고 없이 각 지역의 민원 사항을 그대로 공약에 적용해, 이 후보가 당선 되더라도 어느 한 지자체 유권자들과의 약속은 지키지 못하게 됐다.
공약만 있고 이행 방안은 없는 공약집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는 지난 5월 12일 10대 공약집을 내놓았다.
주로 기업과 일자리 지원, AI와 GTX를 주 공약으로 내세웠다.
문제는 이런 김문수 후보의 공약이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거나, 이행 방안이 미비하다는 것이다.
가령 김문수 후보가 추진하는 5대 광역권 GTX는 예산 조달에서부터 의문이 생긴다.
이미 개통이 확정된 GTX 노선들은 모두 조 단위의 사업비가 필요했다.
또한 GTX를 우여곡절 끝에 개통하더라도 예상만큼의 수요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
현재는 각 광역권의 인구마저도 감소세가 꾸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GTX가 비수도권 광역권에서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그보다는 경전철 같은 적재적소 규모의 대중교통망 확충이 더 실효적이다.
또한 김문수 후보는 공약집에서 주객이 전도된 모습을 보인다.
GTX는 각 광역권을 연결하고, 생활권을 통합하기 위하여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교통망은 메가시티의 부분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김문수 후보의 10대 공약집을 보면, GTX가 메가시티보다 더 비중 있게 설명되고 있다.
초광역권 메가시티를 추진한다면서, '수도권, 충청권, 호남권, 대경권, 동남권 성장기반 조성'만을 부연 설명으로 두고 있다.
메가시티를 위해 GTX를 하는 것인데, 정작 메가시티에 대한 고민은 공약에 담기지 않은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라도 정치체제와 선거제도는 각기 다르다.
당연히 정책과 공약도 각각의 특징을 가진다.
내각제를 시행하는 영국은 의원을 선출하는 총선이 제일 중요한 선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영국 정치권은 치밀하게 공약을 준비한다.
매니페스토라 불리는 노동당의 공약집은 분량부터 압도적이다.
136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은 모든 영역에서 공약의 세세한 설명을 담아두고 있다.
이러한 에세이 형식의 공약집은 이슈와 영역에 따라 정책을 범주화한다.
그리고 공약마다 현상과 문제를 진단하고, 이행 방안과 기대효과를 제시한다.
근거 없이 청사진을 제시하는 한국 정치와 달리, 합리적 설명으로 유권자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또한 노동당은 우리나라 정당들과 달리 공약에 대한 접근성에도 신경을 썼다.
원본 공약집만 정당 홈페이지에 올려둔 것이 아니라, 읽기 쉬운 공약집과 시각장애인 유권자를 위해 오디오북 형태의 음성공약집도 배포하는 것이 그 예시다.
이는 우리의 이번 대선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심지어 소수자 권리를 강조하는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의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공약집은 따로 없다.
캐나다 자유당 또한 공약집에서 한국 정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올해 총선거에서 승리했던 자유당은 정책보고서 형식의 공약집을 발간하여 대중에게 배포했다.
마찬가지로 사회 전반에 대한 정책을 의도와 기대효과를 담아 소개하고 있다.
노동당과 자유당의 정책공약집은 우리나라 정당에선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을 보인다.
두 정당 모두 공약 이행을 위한 재정계획을 따로 자료를 만들어 자세하게 소개했다.
두 정당은 다양한 데이터로 각 공약에 대한 재정계획을 효과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공약이 허구의 상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근거가 있음을 유권자에게 알리는 것이다.
우리의 대선 후보들이 재원 조달 방안을 모호하게 이야기하거나,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과는 상반되는 모습이다.
公約이 空約 되지 않으려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책선거의 핵심은 공약이다.
정치인들은 시민의 요구가 반영된 공약을 만들고, 그것을 이행한다.
그리고 다시 선거와 평가를 통해 시민에게 피드백을 받는다.
따라서 정치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공약을 만들고, 정책을 꾸리는 것에 더 진지해져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정당은 평소에 기본기를 잘 다져야 한다.
매번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에만 몰두하지 않고, 정책연구소의 역량을 강화하여 더욱 효과적인 정책과 공약을 개발하여 경쟁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 발전에도 연결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유권자도 마찬가지다.
유세와 연설에서 카리스마를 보이는 후보도 좋지만, 공약을 치밀하게 준비하고 이행할 수 있는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대한민국이 발전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
정치인과 유권자 모두 '공약'에 사뭇 진지해지고, 더 활발한 소통이 있을 때 공약은 공허한 약속이 되지 않을 것이다.
대선후보들의 모순투성이 공약 경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