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1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과 회담하고 있다.
photo 뉴시스·AP "허상(Illusion)은 그림자와 같다.
허상을 좇아 헤매는 한 (허상이) 그림자처럼 영원히 따라다닐 것이다.
" 로마 최고 현제(賢帝)로 통하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남긴 명언이다.
스스로를 성찰해 허상을 가려내고 진리와 진실을 추구하란 뜻이다.
수백만 난민과 기아로 뒤범벅이 된 가자지구, 미사일과 러시아발 드론 수백 대를 동원한 우크라이나 대공습 정도는 해외면 1단 뉴스로 전락한 지 오래다.
요즘의 신문과 방송 헤드라인 첫 줄은 '트럼프'란 이름이 들어가는 일이 대부분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명실상부 글로벌 최정상 뉴스메이커다.
그러나 언론에서 묘사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미지는 악당 그 자체다.
필자의 대학시절에 하수도가 막혀도,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도, 새하얀 신발을 누가 밟아도 전두환 욕부터 나왔다.
한국 내 모든 잘못의 원천은 전두환인 것 같았다.
싫든 좋든 2025년 글로벌 이슈의 출발점, 나아가 종착점도 트럼프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을 우리 입장에서는 악당이라고 보지만, 실제 그는 미국에서 오바마 전 대통령보다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정책을 수행해 나가고 있다.
악당은 어쩌면 허상이고, 미국 역사상 가장 높은 지지를 받는 대통령이란 점은 현실일 수 있다.
저물어가는 악당은 무관심으로 대하면 그만이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최강대국의 대통령이란 점에서 우리는 그를 무시할 수 없다.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횡포를 막을 것처럼 기대하는 보도도 많이 나오지만, 정작 시진핑의 '팍스 시니카(Pax Sinica)'를 믿고 따르려는 나라는 극히 드물다.
필자가 아는 한 경제지원금에 코가 꿰인 캄보디아와 미얀마 정도다.
트럼프 대통령이 글로벌 뉴스메이커 자리를 1년 이상 지키고 있다는 것은 미국이 약해지지도, 트럼프가 맛이 간 '포퓰리스트 악당'도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미디어에 비친 허상만으로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종이 호랑이'로 느껴진다.
큰소리를 치고 값싼 칭찬 몇 마디에 영혼도 팔아넘길 싸구려 정치가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모두가 트럼프 대통령을 악당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관계의 단절을 요구하는 인물은 단 한 명도 없다.
미국을 황혼대국이라 하지만, 미국 없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없이는 어느 나라도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크게 보면 '이솝 우화' 속의 '신포도(sour grape) 현상'이라 해석할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비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사려는 것이 진짜 의도일지 모른다.
필자는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지도 반대하지도 않는다.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그의 눈 밖에 날 경우 일어날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국가적 대재앙이 나타날 수 있다.
6월 4일 새 대통령이 취임하는 순간 미국은 관세 협상, 방위비 협상을 비롯해 여러 분야에서 청구서를 내밀려고 할 것이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대한민국 운명을 가늠할 변수이자 상수로서의 협상이다.
협상에 들어가기에 앞서 미디어에서 접하는 허상으로서의 트럼프 대통령이 아닌 그가 가진 힘, 즉 현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2기 집권 100일을 전후해 수많은 여론조사가 실시됐다.
2025년 6월 기준으로 할 때, 트럼프 지지자보다 반대자가 더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2013년 집권 2기를 맞았던 오바마 전 대통령의 100일 전후 지지도에 비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더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5월 21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미국과 남아공 간 정상회담 중 미국 측에서 남아공의 흑인들에 의한 ‘백인학살’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영상을 상영하고 있다.
photo 뉴시스·AP 집권 1기보다 높은 지지율 여론조사기관마다 차이가 있지만, 평균적으로 보면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은 대략 45% 정도다.
반대가 50%를 조금 넘어선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집권 1기 초반 60%까지 지지를 받았지만 이내 지지율은 급전직하한다.
재선 이후 지지율은 40%에 그친다.
엄청난 돈을 퍼부은 메디케어, 일명 오바마케어 의료법에 대한 국민적 반발이 낮은 지지율의 배경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물가인상을 동반하는 관세정책과 일손부족으로 이어질 이민자 추방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런 정책에 대해 모든 미디어가 총공세에 나서고 있지만, 국민들 45%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다.
45%는 우리 표현으로 '아스팔트' 지지층이다.
교육부를 없애고, 남미 출신 가수를 마약사범으로 취급하면서 미국 입국을 금지시킨다 해도, 할리우드를 싸구려 예술집단이라 매도한다 해도 45%의 지지율은 허물어지지 않고 있다.
관세정책도 마찬가지다.
중국과의 관세전쟁 최종 피해자가 미국이라 단언하는 사람도 많지만, 적어도 국민들 45%는 트럼프의 고관세 정책을 지지한다.
단기적으로 볼 때 '관세 인상이 곧 물가 인상'이란 사실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으로 보면 달라진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무역적자 투성이인 미국 경제 대수술을 위한 통과의례로서의 고관세란 것이 45% 미국인의 일반 정서다.
45%의 지지자들은 현재의 미국으로는 희망이 없다고 본다.
또 하나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오히려 집권 1기였던 2017년보다 높다.
집권 1기 100일을 전후해서 그의 지지율은 41~42% 수준이었다.
한국의 신문·방송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적당한 선에서 관세를 낮추고, 시진핑 주석에게 항복할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 현지 미디어는 정반대의 전망을 한다.
145%와 같은 천문학적 수치는 아니라 해도, 중국에 대한 고관세 정책은 결코 '모래성 정책'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리버럴 미디어의 대명사 뉴욕타임스도 그 같은 상황을 감안해 지난 5월 22일 흥미로운 칼럼 하나를 실었다.
'오바마 시대에 관한 거짓말을 그만 해라(Can We Please Stop Lying About Obama?)'란 제목의 글로,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정책이 오바마 전 대통령에 비해 폐쇄적이며 즉흥적이고 반기업적이란 분석은 잘못된 것이라 주장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강경책은 오바마 2기보다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필자는 20여년 전 뉴욕에서 선거 관련 일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직장 상사인 딕 모리스를 통해 많이 배웠지만, 미국 정치는 수많은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이뤄진다.
정치와 정책에 관련한 모든 것이 여론조사를 통한 수치로 매일 분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와 정책은 결코 '맛이 간 꼰대의 일방통행'이 아니다.
수많은 정책 여론전문가들이 제공한 객관적 수치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지탱하는 핵심요소들이다.
지지하니까 밀어붙이는 것이다.
'아니면 말고 식 정책'과 같은 여의도 세계관으로 트럼프를 대할 경우 100전 100패만 기다리고 있다.
지난 22일 미 하원에서 세제법안 하나가 찬성 215표, 반대 214표의 단 한 표 차로 통과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크고 아름다운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으로, 대폭적인 감세정책이 핵심이다.
상원을 공화당이 장악한 상태라는 점을 감안하면 99% 입법화될 것이다.
이를 두고 미국의 리버럴 미디어는 하원통과 즉시 3조8000억달러에 달하는 연방정부 대적자가 기다리고 있다고 맹비난한다.
필자는 다르게 본다.
세상에 세금 줄어든다는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세금이 줄어든 만큼 소비가 늘고, 그만큼 경제도 활성화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했듯이, 고관세로 얻은 부가수입을 통해 적자의 상당 부분을 만회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팁(tip)'에 대한 세금 감면도 시행하면서, 비정규직 파트타임 청년들의 지지폭도 넓혀갈 전망이다.
리버럴 미디어의 전망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는 더 올라갈 수밖에 없다.
지난 2월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기자회견, 최근 있었던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과의 회담은 강대국 대통령이 약소국 지도자를 어떻게 요리하는지를 보여준 최적의 모델이다.
높은 지지율 업고 외국에 강경정책 지난 5월 21일 트럼프 대통령과 라마포사 대통령이 펼친 백악관 기자회견 현장을 보자. 라마포사 대통령은 남아공 출신 프로골퍼 두 명과 함께 기자회견에 임했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극찬하면서 오는 11월 남아공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담에 미국이 참가해줄 것을 요청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흑인 라마포사 대통령의 이 같은 제안은 무시한 채 백인 골퍼 2명과의 대화에만 몰두하다가 갑자기 불을 끄라고 지시한다.
곧이어 남아공 흑인들이 백인을 학살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영상이 오벌하우스 벽면에 방영된다.
정상회담 후 이 영상은 남아공의 백인 부부가 살해당한 것을 추모하는 영상으로 밝혀졌다.
남아공에는 전체 인구 6300만명 가운데 7%인 450만명 정도가 백인이다.
이들은 최근 흑인 주도 정치테러의 주된 타깃이 되고 있다.
살인, 납치는 일상풍경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하나인 일론 머스크는 남아공 출신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 향하는 거의 모든 정보가 머스크를 통한 것이라 유추할 수 있다.
리버럴 미디어는 트럼프의 시위 영상 상영을 외교 의전을 무시한 기습공격이라 표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흑인만이 아닌, 백인이 21세기 아프리카 정치의 보복대상이 됐다는 것을 알린 최초의 서방 정치가다.
잘못된 정보도 많고, 왜곡된 통계도 적지 않다.
그러나 원래 백인 학살 문제는 그 누구도 말하기를 꺼리던 '정치적 터부' 중 하나다.
백인 학살을 이슈화하려는 순간, 흑인 학살이란 반격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백인 수백, 수천 명 죽는 것쯤은 '새 발의 피' 정도로 해석됐고, 당연시됐다.
트럼프 대통령는 그 같은 터부를 깨고, 백인 학살 문제를 오벌하우스에서 공개적으로 언급한 첫 인물이다.
그것도 전 세계 미디어가 집중하고 있는 상황에서 '라이브쇼'로 말이다.
더불어 곧바로 남아공 난민도 받아들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모든 행동은 철저하게 지지율을 등에 업은 자신감에서 나오고 있으며, 치밀하기까지 하다.
"외교는 쌍방이 이익을 보기 위해 행하는 것이다.
어느 나라는 이익을 보고 다른 나라는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는 것은 외교가 아니다.
그런 것은 약탈이라 한다.
" 최근 한국 야당 지도자가 미국과의 협상을 염두에 두고 한 발언이다.
호연지기로 채워진 '통 큰' 자주적·민족적 발언으로, 듣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다.
남아공 비디오를 지켜보면서 6월 3일 당선될 한국 대통령의 백악관 방문 모습을 상상해봤다.
기자회견장이 쌍방 외교와 일방 약탈, 허상과 현실 가운데 어디쯤 머물지 궁금하다.
남아공 대통령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