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6월 26일(현지시간) 미국 상원 청문회에 참석한 모습.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롬 파월 중앙은행(Fed) 의장을 쫓아내기 위해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속해서 금리인하를 요구하고 나섰지만 파월 의장이 여기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파월 의장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던 백악관 측은 Fed의 건물 공사 비용이 과다하다는 점을 찾아냈다.
백악관이 이 같은 이유로 파월 의장을 해임할 경우 글로벌 금융시장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인플레이션 우려에 더해 중앙은행의 독립성 문제가 불거지면 미국의 신뢰도가 글로벌 시장에서 급락하며 국채금리는 오르고 달러 가치는 떨어지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파월 의장 압박하는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대선 전부터 파월 의장을 지속해서 압박해왔다.
지난해 7월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전 기준금리 인하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한 뒤 파월 의장이 9월 금리를 인하하며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집권 이후에도 자신의 금리인하 요구에 응하지 않는 파월 의장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지난 4월에도 그는 “파월의 임기는 빨리 종료되어야 한다”, “내가 그의 사임을 원하면 그는 매우 빨리 물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을 ‘미스터 투 레이트’(Mr. Too Late·의사결정이 매번 늦는다는 뜻), ‘루저(loser)’,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라며 노골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이런 압박에도 파월 의장은 정치적 고려 없이 원칙대로 통화정책을 운용해 가겠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파월 의장은 통화정책과 관련해선 관세정책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좀 더 명확해질 때까지 금리인하 없이 기다릴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유지하는 중이다.
Fed는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이후 금리를 4차례 연속 동결했다.
“베르사유궁전인가”
트럼프 대통령이 계속해서 파월 의장을 압박하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인 러셀 보트 예산관리국(OMB) 국장은 7월 10일(현지 시간) 자신의 X(옛 트위터)에 “제롬 파월 의장은 Fed를 심각하게 잘못 관리하고 있다”며 파월 의장에게 보낸 항의 서한을 공개했다.
보트 국장은 “Fed가 2023 회계연도부터 역사상 처음으로 계속해서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Fed는 본부의 보수공사에 예산을 초과해 지출하고 있다”며 “현재 (공사 비용이) 초기 비용보다 약 7억 달러 늘어난 25억 달러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보수공사는 테라스 루프톱 정원, 인공폭포, VIP용 엘리베이터, 고급 대리석 등이 포함됐다”며 “1제곱피트(0.0929㎡)당 비용이 일반적으로 역사적인 연방 건물의 두 배에 해당하는 1923달러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프랑스) 베르사유궁전도 현재 달러 가치로 30억 달러 정도다”며 Fed 보수공사 비용이 궁전을 짓는 비용만큼이나 든다고 주장했다.
보트 국장은 파월 의장이 지난 6월 말 상원 은행·주택·도시문제위원회의 반기 통화정책 보고 청문회에 출석해 거짓말을 했다는 의혹을 다시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파월 의장이 6월 말 상원 증언에서 연준 보수공사의 설계 특징에 대해 정직하지 못했다는 일부의 공개적인 주장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당시 상원에서 파월 의장은 연준 보수공사 비용이 과도하다는 언론보도에 대해 “부정확하다”고 해명하며 “VIP 식당, 새로운 대리석, 특별한 엘리베이터는 없다.
전부터 있던 오래된 엘리베이터가 있을 뿐이며 인공폭포나 양봉장, 옥상 테라스 정원도 없다”고 말했다.
앞서 빌 풀테 연방주택금융청(FHFA) 이사는 이 증언이 거짓말이라면서 ‘기만적’인 증언으로 고의로 상원의원들을 오도한 것이므로 파월 의장을 해임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파월 해임 구실 찾아
백악관은 전방위로 파월 의장을 압박하고 있다.
캐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은 7월 13일(현지 시간) ABC뉴스 인터뷰에서 Fed 보수공사 비용이 파월 의장 해임 사유가 될 수 있냐는 질문에 “대통령이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로 결정하느냐의 여부는 러셀 보트가 Fed에 보낸 질의에 대한 답변이 크게 좌우할 것”이라고 답했다.
해싯 위원장은 Fed 건물 공사가 미국 역사상 연방수사국(FBI) 청사 보수공사 다음으로 가장 비쌌다면서 “Fed가 해명해야 할 게 많다”고 말했다.
해싯 위원장은 대통령이 Fed 의장을 해임할 권한이 있냐는 질문에 “들여다보고 있는 사안이지만 사유가 있다면 대통령은 분명히 그럴 권한이 있다”고 답했다.
해싯 위원장은 차기 Fed 의장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되고 있다.
백악관과 공화당 일각에서 Fed의 공사 비용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을 두고 언론은 트럼프 행정부가 파월 의장을 해임할 근거를 찾고 있다고 평가했다.
“시장 혼란 있을 것”
일각에선 트럼프 행정부의 파월 의장 해임이 현실화할 경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는 세계 금융시장에 ‘미국 통화정책이 정치적 압력에 흔들릴 수 있다’는 강력한 부정적 시그널을 줄 가능성이 커서다.
우선 시장은 Fed의 독립성이 훼손된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
이는 곧 달러와 미국 경제 시스템 전반에 대한 신뢰 약화로 이어진다.
달러의 신뢰도가 흔들리면 신흥국 환율이 급등하고 외환보유액 방어에 나선 중앙은행들의 정책 여력이 약화하는 등 글로벌 외환시장 불안으로 연결될 공산이 크다.
장기 금리 상승은 전 세계 자본시장의 기준점 역할을 하는 미국 국채 시장의 불안정성을 키우며 글로벌 채권 가격 하락과 평가손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주식시장 역시 예외는 아니다.
Fed의 정책 일관성에 대한 의문이 커지면 투자자들은 위험자산 비중을 축소하고 현금 확보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특히 기술주와 신흥국 자산 등 고평가 영역부터 타격이 예상된다.
도이체방크의 조지 사라벨로스 전략가는 보고서를 통해 금융시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파월 의장 해임 가능성과 그에 따른 리스크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시장에서는 파월 의장 해임 가능성이 20% 미만으로 평가되며 리스크를 지나치게 낮게 보고 있다”고 경고했다.
다양한 이벤트 예측 베팅 사이트인 폴리마켓은 파월 의장의 해임 가능성을 20% 미만으로 반영하고 있으며 실제 외환 시장에서도 달러는 비교적 안정적 흐름을 보이는 중이다.
하지만 사라벨로스 전략가는 “파월이 해임된다면 24시간 안에 달러 가치가 3~4% 급락하고 미국 국채 수익률은 0.3~0.4%포인트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특히 “Fed는 글로벌 달러 시스템의 중심이며 해임의 여파는 미국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로 확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
트럼프의 파월 흔들기, 글로벌 시장 타격 입나[글로벌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