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시대
스티븐 J 파인 지음│김시내 옮김│한국경제신문│1만9000원
지구 곳곳에서 산불이 끊이지 않는 오늘날 우리는 단순한 기후변화를 넘어선 시대를 살고 있다.
바로 ‘불의 시대(Pyrocene)’다.
이는 단순히 불이 많아졌다는 뜻이 아니라 불의 영향이 전 지구적, 지질학적 스케일에 이르러 빙하기에 비견될 만한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는 선언이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화재 전문가 스티븐 J 파인이 평생의 지식을 집대성한 저서 ‘불의 시대’는 불을 중심으로 인류 문명을 재조명하며 인류가 만들어낸 불이 지구에 가져온 다차원적인 위기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인문, 과학, 환경을 유기적으로 엮어 불의 세계를 직조하는 이 책은 지금 우리가 반드시 읽어야 할 시대적 경고이자 생존 지침서다.
지구는 태양계에서 유일하게 불이 존재하는 행성이며 인간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불을 사용하는 종이다.
불은 인간과 더불어 진화해왔고 인간은 불을 통해 자신을 조형해왔다.
그러나 인간의 가장 강력한 도구이자 힘이자 동반자였던 불은 이제 인간을 위협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산불의 위력은 점점 더 강력해지고 있으며 특히 최근 호주, 미국, 한국 등지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불은 수천만 헥타르의 땅을 태우고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집어삼켰다.
인간이 불을 그 어느 때보다 더 고차원적으로 조종할 수 있다고 자부하는 현대에 오히려 불의 위력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거세지고 통제 불가능해졌다.
‘불의 시대’는 인간 문명이 불을 중심으로 구성됐다는 통찰을 통해 불이 인간에게 길들여진 순간부터 불이 인간의 세계를 지배하게 된 오늘날까지의 변화를 추적한다.
인간은 들소를 젖소로 길들인 것과 마찬가지로 들불을 횃불로 길들였으며 이 불을 이용해 초원과 산림을 개간하고 사냥과 농경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나갔다.
불은 인간이 생태계를 조작하고 재편하며 지배하는 도구였다.
인류 문명은 전쟁과 건축과 종교와 화학과 연금술과 기계공학에 불을 이용하며 눈부신 진화를 이뤄냈다.
인간에게 불은 더 이상 도구가 아니라 세계를 구성하는 원동력이 됐다.
불은 공장을 움직였고, 철도를 달리게 했으며, 전기를 공급했고, 대량 생산과 소비의 시대를 열었다.
인간은 불 덕분에 이전에는 상상조차 못한 규모의 도시를 만들고 수천 킬로미터를 하루 만에 이동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오늘날 불은 인류가 통제할 수 없는 수준에 다다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관측되는 대형 산불들은 이 불의 시대가 단지 자연현상이 아니라 인류 문명의 결과물임을 보여준다.
파인이 정의하는 불의 역사는 세 시대로 나뉜다.
첫 번째 불은 식물이 대륙을 덮자 나타난 자연의 불이다.
번개와 같은 자연현상에 의해 발생한 이 시대의 불은 생태계의 일부로서 존재했다.
두 번째 불은 인간이 길들인 불이다.
인간은 요리, 사냥, 경작 등 자신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도구로 불을 다루기 시작했고 이 시대의 불은 인간이 있는 모든 곳에 퍼졌다.
세 번째 불은 질적으로 다르다.
이 시대의 불은 계절, 태양, 기후, 지리 같은 생태학적 한계에 제한되지 않는 파괴력을 가지는 불이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나무, 풀 같은 유기물이 아니라 화석 연료를 태우기 시작했고 가연성 물질의 원천은 기본적으로 무한하다.
이제 불은 더 뜨겁고 오래 탈 뿐만 아니라 지구의 대기와 기후까지 비가역적으로 바꾸고 있는 총체적 힘이다.
불의 시대의 위험성은 산불의 증가뿐만 아니라 반복되는 고온화, 건조화, 탄소배출 증가, 바다의 산성화, 해류의 변화, 생물 다양성의 소멸로도 나타난다.
불은 대기권을 통해 모든 장소에 영향을 미치며 현대의 도시조차 불을 중심으로 조직된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이 불의 시대의 정점에 서 있다.
이제 이 불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가 우리의 다음 시대를 결정할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맞이한 위기를 이해하고 대응할 열쇠를 쥐고 있다.
오은환 한경BP 출판편집자
초대형 산불, 계절적 재난이 아니라 문명의 산물[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