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지법, 삼바 전 직원 ‘법정 구속’ 판결
“국가 핵심 기술 유출 시도, 명확한 위법”
[법알못 판례 읽기]
인천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삼성바이오로직스 전경. 사진=연합뉴스
국내 1위 제약·바이오 기업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영업 비밀을 외부로 빼돌리려다 적발된 전 직원이 법정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됐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산업에서 빈번했던 기술 유출 범죄가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도 표면화된 것으로,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문제에 대한 사법부의 엄단 기조가 재확인됐다는 평가다.
‘대외비’ 적힌 문서 3700여 장 유출하려다 적발
인천지방법원 형사5단독 홍준서 판사는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부정경쟁방지법) 위반,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2024년 12월 재판에 넘겨진 삼성바이오로직스 전 직원 A 씨에게 7월 11일 징역 3년을 선고했다.
A 씨가 선고 당일 항소해 판결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A 씨는 법정에서 바로 구속됐다.
판결문에 따르면 A 씨는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생산하는 바이오의약품의 품질 보증과 규제 대응 관련 업무를 하던 직원이었다.
그는 2022년 12월 3일 인천 연수구 송도동 삼성바이오로직스 본사에서 내부 전산 시스템에 보관돼 있던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시설의 표준작업지침서(SOP)’를 서류로 출력한 뒤 이를 외부로 가지고 나왔다.
SOP는 바이오의약품 생산 시설을 최적의 상태로 운영하기 위한 기술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영업 비밀로 관리하던 것이었다.
A 씨는 같은 달 11일까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영업 비밀이 담긴 파일 총 175건을 절취했다.
13일에는 또 다른 영업 비밀인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시설 내 기기 목록’을 마찬가지 방법으로 빼돌리려 했다.
A 씨는 이날 하루 동안에만 38건의 영업 비밀이 담긴 파일을 유출할 목적으로 출력했다.
그러나 그는 보안 직원의 감시망에 걸려들었다.
300여 장의 문서를 옷 속에 감추고 회사를 빠져나가려던 A 씨의 모습은 보안 직원의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따르면 그가 약 열흘에 걸쳐 빼돌리려 한 영업 비밀 관련 문서는 3700여 장에 달한다.
서류에는 외부로 반출해선 안 된다는 의미로 ‘대외비’(Confidential) 표시가 돼 있었다.
A 씨는 이 자리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그를 즉각 관할 경찰서에 인계하고 형사고발했다.
이후 A 씨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 등 경찰 수사가 이뤄졌다.
그로부터 약 2년 뒤 검찰은 A 씨를 불구속기소했다.
휴직 앞두고 주말 이용해 문서 반출 시도
산업기술보호법과 부정경쟁방지법은 ‘누구든지 절취·기망·협박, 그 밖의 부정한 수단으로 대상 기관의 산업기술이나 영업 비밀을 취득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재판부는 A 씨가 해당 규정을 명백히 어겼다고 보고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산업기술보호법 36조는 국가 핵심 기술을 유출한 자를 3년 이상의 유기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A 씨는 영업 비밀이 담긴 서류를 출력한 것이 외부로 유출하려던 게 아니라 새롭게 배정된 제조 센터의 업무에 익숙해지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A 씨가 2022년 12월 16일부터 2023년 7월 15일까지 육아 휴직이 예정된 상태에서 다른 직원들의 출근이 뜸한 토요일과 일요일에 출근해 자신의 사무실이 아닌 회의실 등에서 문서들을 출력한 점, 그가 출력한 문서에는 (새 부서뿐 아니라) 기존 부서 소관의 문서도 포함된 점 등을 고려하면 믿을 수 없는 변명”이라고 일축했다.
A 씨는 보안 직원에 의해 범행이 적발된 이후 외부로 유출한 문서들을 경쟁사 등에 제공하지 않고 폐기해 죄가 없다는 주장도 폈다.
그러나 홍 판사는 이에 대해서도 “피해 회사(삼성바이오로직스)에 반환하면 양형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음에도 폐기한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참작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홍 판사는 “A 씨는 5000쪽이 넘는 문서를 출력한 뒤 3000쪽 이상의 문서를 외부로 반출했고 범행 대상에는 생명공학 분야 국가 핵심 기술이 포함돼 있다”며 “피고인의 연령, 성행, 환경, 범행 동기·수단·결과, 범행 후 정황 등 여러 양형 조건을 종합해 주문과 같은 형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홍 판사는 올해 6월 13일 단 한 차례의 공판으로 변론을 종결하고 선고 기일을 바로 잡았다.
첫 공판이자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징역 5년을 구형했다.
삼바 “피해 기술, 회사 경쟁력과 직결”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바이오의약품 생산 시설을 갖춘 기업이다.
4개의 공장에서 1만5000L급 배양기 34기, 1만L급 배양기 6기를 운영하고 있다.
A 씨가 유출하려던 SOP 등은 이런 대규모 시설을 최적의 효율로 가동하는 데 꼭 필요한 기술이라는 설명이다.
일관된 품질을 가진 의약품을 대량으로 생산해내기 위해선 SOP를 통해 구현되는 표준화된 공정 프로세스가 필수적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관계자는 “SOP는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의 기술과 운영 노하우가 집약된 자료로 CDMO의 신뢰도와 직결된다”며 “이런 자료가 유출되면 기업의 경쟁력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으며 만에 하나 경쟁사로 흘러 들어갈 경우 해당 기업에서 부당하게 기술적 우위를 갖게 돼 시장의 공정 경쟁 질서를 해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에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해당 기술을 영업 비밀로 보호하기 위해 그간 해 온 노력도 고려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본사 출입구 등에 무단 침입 방지 장치와 폐쇄회로(CC)TV 등을 설치하고 보안 직원을 상시 배치해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내부 정보 보호 규정에 따라 직원들로부터 ‘영업비밀보호 서약서’를 제출받고, USB 메모리 등 개인 정보저장장치 등의 사용도 금지한다.
기밀 서류는 A 씨가 접근했던 내부 전산 시스템에 일괄 보관하되 담당 업무와 관련된 직원들만 접근할 수 있도록 엄격히 제한한다.
재판부는 A 씨가 유출하려 했던 영업 비밀이 가진 경제적 가치에도 주목했다.
홍 판사는 판결문에 “피해 회사는 바이오의약품 CDMO를 개발하기 위해 2011년부터 11년간 5조원 이상을 투자했고 2023년 기준 9.9% 수준인 전 세계 CDMO 시장점유율은 앞으로도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A 씨의 유출 시도가 성공했다면 삼성바이오로직스에 경제적 손해를 끼쳤을 것이란 취지로 판단했다.
[돋보기]
“기술 해외 유출 시 벌금 최대 65억” 개정안 시행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처벌은 점점 강화되는 추세다.
산업기술보호법을 위반한 자에 대한 벌칙을 대폭 강화하는 법률 개정안이 7월 22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국가 핵심 기술을 해외로 유출한 자에게 부과할 수 있는 벌금의 상한이 현행 15억원에서 65억원으로 상향된다.
기존에는 ‘목적범’(고의 이외의 목적도 있어야 성립하는 범죄)만 한정해 처벌하던 것을 ‘고의범’(범죄 의사를 갖고 저지른 범죄)까지 확대해 앞으로는 유출된 기술이 활용될 것을 인지한 경우까지 모두 범죄로 규율한다.
핵심 기술의 해외 유출을 소개·알선·유인한 브로커도 처벌 대상이다.
고의로 산업기술을 침해한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한도 역시 현행 3배에서 5배까지 늘어난다.
법원이 양형 기준을 높이고 검찰은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삼는 등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사법·수사 기관의 엄단 기조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첨단기술 산업이 국가 경제의 중추를 이루고 있으며 국가안보에까지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데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서다.
김종근 사법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횡령·배임·사기와 같이 기술 유출도 피해액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이를 양형 기준에 반영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장서우 한국경제 기자 suwu@hankyung.com
5조 쏟아부은 삼바 CDMO 기술 유출하려다 3년 ‘철창 신세’ [장서우의 판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