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보다 화려한 2막] 두려움 이겨내고 귀촌, 나만의 춤을 되찾다.
.. 장시춘 예산 '봄봄 방앗간' 대표 ▲  쑥밭에서, 봄봄 방앗간 장시춘 대표 ⓒ 장시춘 말로만 듣던 대기 발령이 현실이 된 것은 그가 마흔아홉 되던 해인 2017년 가을이었다.
대기 발령이라는 게 회사를 그만두라는 압박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 막막하고 두려웠다.
잠을 이루지 못해 아침만 되면 머리가 천근만근 무거웠다.
이듬해 중3과 고3이 되는 아이들에게는 든든한 아빠가 절실한 시기였다.
이제 그런 아빠가 될 수 없다는 생각만 하면 어깨가 한없이 밑으로 처졌지만 아내와 아이들이 불안해 할까 봐 내색조차 할 수 없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어깨 쭉 펴고 입가에는 미소까지 머금어야 했다.
직장에서 쫓겨나는 40대 대한민국 가장의 고달픈 현실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우리 아직 젊고 건강해." 무던한 아내. 이렇게 위로하며 태연한 척 연기 했지만 얼굴에 흐르는 불안감은 숨기지 못했다.
장시춘, 당시 그의 직장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형 유통회사. 그의 직책은 지점의 총책임자인 '점장'이었다.
부하 직원만 해도 수십 명이나 되는 현장 관리자다.
고민 끝에 점장의 체면과 남자의 자존심까지 잠시 내려놓고 '1년만 미뤄달라'고 회사에 사정 했지만, 회사는 냉정하기만 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 유통 분야에서 23년을 일해 왔어요. 물론 제가 선택한 길이었고요. 대기 발령을 받을 만한 잘못이나 실수는 없었어요. 그 분야 전문가이고, 내 딴에는 고급 인력이라 자부하며 살았는데 회사에서 볼 때는 그저 월급 많이 줘야 하는 시니어 직원이었던 거죠. 빨리 내보내야 회사에 이익인 그런 직원." 이 말을 할 때 그의 표정은 무척 어두웠다.
8년이란 세월이 흘렀음에도 아직 그때 받은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오랜 기간 고객을 상대하는 일을 해서 그런지 이때를 제외하고는 시종일관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지난 9일 오후 충청남도 예산시장 거리에 있는 봄봄 방앗간을 방문해 장시춘(57)씨를 만났다.
백발에 혈색 좋아 보이는 불그스름한 안면. '편해 보인다'라고 말하자 그는 "마음이 편해서 그런지 오랜 기간 보이지 않던 검은 머리도 간혹 보인다"며 확인이라도 시키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정말로 정수리 부근 백발 사이에서 검은 머리가 자라고 있었다.
<농민신문>에 귀촌 성공 사례로 소개됐는데, 정작 그는 "제가요?" ▲  예산 봄봄 방앗간 장시춘 대표 ⓒ 이민선 그가 운영하는 봄봄 방앗간은 성공적인 귀촌 사례로 꼽히는 사업체다.
<농민신문>과 예산 지역 언론, 한국농어촌공사 등이 앞다퉈 소개할 정도로 유명하다.
봄봄 방앗간은 간편 식사 대용식인 쪄서 만드는 귀리가루, 쑥 미숫가루 등을 판매하고 있다.
또 쪄서 짜는 전통식 생 들기름, 법제 호두기름, 전통 곡물을 활용한 미용팩 등도 만든다.
고추씨 가루도 분쇄·판매하고, 구운맛 현미 들깨 가래떡도 만들어 팔고 있는데, 들깨 가래떡이 인기가 높다는 게 장 대표 설명이다.
특히 그는 농약 등에 오염되지 않은 안전한 쑥을 얻으려 직접 기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생명력이 강해 아무리 척박한 환경이라도 쑥쑥 잘 자라서 '쑥'이라 이름 붙여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잘 크는 식물이라 직접 키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들이나 산에서 자라는 쑥을 필요한 만큼 베어오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예산 인근 대술이란 곳에 땅까지 얻어 쑥 농사를 짓는다.
"봄봄 방앗간 주력 상품이 쑥 미숫가루라 쑥이 많이 필요했어요. 쑥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사람들이 많이 웃었어요. 비웃음이죠. 천지가 쑥인데 무엇 하러 땅까지 얻어 힘들게 농사를 짓느냐는 의미가 담긴 웃음이죠. '저 사람 혹시 바보가 아닐까' 상상하는 분도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쑥을 직접 채취하려면 만만치 않아요. 쑥이 어디에 많이 있는지 서울 촌놈인 저로서는 알 수가 없었고요. 과수원 주변에 쑥이 많은데 그 쑥은 과수원에서 주는 농약에 노출돼서 쓸 수가 없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제주도 등에서 쑥을 사서 썼어요. 그러다가 물 좋고 공기 좋은 예산에서 직접 길러보기로 한 거죠." 언론 등의 평가는 '성공한 귀촌인'이지만 그는 인정하지 않았다.
'귀촌 성공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고 하자 "제가요?"하고 반문했다.
"저는 방앗간 하면서 정말 행복한데 아내가 그리 행복해하지 않아요. 직장 다닐 때보다 수입이 많이 떨어지거든요. 아내도 행복하면 성공이라 자신 있게 말할 텐데... 매출만 봐도 지난해에 겨우 손익 분기점을 넘었으니 창피한 수준이죠. 그렇지만 계속 신뢰를 쌓아가다 보면 매출도 점점 늘 것이라 생각하기에 실망스럽지는 않아요. 암 환우 모임에서 현미 들깨 가래떡이 '좋은 먹을거리'로 소개되고, 많은 분들이 맛나게 먹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는 보람도 느껴지고요." 서울 사람이 연고 하나 없는 예산에 터 잡은 이유 ▲  봄봄 방앗간 장시춘 대표. 새벽에 떡 써는 모습. ⓒ 장시춘 그는 예산에 아무런 연고가 없다.
충북 음성에서 태어났고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서울에서 마쳤으니 전형적인 서울 사람이다.
그가 예산과 인연을 맺은 것은 강제 퇴직을 권고받고 새 직장을 알아보면서부터다.
가장으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해 여기저기 이력서를 냈지만 그를 받아 주는 곳은 없었다.
기대치를 확 낮춰 연봉 2천만 원 정도 되는 문화센터 관리직이나 영업 경력직에 지원했는데도 떨어졌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한 유통회사 점장을 한 이력이 오히려 걸림돌이 된 것이다.
그는 "그때는 내가 왜 떨어졌는지 알지 못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제 경력 때문이었다"며 " 재취업을 하려면 화려한 경력은 빼는 게 좋다"고 귀띔했다.
취업을 포기하고 창업을 결심하면서 눈에 들어온 게 방앗간이다.
'전망 좋다'는 후배 말이 귀에 쏙 들어왔다.
같은 업계에서 일하다 방앗간으로 전업한 후배였다.
'(기술)다 가르쳐 줄게요'라는 그의 장담은 참으로 믿음직스러웠다.
그런데 정말로 방앗간을 하기로 마음먹고 후배에게 만나자고 하자 그때부터 연락이 되지 않았다.
면전에서는 다 가르쳐준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럴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후배에 대한 서운함에 다리 힘이 풀렸지만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그는 가족들 생계를 책임 져야 하는 가장이었다.
'궁하면 길이 보인다'고, 수소문해 보니 대전에서 점장을 할 때 스포츠 골프 용품점을 운영하던 이가 예산 옆 청양이란 곳에서 방앗간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점장 시절 그와 업무적으로 자주 부딪쳤다는 것. 그 뒤 화해를 위한 거듭된 노력으로 서로 앙금은 풀었지만, 그는 '친구 하자'는 제안에는 끝까지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장시춘이 내민 손을 기꺼이 잡았다.
그가 운영하는 방앗간에서 3개월간 실습을 한 뒤 방앗간을 차리기에 적당한 곳을 물색해 찾은 게 예산시장이었다.
"인간관계란 게 참 오묘합니다.
과거에 좋은 사이였다고 미래에도 좋은 사이가 된다는 보장은 없는 거예요. 반대로 적대적인 관계가 미래로 쭉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요. 그와 업무적으로는 부딪쳤지만 인간적인 미움은 없었어요. 아마 그도 내 마음과 같았던 것 같아요. 헤어질 때도 역시 나쁜 감정 없이 잘 마무리했고요. 그 뒤에도 인연의 끈은 놓지 않고 지냈습니다.
그래서 관계란 게 참 중요합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거든요." 절친한 후배가 장시춘 대표 전화를 피하면서까지 방앗간 기술을 가르쳐주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서운한 마음에 험담을 할 만도 한데 장 대표는 "알고 보니 가르쳐주지 않는 게 이 업계 불문율이라고, 알려 달라고 한 게 오히려 잘못"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장 대표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골프 용품점 점주는 어째서 아낌없이 방앗간 기술을 전수해 준 것일까? "기술을 가르치는 자체가 경쟁업체를 양산하게 되는 것이니까 가르치지 않는 건데 그분은 생각이 달랐어요. 물을 길어내야 샘에서 물이 더 잘 나온다는, 기술도 공개하고 개발해야 더 나은 기술이 나와 발전할 수 있다는 철학을 갖고 있었던 거죠. 내게 기술을 전수해도 자기는 새롭게 할 수 있는 것을 더 많이 개발할 수 있다며 흔쾌히 알려 줬어요." 직장생활하며 잃었던 춤, 다시 찾았다 ▲  봄봄 방앗간 장시춘 대표. 경상남도 고성오광대 전수관에서. ⓒ 장시춘 그는 지금의 삶이 인생 2막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1막의 연장'이라 말했다.
이 말이 내 귀에는 직장생활 하던 1막처럼 열심히 살겠다는 의미로 들렸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볼 때 지금 그의 삶은 분명 인생 2막이다.
그것도 1막보다 더 화려한 2막. "지금 수입이 월급 받을 때보다 적어서 아내 행복지수는 떨어졌지만 제 행복지수는 높아졌어요. 일단 마음이 편해요. 말도 안 되는 무리한 지시도 없고 또 그 지시에 대한 결과를 바라는 이도 없어요. 제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노력을 하고 합당한 결과를 바라면 되거든요. 또 직장생활 할 때 늘 따라다니던, 언제 잘릴지 모르는 두려움과 내 능력에 대한 불안감이 없어서 정말 좋아요. 회사가 원하는 만큼 내가 할 수 있을지 늘 불안했거든요.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되는 것이고 평가도 스스로 내리면 그만이니 마음이 편하죠." 직장을 그만두고 봄봄 방앗간을 운영하면서 잃었던 취미를 되찾게 됐는데. 이 또한 인생 2막이 준 선물이다.
"저는 우리의 전통 춤이나 꽹과리 북 같은 전통 악기를 좋아했어요. 그래서 대학 시절 '탈춤 동아리'에서 활동했고요. 직장생활 할 때는 너무 바빠서 못했는데 지금은 여유가 생겨서 다시 하고 있어요. 혼자 운동 삼아 하기도 하고 지역 아동센터 아이들에게 춤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2019년 이후 매년 고성오광대 전수관에 가서 2박3일 정도 일반인 전수 과정에 참여하고 있고요. 이번 여름휴가 때 아들, 조카와 함께 경상도 고성으로 춤 배우러 갑니다.
기회가 된다면 학생들에게 제 춤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 봄봄 방앗간으로 화려한 인생 2막을 펼치는 장시춘 대표. 그는 퇴직을 앞두거나 기타 여러 가지 이유로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본인은 준비가 안 됐어도 우리 사회는 이미 당신을 받아 줄 준비가 돼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도전하라"는 말을 전했다.
"재취업이든 창업이든 교육이나 지원 프로그램이 잘 갖춰져 있다"라며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자신감만 있으면 할 일은 많다"라고 덧붙였다.
인생 2막을 살아가는 그의 미래 계획은 소박하다.
일할 만큼, 춤을 출 만큼 체력이 될 때까지, 일하면서 춤추는 것이다.
바라는 게 있다면 자식들이 사회에 나가서 지치고 힘들 때 돌아올 수 있는 따뜻한 품이 되는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그 보금자리는 봄봄 방앗간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무엇'일 수도 있다.
49세에 회사 잘리고 인생2막 성공... "두 가지만 있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