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이의 여행블루스] 7~10월 누·얼룩말 200만 마리 ‘대이동’ 장관 펼쳐져
케냐의  ‘마사이마라 국립보호구역’. GETTYIMAGES
아프리카 대륙 동쪽, 적도가 지나는 나라 케냐. 열대우림과 고산지대, 붉은 대지와 드넓은 사바나가 공존하는 이 땅은 단순한 여행지를 넘어 인류 문명의 뿌리를 품고 있다.
영국 식민지였던 케냐는 1963년 독립을 맞았다.
격동의 근대사를 지나온 케냐는 오늘날 동아프리카 정치·경제 중심지로 자리 잡고 있다.
초현대적인 고층 빌딩과 낡은 상점, 그리고 도시와 초원이 공존하는 매력적인 나라다.
케냐로 향하는 길은 멀다.
직항 노선은 없고, 중동이나 다른 아프리카 나라를 거쳐야 닿을 수 있다.
비행만 16~20시간 걸리는 먼 여정이다.
이번 여행의 종착점인 ‘마사이마라 국립보호구역’은 수도 나이로비에서 차로 약 6시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다.
윌슨공항에서 경비행기를 타면 이동 시간을 1시간으로 단축할 수 있다.
이토록 긴 여정을 감수하게 만드는 것은 도착한 순간 마주하는 자연의 압도적인 아름다움과 생명의 떨림이다.
사파리의 본고장 풍경을 즐기면서 천천히 이동하고 싶은 이에겐 차량 이동이 매력적인 선택지다.
거친 흙길을 달리는 동안 창밖으로 펼쳐지는 초원의 바람결은 케냐의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사파리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마사이마라는 세렝게티 초원과 맞닿아 탄자니아와 경계를 이루는 ‘대이동(Great Migration)’의 중심 무대이기도 하다.
마사이마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마사이족이 거주하는 대지이자, 동아프리카 최대 생태 보존지 중 하나다.
국립보호구역 출입은 반드시 인증받은 가이드와 차량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사파리 전문 로컬업체나 숙소를 통해 투어를 예약하는 게 일반적이다.
경비행기 이동편 역시 숙소 픽업과 연계된 상품이 대부분이다.
자유여행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현지 전문업체를 통한 투어가 안전하고 효율적이다.
마사이마라를 여행할 때는 출국 전 말라리아 예방약을 복용하는 것이 좋고, 밤에는 반드시 모기장을 사용해야 한다.
또한 야생동물보호구역 안에서는 차량 밖으로 나가는 것이 금지되며, 가이드 지시에 따라야 한다.
마사이마라를 찾는 여행자는 대부분 보호구역 인근에 위치한 로지(lodge)나 텐트 캠프에 머무르며 하루 두 차례, 즉 새벽과 해 질 녘에 사파리 드라이브를 통해 야생 동물 관찰에 나선다.
해가 뜨기 전 붉은 기운이 수평선을 물들일 때 초원에 울려 퍼지는 동물들의 숨소리와 바람의 떨림은 그 자체로 하나의 교향곡이다.
고요한 대지를 천천히 가로지르는 동안 얼룩말과 누, 기린, 사자, 코끼리, 치타 등이 만들어내는 생생한 야생의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운이 좋다면 사자의 게으른 낮잠, 기린의 우아한 걸음, 하이에나의 날 선 웃음 같은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특히 7월부터 10월 사이에는 200만 마리 넘는 누와 얼룩말이 세렝게티에서 마사이마라로 향하는 대이동이 펼쳐진다.
사자와 하이에나, 악어가 이들의 움직임을 뒤쫓는 가운데 초원과 강가에서는 자연의 질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생존을 건 침묵의 행진은 아무런 연출도 없이 장엄하게 이어진다.
황금빛 초원이 붉게 물들 무렵이 되면 동물들은 느릿한 걸음으로 풀을 뜯거나 그늘 밑에 몸을 눕힌다.
바람은 낮의 열기를 훑고 지나가고, 지프차 안은 절로 조용해진다.
자연 앞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기다림’과 ‘관찰’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빠름에 익숙한 일상과는 정반대되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지만 그만큼 단단히 새겨진다.
마사이족이 정글을 수직으로 뛰는 듯한 독특한 춤을 추며 자신들의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GETTYIMAGES 마사이족, 고유한 색 지키려 노력 이 땅의 주인인 마사이족은 지금도 가축을 키우며 전통을 지켜가고 있다.
붉은 옷 ‘슈카(Shuka)’를 입고 전통춤을 추는 이들은 관광객을 위한 마을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들의 문화를 소개한다.
정글을 수직으로 뛰는 듯한 독특한 춤을 추고, 조상의 삶을 간단한 영어로 설명하는 모습은 현대와 전통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하는 그들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일부 젊은 마사이족은 도시로 나가 직업을 갖고, 일부는 마을에 남아 손님을 맞으며 살아간다.
변화는 피할 수 없지만, 그 속에서 고유한 색을 지키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마사이마라 여행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자연을 존중하는 태도다.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우리가 스며드는 것, 그것이 이곳을 여행해야 할 진짜 이유다.
광활한 대지에서 인간은 처음으로 아주 작아진다.
이 땅에 머무는 며칠 동안 많은 것이 멈춘다.
적막은 소음보다 더 깊게 스며들고, 해가 지는 시간은 무엇보다 숭고하게 다가온다.
초원의 긴 그림자 속에 선 인간은 자연 앞에서 다시 묻게 된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재이 여행작가는… ‌세계 100여 개국을 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지금은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로 이주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다양한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노마드 인생을 살고 있다.
초원에 울려 퍼지는 야생의 숨결 케냐 마사이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