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첫 시가총액 4조 달러… 중국 리스크 해소로 성장세 날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7월 16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3회 중국국제공급망촉진박람회’ 개막식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뉴시스
“H20도 뛰어나지만 더 발전된 칩을 중국에 팔기를 원한다.
향후 몇 년 동안 엔비디아는 중국 판매가 허용된 무엇이든 수출할 것이다.
”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7월 16일(이하 현지 시간) 중국 베이징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엔비디아는 전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로부터 중국 수출용 저사양 인공지능(AI) 칩 H20의 재판매를 승인받았다.
수출 금지 3개월 만이다.
엔비디아는 중국 매출이 사실상 ‘0’에 가까워진 상황에도 전 세계 상장기업 최초로 시가총액 4조 달러(약 5500조 원)를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는데, 대중(對中) 수출이 재개됨에 따라 글로벌 테크 시장에서 한층 독보적인 지위를 구축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젠슨 황 “H20 빨리 출하할 수 있길”
엔비디아의 시총 4조 달러 돌파는 테크업계 순위 재편을 의미한다.
엔비디아는 2022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시총 3조 달러(약 4100조 원)를 달성한 애플을 제치고 4조 달러 시대를 열었다.
‘모바일 혁명’을 이끈 애플이 저무는 가운데 ‘AI 혁명’의 상징인 엔비디아가 업계 최강자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준 장면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 투자자문사 에버코어ISI의 마크 리파시스 반도체 애널리스트는 “AI 시장에서 엔비디아는 스마트폰 분야의 애플 같은 위상”이라며 “역사는 이 흐름이 20여 년간 지속될 것이라 말하고 있고 엔비디아의 승리는 이미 확정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엔비디아가 S&P500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6%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이는 애플 주가가 전성기를 달리던 시절의 2배를 넘어선다.
월가에서는 엔비디아 시총을 5조~6조 달러(약 6900조~8300조 원)까지도 내다보고 있다.
최근 웨드부시증권은 엔비디아 시총이 향후 18개월 내 5조 달러에 도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루프캐피털은 엔비디아 목표주가를 월가 최고 수준인 250달러로 끌어올렸다.
250달러는 시총 6조 달러를 뜻한다.
그 밖에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현재 월가 애널리스트의 약 90%는 엔비디아에 대해 매수 의견을 유지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 및 각국 정부의 AI 인프라 투자 지속, 2분기 블랙웰 매출 본격 확대 구간 진입, 하반기 블랙웰 울트라 출시 예정 등을 매수 의견의 주된 근거로 꼽고 있다.
OBBBA 미 의회 통과에 AI 투자↑
여기에 더해 H20의 중국 판매 재개는 엔비디아 성장세에 날개를 달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치는 지난달 미·중 무역 협상 당시 중국이 희토류 수출 규제를 해제한 데 대한 대가이자 “엔비디아가 중국에 H20을 자유롭게 팔 수 있어야 화웨이 같은 중국 기업 대신 AI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는 젠슨 황의 설득을 트럼프가 받아들인 결과다.
대중 수출 통제는 그간 엔비디아의 가장 큰 약점으로 꼽혔다.
1분기(회계연도 기준) 매출에는 55억 달러(약 7조6300억 원)의 H20 재고 상각이 반영됐고, 2분기에도 80억 달러(약 11조1000억 원) 매출 손실이 예상됐다.
그러나 이 같은 리스크가 해소되면서 중국 AI 칩 시장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젠슨 황은 7월 15일 중국 언론에 직접 “미국 정부가 우리의 (H20) 수출을 승인해 출하할 수 있게 됐다”고 밝히면서 “H20을 빨리 출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는 매우 매우 좋은 소식”이라고 말했다.
이날 엔비디아 주가(종가 기준)는 사상 최초로 170달러 선을 넘긴 170.70달러를 기록했다(그래프1 참조).
젠슨 황은 7월 16일 베이징에서 열린 ‘제3회 중국국제공급망촉진박람회’ 개막식에 참석해 중국 AI 기술 수준을 치켜세우는 등 중국 AI 칩 시장에 공을 들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여겨지는 가죽 재킷 대신 중국 전통 의상을 입고 연단에 선 그는 “중국의 초고속 혁신을 이끈 영웅은 연구자, 개발자, 창업자들이고 150만 명 넘는 중국 개발자가 엔비디아 플랫폼을 기반으로 혁신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며 “딥시크와 알리바바, 텐센트, 미니맥스, 바이두의 어니봇 같은 AI 모델은 월드클래스로 이곳에서 개발돼 개방적으로 공유됐으며 세계 AI 발전의 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 패키지인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BBBA)’이 미 의회 문턱을 넘은 것도 엔비디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 법안은 법인세 인하 및 AI·반도체 등 국가 전략 산업에 대한 세제 감면 확대를 골자로 한다.
특히 데이터센터 등 인프라 투자에 대해 ‘100% 보너스 감가상각’을 허용해 투자 첫해에 전액 비용을 처리할 수 있고, AI 칩 개발 및 생산에 투입되는 연구개발(R&D) 비용을 즉시 공제받을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에 따라 빅테크의 AI 인프라 투자 여력이 확대되면서 업계 전반의 ‘AI 군비 경쟁’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AI 칩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는 엔비디아로서는 수요 기반이 더 견고해지는 호재가 발생하는 것이다.
엔비디아를 중심으로 한 청사진에 국내 반도체 기업도 적잖은 수혜를 누릴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엔비디아에 가장 많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공급하는 SK하이닉스는 AI 칩 수요 증가에 따른 추가 실적 개선이 기대된다.
블랙웰용 HBM3E 공급은 물론, 블랙웰을 잇는 차세대 AI 칩 아키텍처 루빈에 탑재될 HBM4(6세대 HBM) 샘플도 글로벌 반도체 3사(SK하이닉스·삼성전자·마이크론) 중 처음으로 엔비디아에 전달했으며, 현재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엔비디아 시총이 4조 달러를 돌파한 뒤 SK하이닉스 주가는 30만 원 선을 넘나들고 있다(그래프2 참조). 하나증권은 SK하이닉스 목표주가를 35만 원으로 상향 조정하면서 “최근 엔비디아 AI 칩 수요가 여전히 견조하다는 점이 확인되고 있어 HBM 관련 수요도 기존처럼 양호한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판단한다”고 분석했다.
하나증권 “SK하이닉스 목표주가 35만”
삼성전자는 아직 엔비디아에 첨단 HBM을 공급하지 못하고 있으나, H20의 중국 수출길이 열리면서 HBM3(4세대) 납품은 재개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H20 등 저사양 칩에 들어가는 HBM3를 공급하고 있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HBM3 생산을 중단하고 차세대 HBM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중국 수출 재개가 삼성전자에 큰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 경우 3분기 실적 개선 폭은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
H20의 중국 판매 승인 소식이 전해진 뒤 삼성전자 주가는 6만 원대 중반으로 올라섰다.
신영증권은 “현재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HBM3 생산을 중단한 것으로 파악되기 때문에 삼성전자의 점유율 확대와 실적 개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튜브와 포털에서 각각 ‘매거진동아’와 ‘투벤저스’를 검색해 팔로잉하시면 기사 외에도 동영상 등 다채로운 투자 정보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애플 스마트폰’ 넘어 ‘AI 시대 제왕’ 등극한 엔비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