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회장 무죄 확정… 검찰 ‘무리한 수사’ 완패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뉴스1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및 회계부정 의혹 사건에서 최종 무죄를 선고받으며 장장 9년에 걸친 사법 족쇄에서 풀려나게 됐다.
2020년 9월 이 사건으로 기소된 이 회장은 1·2심에서 19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 선고를 받은 데 이어 이날 대법원에서 검찰 측 상고가 기각돼 무죄가 확정됐다.
기소 5년 만에 이 회장이 무죄를 확정받은 날은 공교롭게도 2015년 7월 17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10주년이다.
이 회장은 2016년에는 ‘국정농단’ 사태로 조사받았고, 이듬해 2월 구속기소돼 집행유예와 재수감·가석방을 거쳐 2022년 8월 15일 광복절 특사를 받았다.
19개 혐의 모두 무죄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7월 17일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실장과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 나머지 피고 13명도 무죄가 확정됐다.
대법원은 검찰이 삼성그룹에 대한 강제수사로 확보한 자료의 증거능력을 부정한 원심 판단과 관련해 “자유심증주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전자정보에 대한 압수·수색의 적법성, 재전문증거의 증거능력, 위법수집증거 배제법칙의 예외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 회장에게 제기된 혐의와 관련해 법리 오해 또는 판단 누락이 있었다는 검찰 측 상고 이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회장 변호인단은 대법원 판결에 대해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통해 삼성물산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가 적법하다는 점이 분명히 확인됐다”며 “5년에 걸친 충실한 심리를 통해 현명하게 판단해준 법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날 대법원에서 이 회장과 나머지 피고 13명의 무죄가 확정되자 애초에 검찰의 수사와 기소가 무리하게 이뤄진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은 이 회장과 사건 관계자 약 300명을 860여 회에 걸쳐 소환 조사하고 53곳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이 삼성그룹으로부터 압수해 분석한 디지털 자료만 2270만 건에 달한다.
이 같은 전방위 수사 끝에 검찰은 2020년 5월 이 회장을 두 차례 소환 조사했고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같은 해 9월 검찰은 이 회장과 사건 관계자들을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당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가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했지만, 검찰은 수심위 권고를 따르지 않은 첫 사례를 만들며 기소를 강행했다.
문제는 재판 과정에서 검찰의 대대적 수사에 적잖은 법적 하자가 드러났다는 점이다.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152쪽에 달하는 ‘위법수집증거 목록’을 적시하고 “검찰이 위법한 압수수색으로 영장주의와 적법 절차의 원칙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항소심에서 검찰이 추가로 제출한 증거 2000여 건도 마찬가지로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검찰은 1·2심에서 사실관계에 대한 무죄 판단이 나왔음에도 올해 2월 상고를 강행했고 끝내 대법원에서도 ‘완패’하게 됐다.
“삼성은 죽느냐 사느냐의 생존 문제에 직면”
그간 사법 족쇄에 묶인 이 회장이 법정을 드나들게 되자 경영에 차질이 불가피했다.
지난 5년간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의혹과 관련해 110회가 넘는 공판이 열렸다.
이 회장은 이 가운데 1심 96번, 2심 6번 등 총 102번 재판에 출석해야 했다.
그룹 최고 사령탑이 사법 족쇄에 시달리는 사이 삼성 특유의 ‘삼성 제일주의’도 흔들렸다.
특히 삼성전자 입장에선 핵심 산업으로 부상한 고대역폭메모리(HBM) 분야에서 기술 경쟁력을 선점하지 못한 점이 뼈아프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파운드리와 스마트폰, 가전제품 등 주요 제품의 세계 시장점유율도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이 회장이 사법 족쇄를 벗고 자유로워지면서 삼성의 대규모 투자 및 기술개발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이 회장은 3월 그룹 계열사 임원 2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교육에서 “삼성은 죽느냐 사느냐의 생존 문제에 직면했다”며 ‘사즉생(死則生)’ 메시지를 낸 바 있다.
2심 무죄 선고 이후 이 회장은 그간 사실상 멈춘 인수합병(M&A)을 재개해 주목받았다.
올해 4월 삼성전자 자회사 하만은 미국 마시모 오디오사업부를 약 5000억 원에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5월에는 삼성전자가 독일 냉난방공조 업체 플랙트그룹을 약 15억 유로(약 2조4200억 원)에 인수한다는 소식이 나왔다.
2017년 하만 인수(약 9조3000억 원) 이후 8년 만에 이뤄진 조 단위 M&A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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