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춘욱의 경제와 투자] 세계 4위 클러스터 위상 대체 불가… 美 텍사스주 오스틴 같은 신도시 만들어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후에도 강남 3구에서는 신고가가 속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최근 호가가 3.3㎡당 3억 원에 이른 서초구 대장아파트 래미안원베일리. 뉴시스 서울 서초구와 강남구, 송파구에 이르는 이른바 ‘강남 3구’는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됐지만 서초구를 대표하는 신축 아파트 호가는 3.3㎡당 3억 원을 훌쩍 뛰어넘는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 주요 부처가 세종으로 이전한 데 이어 증권거래소를 비롯한 수많은 공공기관이 전국 각 지역 혁신도시로 옮겨 갔음에도 강남 불패 현상은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이 비싼 땅값과 심각한 교통체증에도 모여드는 이유는 서울 강남이 세계 4위 ‘클러스터(cluster)’ 핵심 지역이기 때문이다(표 참조). 클러스터는 지리적으로 인접한 연계 기업 및 연구기관 집단을 뜻한다.
즉 서울 여의도에 증권사 본사들이 위치한 것처럼, 한 지역에 비슷한 일을 하는 회사가 모여드는 현상을 경제학계에서는 클러스터라고 부른다.
삼성전자, SK, LG 포진한 강남-평택-천안 라인 세계 1위 클러스터는 일본 동경-요코하마 클러스터이며 도쿄대를 비롯한 세계 최상위권 연구기관들이 모여 뛰어난 인재를 공급하고 있다.
세계 2위는 선전-홍콩-광저우 클러스터로, 중국 중산대와 홍콩과학기술대 등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대학들이 통신·전자산업의 뒤를 받치고 있다.
세계 3위는 베이징 클러스터로, 칭화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이 세계 톱 레벨로 성장하면서 서울을 4위로 밀어냈다.
그럼에도 서울 클러스터의 잠재력은 무시할 수 없다.
삼성전자와 SK, LG 등 세계시장을 주무대로 삼는 글로벌 혁신기업의 연구소 및 생산라인이 강남-평택-천안 라인에 포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 특허 등록 건수 상위 랭킹을 살펴보면 1위 삼성전자, 2위 LG, 17위 현대차, 28위 SK로 기록돼 베이징 클러스터에 빼앗긴 세계 3위 자리를 되찾아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거대한 일자리 중심지가 형성되면 인재를 유치하기도 쉽다.
경쟁 기업이나 연구기관으로부터 필요한 인력을 유치하기 편하고, 인력의 연구 성과를 검증하려고 멀리 이동할 필요도 없다.
그뿐 아니라 지인 등을 손쉽게 만나 토론할 수 있어 지식이 실시간 공유된다는 장점도 있다.
특히 결혼 적령기인 사람이 거대 클러스터에서 일하며 자기 성향에 맞는 파트너를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클러스터 효과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소득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모여드니 자연스럽게 일자리가 늘어난다.
맞벌이 가정이 많아지는 만큼 외식 수요가 증가하고, 키즈카페나 쇼핑몰 등 다양한 물류사업이 호황을 맞는다.
소득이 많은 사람일수록 자녀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 학원이나 스터디카페 같은 업태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인다.
각종 의료·미용 비즈니스도 혁신 산업의 중심지를 벗어나서는 성장을 기대하기 힘들다.
  강남 독주를 막는 방법은 없을까. 서울 강남에서 충남 천안에 이르는 경부선 라인만 발전하고 다른 지역이 소외되는 현상을 해결하려면 지방에도 클러스터를 만드는 게 우선이다.
즉 주거비용이 저렴하다는 점만으로는 젊은이의 수도권 집중을 막을 수 없다는 얘기다.
  잠재력에도 ‘자족도시’에 그친 세종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같은 신도시를 만들면 된다.
용적률 규제를 철폐해 싼값에 택지를 공급하고, 세계에서 10번째로 큰 재단을 자랑하는 UT 오스틴(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 같은 연구 중심 대학을 설립하며, 사통팔달 철도망을 만드는 게 핵심이다.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2022년부터 7억 달러(약 9600억 원) 넘는 자금을 투자해 오스틴에 공장을 세우고 끊임없이 증설하는 데는 그 나름 이유가 있는 셈이다.
이런 면에서 세종 개발은 대단히 안타깝다.
천안, 대전, 청주 등 주변 도시와 연결되는 광역 철도망을 신속히 건설하고 주요 대기업 연구소를 대덕연구단지와 연계 유치했다면 서울 강남을 대체할 충분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종 계획가들은 ‘자족도시’라는 틀에 맞춰 디자인함으로써 이 기회를 날려버렸다.
즉 그들은 도시의 씨앗 역할을 할 공공기관 근로자와 그 가족들을 세종으로 이주하게끔 하려면 서울에서 통근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실제로 세종 중심에 위치한 정부세종청사를 방문한 사람들은 KTX 오송역에 내려 30분 이상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이 같은 선택은 세종을 ‘교통의 오지’로 만듦으로써 서울 인구를 흡수하겠다는 계획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충청지방통계청이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2012~2014년 세종 전입 인구 상당수가 서울 등 수도권 출신이었지만 2015년부터는 대전 등 주변 지역으로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현상은 혁신도시도 마찬가지다.
2018년 국토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중소도시에 입지한 7개 혁신도시 인구는 원도심 인구에서 유입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할 때 전쟁이나 대규모 지진 같은 외부 변수 없이는 강남을 중심으로 한 거대 클러스터의 지위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현재 세계 20위 근처에 머무르는 대덕연구개발특구 지위부터 향상시킨 다음 ‘제2 강남’ 이야기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유튜브와 포털에서 각각 ‘매거진동아’와 ‘투벤저스’를 검색해 팔로잉하시면 기사 외에도 동영상 등 다채로운 투자 정보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토허제 지정에도 강남 불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