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 실현’ 기대감… 기업은 ‘생산성 저하-인건비 증가’ 우려
주요 대선 후보들이 주 4.5일제 관련 공약을 내놓으면서 2030세대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GETTYIMAGES “어차피 누가 대통령이 되든 나라의 미래는 똑같을 것 같아서 그냥 월급은 그대로 고정하고 일하는 시간을 줄이는 주 4일제를 도입하겠다는 사람에게 투표하려 한다.
”(20대 여성 A 씨) “연봉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일하는 시간을 줄이자는 건 기업은 망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아 반대한다.
”(20대 남성 B 씨) 대선 후보들이 공약한 주 4.5일제 도입에 대해 20대 유권자들이 5월 27일 기자에게 한 말이다.
2030세대 사이에서는 “주 4.5일제 도입이 특정 후보에게 표를 주는 결정적 이유”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주 4.5일제 공약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 모두 주 4.5일제를 내세웠지만 두 후보의 목적과 방식은 다르다.
이재명 후보는 임금 손실 없이 노동시간을 단축해 장시간 일하는 한국 노동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후보는 4월 30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평균 노동시간을 2030년까지 OECD 평균 이하로 단축하겠다”며 “주 4.5일제를 도입하는 기업에 대한 확실한 지원 방안을 만들고 장기적으로는 주 4일제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OECD 회원국 노동시간-출생률 반비례 김문수 후보가 대선 공약으로 발표한 주 4.5일제는 현 법정 근로시간인 주 40시간을 유지하면서 유연근무제를 확대하는 방식이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현재보다 1시간씩 더해 하루 9시간을 일하고 금요일은 4시간만 일하는 식으로 근무일을 조정하자는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과 유연근무제가 대선 주요 의제로 떠오른 것은 한국의 심각한 저출생 문제와 관련이 깊다.
지난해 한국 합계출산율은 0.75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51명(2022년 기준)의 절반에 불과하다.
2022년 기준 OECD 회원국 가운데 합계출산율이 1명 이하인 나라는 한국뿐이다.
긴 노동시간은 한국 저출생 현상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OECD 회원국들에서는 노동시간이 길수록 합계출산율이 낮아지는 경향이 발견된다(그래프 참조). 2023년 기준 한국의 평균 연간 노동시간은 1872시간으로 OECD 회원국 중 여섯 번째로 많다.
OECD 평균은 1742시간으로 한국보다 130시간 적다.
유연근무제 도입률과 이용률 등을 반영해 산출하는 한국의 일·생활 균형 지수도 OECD 최하위권이다.
일·생활 균형 지수가 높을수록 일과 삶의 균형이 잘 잡혀 있다는 의미인데, 2024년도 지수를 발표한 30개 OECD 회원국 중 한국은 네 번째로 지수가 낮았다(표 참조). 일·생활 균형 지수 역시 출생률과 연관이 있다.
경기연구원이 올해 2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일·생활 균형 지수가 높은 캐나다와 덴마크에서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출생률을 낮춘다”는 통념을 깨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증가할수록 합계출산율도 상승했다.
반면 일·생활 균형 지수가 낮은 한국, 멕시코, 칠레에서는 여성이 경제활동에 많이 참여할수록 합계출산율이 감소했다.
경기연구원은 보고서에서 “긴 노동시간과 일·생활의 불균형은 한국에서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높아질수록 출산율은 낮아지는 그간의 추세를 설명하는 주요 요인”이라며 “노동시간을 줄여서 일·생활 균형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 저출생 극복에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노동시간 단축 제도는 유연근무제와 병합해 사용할 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면서 “기업 특성을 반영해 시차출퇴근제, 선택적 근로시간제, 재량근로시간제, 원격근무제, 재택근무 같은 다양한 유연근무제를 같이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덧붙였다.
노동계 “주 4일제 도입” vs 경영계 “생산량 감소 우려” 주 4.5일제가 대선 주요 의제로 떠오른 데 대해 노동계는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진창현 화섬식품노조 카카오지회 엑스엘게임즈 분회장은 5월 27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국내 일부 IT(정보기술) 기업과 스타트업이 주 4일제를 자율적으로 도입하자 직원들의 이직률이 줄고 업무 만족도와 창의성이 향상됐다는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며 “주 4일제를 도입해 일과 삶이 조화를 이루는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경영계는 생산량 감소와 초과근무수당 증가 우려 등을 이유로 주 4.5일제 도입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강동한 한국단조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5월 12일 중소기업중앙회가 개최한 토론회에서 “선진국보다 생산성이 현저히 낮고 근로시간제가 경직된 데다, 인당 국민소득도 OECD 하위권인 한국이 주 4.5일제를 먼저 의무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정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법정근로시간을 주 40시간에서 36시간으로 바꾸는 주 4.5일제가 시행되면 주 36시간을 초과하는 근로에 대해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해야 해 기업의 비용 부담이 커진다”면서 “지방 기업이나 영세 기업은 인력 부족으로 초과 근로를 활용하는 측면도 있어 주 4.5일제는 지방의 인력 부족 문제, 외국인 노동자 문제, 기업 크기와 업태 등 다양한 요인과 유기적으로 연결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2030 표심 흔드는 ‘주 4.5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