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윤빈의 과학 읽다]빌보드에 더해 과학까지 삼킨 넷플릭스 화제작 ‘케이팝 데몬 헌터스’… 3차원 음악이 4차원 영혼을 울릴 수 없는 이유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주인공 걸그룹 헌트릭스. 넷플릭스 제공
소녀들이 노래하고 춤춘다.
그러나 그들의 진짜 임무는 다른 데 있다.
오에스티(OST)는 빌보드 순위권을 휩쓸고, 작품도 스트리밍(실시간 재생) 1위를 수주째 하고 있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이야기다.
영화의 주인공인 걸그룹 헌트릭스는 겉으로 보기엔 톱 아이돌이지만 실제로는 악마를 무찌르고 악마의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에 ‘혼문’이라는 결계를 치는 일을 한다.
케이팝(K-Pop)을 희망과 연대의 상징으로 그려낸 이 영화는 최근 케이팝의 글로벌 약진을 반영하듯 전세계인의 고른 지지를 받고 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임을 입증하는 듯한 흥행 기세도 놀랍지만, 이 영화가 의외로 물리적 근거를 갖춘 판타지라는 점이 더 놀랍다.
  영혼을 잃은 사람이 왜 죽음을 맞이할까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한 가지 특기할 만한 부분은 영혼을 다루는 방식에 있다.
영화 속 영혼은 사람의 몸속에 있는 구형 안개로 표현되는데, 영혼을 잃은 사람은 죽음을 맞이한다.
이는 악마에게 영혼을 빼앗기더라도 무기력해지거나 인격이 변하는 등 정신적 변화만 겪는 여느 판타지와는 구분되는 설정이다.
이 영화에서 영혼은 마치 뇌나 심장처럼 물리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게다가 영혼을 빼앗긴 이의 육체는 현실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악마는 혼, 기, 백 중에서 아무리 좋게 봐도 혼(영혼·정신)과 기(생명력)만 가져갈 뿐인데 백(육체)은 도대체 왜 소멸하는가? 이에 관한 몇 가지 단서를 우리는 영화 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째, 영혼은 특수한 상황이 되면 빛을 낸다.
한번 빛을 내기 시작하면 영혼은 몸속에 있음에도 관찰이 가능해진다.
다시 말해 영혼이 내뿜는 가시광선이 피부를 투과한다.
둘째, 몸에서 영혼을 빼낼 때 악마는 인간의 신체를 훼손하거나 혈액 등 매개물을 취할 필요가 없다.
영혼은 물리적인 것에 가로막히지 않는다.
셋째, 헌트릭스의 주먹질과 발차기가 통하는 것으로 보아 악마는 영혼과 마찬가지로 물리적 실체를 가졌는데, 그들은 일종의 포털을 통해 현실 세계에 나타나며 충분히 강한 악마는 순간 이동도 가능하다.
이에 따라 우리는 영화 속 영적 존재들이 가지는 공통점에 관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영적 존재는 물리적 실체가 있음에도 물리적 공간을 뛰어넘는다.
재미있는 것은 물리적 실체를 가졌음에도 물리적 공간을 뛰어넘는 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아래 그림은 두 2차원 생명체를 그린 것이다.
내부에 붉은 점을 가진 것을 A, 점이 없는 것을 B라고 하자. 2차원 생물체인 B는 A 내부의 붉은 점을 볼 수 없다.
B가 볼 수 있는 것은 A의 테두리뿐이다.
붉은 점에 닿기 위해 B는 A의 테두리를 열어야 한다.
하지만 3차원 생명체인 우리는 테두리를 열지 않고도 A 안에 있는 점을 볼 수 있다.
A 몰래 붉은 점을 만지는 것도 문제없다.
그저 테두리에 닿지 않게 손가락을 뻗으면 그만이다.
  영혼을 빼앗고 소멸시키는 4차원 존재들 이를 확장하면 다음과 같다.
엔(n)차원 공간의 도형은 n차원의 상호작용을 할 수 있고, (n-1)차원까지만 직접 볼 수 있다.
가령 2차원 생명체인 A와 B에게 서로는 1차원인 선분으로만 보이고, 둘은 2차원 평면상에서 상호작용한다.
3차원 생명체인 인간은 세상을 2차원 평면으로 보고, 3차원 공간에서 상호작용한다.
만약 4차원의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는 인간의 몸속을 우리가 A, B를 대하는 것처럼 들여다볼 수 있고, 우리 몸속에 있는 것을 마음대로 꺼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영적 존재들은 바로 4차원 존재였다.
이렇게 생각하면 영혼을 빼앗긴 육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도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우리가 종이에서 A를 흔적도 없이 잘라낼 수 있듯, 4차원 존재 역시 공간에서 인간을 흔적도 없이 소멸시킬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퇴마를 위한 수단으로 음악을 선택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음악은 본질적으로 음파인데, 그중에서도 특별히 공기를 매질로 하여 퍼져나가는 3차원 공간에서의 파동 에너지 연속체로 정의할 수 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하는 점은 음파가 3차원 존재만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음파 역시 파동이므로 양자역학에서 자주 사용하는 파동방정식으로 기술될 수 있고, 이를 통해 음악이 4차원 이상의 고차원에서 어떻게 들리는지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음악은 4차원에서 즐길 수 없다.
3차원 공간에서 음파는 구형으로 퍼진다.
이때 음파의 세기(음악의 크기)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한편 4차원에서 음파는 4차원의 초구면으로 퍼져나가는데, 이럴 때 음악의 크기는 거리의 세제곱에 반비례한다.
즉 똑같이 10m 떨어진 거리에 있는 3차원 존재와 4차원 존재가 있다고 할 때 3차원 존재는 100분의 1로 줄어든 소리를 듣지만 4차원 존재는 1천분의 1로 줄어든 소리를 듣는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중요한 장면으로 거듭 등장하는 대규모 콘서트는 오로지 3차원 존재들만을 위한 축제인 셈이다.
나아가 4차원이 무엇인지에 관해 더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일반적으로 4차원은 가로, 세로, 높이라는 세 개의 축(공간)에 시간 축을 더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 영화 역시 이런 관점을 그대로 수용하는데, 이는 악마 보이그룹 사자 보이스의 리더 진우가 400년을 살았다고 하는 정보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작중 영적 존재들은, 우리가 현실을 평평한 것이 아니라 ‘입체감 있는 2차원’으로 인식하는 것처럼, 현실을 공간이 아니라 ‘시간성이 있는 3차원’으로 인식할 것이다.
나아가 우리가 입체감을 ‘한 번에’ 인식하듯, 그들은 음악 한 곡을 ‘한 번에’ 인식할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다.
음악은 리듬, 선율, 화성 등 다양한 요소로 구성되지만 이 모든 요소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음악은 악마의 영혼을 울리지 못할 것이다.
적어도 인간이 좋아하는 음악은 말이다.
  음악이 말해, 우울해도 일어나, 우리는 살아 있어 따라서 헌트릭스의 음악이 팬들을 감동시킬 때, 팬들은 단순히 좋음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음악은 그들의 영혼을 3차원 세계에 묶어둔다.
시간을 초월한 악의와 슬픔과 후회에 맞서 팬들은 음악의 힘으로 ‘지금, 여기’에 단단히 선다.
그리고 거대한 판타지는 우리 옆에 사뿐히 착지해 옆자리에 앉는다.
우울해서 눈뜨기조차 힘들지라도 일단은 일어나서 샤워해. 밖에 나가서 조금이라도 걸어. 세상에는 빛이 비치고 우리는 여기에 있어. 살아 있어. 그렇게 말한다.
  서윤빈 소설가 *세상 모든 콘텐츠에서 과학을 추출해보는 시간. 공대 출신 SF 소설가가 건네는 짧고 굵은 과학잡학.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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