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 일변도 농산물 가격 결정제, 가격 불안 부추기는데…이재명 정부, 과감한 농정 개혁 나설 수 있을까
2025년 7월14일 오전 전남 신안군 임자도의 대파밭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출하를 위해 대파 수확·손질 작업을 하고 있다.
김양진 기자
전남 신안군 임자도는 ‘대파특구’로 지정된 전국 최대 대파 산지다.
섬 전체 면적(4080㏊)의 20%가량이 대파밭이다.
농사지을 만한 땅 대부분에, 겨울까지 사시사철 대파가 자란다.
알싸하면서 달콤한 특유의 대파 향을 섬 어딜 가도 맡을 수 있다.
“예년보다 2주 이상 늦었네요.” 2025년 7월14일 전남 신안군 임자도 수확 작업이 이뤄지는 대파밭에서 만난 농민 강신관씨가 말했다.
모종을 밭에 심은 것(정식)이 2024년 10월인데, 예년 같으면 6월 중순~말쯤 대파를 수확했다.
2025년은 때 이른 무더위가 한 달 넘게 이어진 탓에 대부분의 대파 잎끝이 누렇게 타들어갔다.
이럴 경우 ‘특’ ‘상’ ‘보통(중)’ ‘하’ 품질 등급 가운데 ‘특’이나 ‘상’은 받기 어렵다.
더 두면 품질이 더 안 좋아지지만 수확을 계속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낮은 도매가격 때문이다.
출하와 산지 폐기의 기로에 놓였다.
2025년 6월 평균 대파 도매가격이 ㎏당 1029원(‘보통’ 기준)으로 원가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고, 7월4일엔 590원까지 떨어졌다.
대파 1㎏ ‘원가’는 1680원 정도다.
원가는 ‘생산비’와 ‘출하비’로 구성되는데, 생산비는 2023년 농촌진흥청 ‘농산물 소득’ 조사 기준으로 ㎏당 약 890원(1평에 12㎏ 생산 기준)이다.
출하비는 대파 손질·포장 550원에 운송비 100원과 경매 수수료(도매가격의 7%, 2천원 기준 140원)를 합해 약 790원이다.
5분의 1이 대파밭인 섬에서 만난 농민들의 토로
“2018년 4월 최악의 대파값 폭락 사태 때랑 비슷한 상황이었어요. 출하냐 산지 폐기냐를 놓고 고민하는 농가가 많았고, 실제 폐기한 경우도 적지 않았죠.” 이날 함께 현장을 찾은 김정원 임자대파연구회 회장이 말했다.
4~6월에 심어 11월 말부터 이듬해 5월 초까지 수확하는 ‘겨울 대파’ 농사를 짓는 김 회장도 가격 하락세에 버틸 때까지 버티다, 2025년 5월10일 서울 가락시장으로 대파 7t을 보냈다.
당시 경매회사인 대아청과㈜로부터 받은 정산대금 문자메시지를 보니, 당시 낙찰가는 ㎏당 500원. 그는 “혹시나 출하 비용이라도 벌어볼까 보냈는데 폐기하는 게 나았다.
손해만 봤다”고 했다.
대파는 1명당 연간 소비량이 8.8㎏(2024년 기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다.
무·배추·고추 등과 함께 한국 사람이 연중 끼니마다 먹는 필수 채소다.
국민 생활과 밀접한 작물이면서도 가격 불안이 일상인 대표 농작물이다.
대파 도매가격 널뛰기는 2025년만 봐도 확인된다.
사흘 만에 경매 가격이 23.6% 폭락(3월3~6일)하기도 했고, 열흘 만에 3배 가까이(7월4~14일) 뛰기도 했다.
같은 날 같은 품질의 농산물 가격이 2배 이상 차이 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가격변동은 2025년만의 현상이 아니다.
2018년 4월5일에는 대파 도매가격이 ㎏당 396원(‘보통’ 기준)까지 떨어졌다.
개별 경매에 따라 최저가인 ㎏당 100원으로 결정되는 경우도 있었다.
‘100원 대파’라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2021년 3월1일에는 ㎏당 5415원까지 치솟았다.
당시 대파 소비자가격은 1만원을 넘어, ‘금(金)파’라고 불렸다.
그렇다고 가락시장에 오지 않을 방법도 없다.
톤(t) 단위 이상 대규모 물량을 쉽게 소화할 수 있는 도매시장은 가락시장이 유일한데, 경매를 통해야만 가락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 정부에서 내놓은 ‘월별 가격 동향’ 등 관련 문서를 보면 이런 대파 가격 등락의 원인을 주로 재배면적과 출하량에서 찾는다.
농민들이 대파 농사를 수요보다 많이 짓는다는 의미다.
하지만 농민·농업계는 정부의 농업정책과 유통 및 가격 결정 정책이 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김정원 회장이 말했다.
“지금처럼 대파를 일일이 손질해서 망에 넣어야 경매에 가져갈 수 있게 된 게 2018년입니다.
㎏당 재료비(띠·망) 150원에 인건비 400원이 더 들어가게 됐죠. 과거 대파를 트럭에 실어서 가져가면 차째로 경매하던 것을 바꿨습니다.
경매하기는 편해졌을지 몰라도, 그에 따른 부담은 모두 농민에게 전가됐습니다.
이때부터 경매에 참여하려면 반드시 대파를 모두 트럭에서 내리게 하는 ‘하차 경매’도 하고 있어요. 과거엔 가격이 마음에 안 들면 차를 돌려서 되가져오는 경우도 있었죠. 이제는 가격이 ㎏당 100원이 나와도 ‘안 판다’고 차를 돌릴 수 없습니다.
다시 차에 실어야 하니 상차 비용에 트럭 빌리는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농사는 우리가 짓는데, 가격은 경매사랑 중도매인(경매가 끝난 상품을 소매상에게 파는 상인)끼리 결정하고, 농민은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정부가 만들어놓은 거죠.”
망에 넣은 대파, 경매하긴 편해졌지만 부담은 농민이
저장 기간이 짧은 대파의 특성 때문에 다른 농작물보다 섬세한 농업정책이 필요하지만, 그간 농림축산식품부 방침은 안정적인 농가소득보다는 농산물 가격 하락에 찍혀 있었다.
강성민 서진도농협 조합장은 “배추나 무 같은 다른 채소와 달리, 대파는 저장이 어렵다.
비쌀 때 미리 저장해서 수급을 맞추기가 어렵다.
다른 어떤 작물보다도 정부의 가격안정 정책이 필요한 작물”이라며 “그런데 현실은 가격이 오르면 수입 대파가 늘거나 아예 관세를 없애서 가격을 낮추지만, 가격이 내려갔을 땐 ‘나 몰라라’ 한다”고 꼬집었다.
전남 진도군은 신안과 함께 대표적인 대파 산지다.
대파 수입은 2022년 3만9404t, 2023년 4만3571t, 2024년 5만8568t으로 늘어났다.
특히 윤석열 정부 기간은 대파 농민에게 암흑기였다.
전례 없는 ‘대파 무관세 수입’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해 실시했다.
2023~2024년 중국산 대파 1만5천t이 무관세로 들어왔다.
건조·냉동 대파 등 대기업 수입 품목까지 마구잡이였다.
실제 다른 농작물(건고추의 경우 270%)보다 관세율(27%)이 낮은 편인데다, 결정 시기(2023년 4월, 2024년 1·4월) 대파 가격은 평년 수준이었다.
대파 농가의 소득만 크게 줄었을 뿐, 실리도 명분도 없었다.
2017년 도입된 채소가격안정제(최근 5년간 도매가격(경매가)의 80% 이하일 때 가격을 보전) 역시 “유명무실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성민 조합장은 “농촌진흥청이 조사한 생산비 등 원가가 있지만, 이런 원가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경매에서 나온 가격만을 기준으로 한다.
그러다보니 극단적으로 가격이 내려가야 제도가 적용되고, 지금까지 보전된 금액을 보더라도 많아야 300원 수준(㎏당)”이라고 설명했다.
곽길성 전국대파생산자협의회 회장은 “채소가격안정제는 농민·농협·정부·지방자치단체가 공동재원을 마련해 지원하는 제도인데, 경매가 기준이다보니 실질적 보상이 안 돼 농가들이 참여를 꺼린다”고 말했다.
백혜숙 지속가능국민밥상포럼 대표는 “대파를 비롯해 농산물 가격 널뛰기를 막으려면, 현재도 농촌진흥청에서 매년 조사하는 ‘농산물 소득’ 자료에 나온 품목별 생산비 등 원가가 도매가격이 형성될 때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원가 조사는 조사에 그치고 가격은 경매에 의해 따로 결정되다보니 가격이 늘 출렁일 수밖에 없다”며 “현재 10%에 불과한 계약재배 비율을 농가와 기업·단체를 잇는 계약재배 시스템 마련을 통해 30% 이상 확대하는 등의 정책도 필요하다.
프랑스에서 시행 중인 ‘원가 기반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제’나 덴마크의 ‘농산물 가격결정위원회’ 등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파 도매가격은 7월 중순 들어 최대 1631원(7월14일 ‘보통’ 기준)까지 회복했지만 바로 다음날 가격은 아무도 모른다.
전국 도매시장 기준 가격을 형성하는 구실을 하는 가락시장 경매가격은 전날 가격과 무관하게 당일 수요·공급으로만 결정된다.
이런 예측 불확실성 때문에 전국대파생산자협의회는 차라리 대파를 ‘경매 예외 품목’으로 지정해달라 요구하고 있다.
곶감·무화과·아보카도 등 물량이 적은 일부 품목은 ‘경매 예외 품목’으로 지정돼 경매를 통하지 않고도 가락시장 거래가 가능하다.
가격 오르면 가격 낮추고, 가격 내리면 ‘나 몰라라’ 하는 정부
경매 일변도 농산물 가격 결정 제도가 농산물 가격 불안을 부추긴다는 지적은 1999년 농림부 유통개혁위원회 때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당시 유통개혁위원회에 참여했고, 가락시장 시장관리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낸 김완배 서울대 명예교수(농업자원경제학)가 설명했다.
“경매제는 도매상이 농민 대상으로 가격을 후려치는 등의 문제 때문에 가격을 투명하게 결정하려고 1986년 도입됐어요. 하지만 지금은 휴대전화로 전국 가격이 확인돼 후려치기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경매제는 오히려 물량이 적을 땐 가격이 확 뛰고, 물량이 조금만 많아져도 폭락하는 단점이 확인됐고요. 전국 농산물의 32%가 서울로 먼 길을 올라와야 하고, 경매 시간에 맞추려 대기시간이 길어지고, 그러면서 신선도에 문제가 생깁니다.
물류 비용이 너무 많이 발생하는 비효율적인 제도라 미국·유럽 등에서도 경매로 농산물 가격을 결정하지 않고, 일본조차 이제는 경매 비율이 10% 미만이에요. 이 때문에 ‘시장도매인제’를 도입해 ‘경매제’와 경쟁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죠.”
시장도매인제는 쉽게 말해 생산자와 도매상(시장도매인)이 수의계약을 통해 가격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농민이 가격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유통단계를 기존 3단계(경매회사·중도매인·소매상인)에서 2단계(도매상·소매상인)로 줄인 것이 특징이다.
2000년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이 개정돼 시장도매인제도가 도입될 수 있는 법적 토대가 마련됐고, 2004년 서울 강서농산물도매시장에 시장도매인제가 시범 도입돼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전체 거래금액과 거래물량 모두 시장도매인이 경매회사를 앞선다.
김완배 명예교수는 “중장기적으로는 정부가 생산자단체가 조직화되도록 해 스스로 물량을 조절하도록 하고, 단기적으로는 도매시장의 거래제도 개선을 통해 경매 일변도에서 벗어나 과감한 시장도매인 제도를 도입해 경쟁시키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말했다.
가격 안정책 ‘출하명령제’ 등 다양한 수단 있는데
하지만 농림축산식품부는 가락시장의 경매제 독점을 유지하되 최대한 보완한다는 입장이다.
농식품부 담당자는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경매제는 투명한 가격결정이 장점이다.
다만 농업인들의 불만 제기에도 공감한다”며 “그간 온라인 도매시장 전자 송품장 도입 등의 보완책을 내놓았지만, 새로운 정부 들어 현행 유통구조를 좀더 보완하려 고민하고 논의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곽길성 전국대파생산자협의회 회장은 “농안법의 목적(제1조)은 ‘농산물 유통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다.
경매하면 정부 입장에선 유통 관리가 쉬울지 몰라도, 그 경매에 맞춰야 하니 농산물 유통은 멈출 수밖에 없다.
치명적 결함인데 20년 넘게 지적돼도 바뀌지 않는다”며 “ 농업에 대한 애정이 없고 식량산업에 대한 사명감이 없는지, 관료들이 그냥 편하게 하려는 것 같다.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는 출하명령제 등 다양한 정책 수단을 놔두고 손쉬운 ‘수입’부터 찾았던 걸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기후위기에 농약·비료 가격 등 경영비는 날로 치솟고, 출하 때마다 반복되는 가격 불안까지 농업 생산 기반을 갉아먹는 위기 상황 속에 들어선 이재명 정부는 과감하고 적극적인 농정 개혁에 나설 수 있을까. ‘농수산물의 수급 균형과 유통구조의 개선’은 헌법(제123조)이 정한 국가의 의무다.
2025년 7월14일 오전 전남 신안군 임자도의 대파밭. 한 달 이상 이어진 무더위 탓에 대파 끝이 누렇게 변했다.
누런 부분을 떼어내고 먹으면 맛에는 차이가 없지만 경매시장에서 높은 등급으로 품질판정을 받을 수 없다.
김양진 기자
2025년 7월14일 오전 전남 신안군 임자도의 대파밭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출하를 위해 대파 수확·손질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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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14일 오전 전남 신안군 임자도의 대파밭. 김정원 임자대파연구회 회장이 대파 상태를 살피고 있다.
김양진 기자
2025년 7월14일 오전 전남 신안군 임자도의 대파밭. 한 달 이상 이어진 무더위 탓에 대파 끝이 누렇게 변했다.
누런 부분을 떼어내고 먹으면 맛에는 차이가 없지만 경매시장에서 높은 등급으로 품질판정을 받을 수 없다.
김양진 기자
2025년 7월14일 오전 전남 신안군 임자도의 대파밭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출하를 위해 대파 수확·손질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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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채소’ 대파 값은 왜 널뛰나… 신안 대파밭에서 농민들에게 묻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