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들]전남 곡성 편
메마른 밭과 사투 벌인 나도, 타들어가던 뭇 작물도 단비에 아연 생기 되찾아
늦게 심은 토종 오이가 비를 맞으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비가 내리는 건지 안 내리는 건지 모를 장마가 한 차례 지나간 뒤, 대지를 바싹 말리는 불볕더위가 찾아왔다.
닭들은 날개를 벌려 날개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게 하면서, 입을 벌려 열을 뱉어냈다.
한숨 한숨 쉬는 동안 그들이 안간힘을 다해 열을 뱉어내는 것이 느껴졌다.
그들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그나마 미지근한 물통 옆에 몸을 기대거나, 땅을 깊숙이 파서 자기 몸을 묻었다.
콩을 심으러 가기 위해 느긋하게 일어나 명상한 뒤, 아침을 먹고 나갔다.
해가 아직 중천도 아닌데 너무 뜨거웠다.
모종 한 판을 심었는데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제 절반을 끝냈을 무렵 옆 밭 할아버지는 이미 일을 마치셨다.
나를 놀리듯 “뭘 심는겨?” 하며 트럭을 끌고 퇴근하신다.
안 되겠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지혜를 따라 해야지. 다음날은 아침 6시에 눈뜨자마자 나왔다.
비몽사몽. 괭이와 갈퀴, 낫과 호미, 약수통을 차에 챙기고 이동했다.
밭에는 물이 나오지 않아, 동네 개울물을 약수통에 담았다.
비가 오지 않으니 개울의 수위가 많이 낮아졌다.
밭에 도착하니 할아버지 차가 올라간다.
이제 막 도착하셨나보다.
할아버지보다 일찍 나오다니 뿌듯하다.
고작 며칠이었지만. 아직은 선선하다.
스마트폰으로 노래를 틀었다.
아늑한 최유리 목소리와 함께 곡괭이질을 시작했다.
위에 있는 풀을 정리하고 구멍을 파고 물을 넣었다.
맨 위 밭은 언덕 바로 아래에 있어 물이 좀 고여 있다.
흙이 축축해 심기가 편했다.
세 번째 두둑은 파보니, 땅이 돌인지 흙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딱딱했다.
곡괭이로 파는데 ‘사각사각’ 흙 소리가 아니라, ‘땅땅’ 돌 소리가 났다.
그래도 어쩌겠나, 이곳이 아니면 심을 곳이 없는데. 부지런히 파다보니 그 딱딱한 돌 같은 흙도 조금씩 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 동안 고생해서 퍼런콩과 쥐눈이콩을 모두 심었다.
오래 묵은 숙제를 마친 것처럼 시원했다.
다만 풀이 얼마 없어 밭을 다 덮어주지 못했다.
잡초 올라올 것을 생각하니 막막하다.
다음 농사부턴 친환경 비닐을 꼭 씌워야겠다.
다음은 논이다.
네 마지기 논이 계단형으로 세 개로 나뉘어 있다.
모를 심어놨으니 이제 물이 들어와야 하는데, 물이 차질 않으니 막막했다.
매일 아침 논에 나가 확인해도 매번 찔끔 들어오고는 말았다.
농수로에 내려가는 물을 막아 논에 들어오도록 해야 하는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맨 처음 비닐과 돌로 막아봤다.
잠깐 들어오고는 비닐 사이로 물이 새어 흘러내린다.
돌이 무겁기도 하거니와, 농수로에 내려오는 물을 거슬러 돌을 옮기는 데 많은 땀을 흘렸다.
어르신들을 보니, 퇴비 포대 몇 개를 농수로에 쌓아 물을 넣으신다.
나도 집에 있는 오래된 퇴비 포대를 가져다 해보니 과연 물이 잘 들어간다.
이제 우렁이가 잡초를 먹어줄 일만 남았다.
벌써 커버린 피가 있는데, 얘네는 따로 뽑아줘야 한다.
일이 고되겠다.
밭을 삭막하게 만든 불볕더위가 끝나고, 촉촉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더위에 지쳐 힘들었던 닭들도 이제는 날개를 내리고 입을 닫았다.
편안해 보인다.
그동안 목말랐던 콩과 오이, 호박도 이 비를 맞으며 쑥쑥 자라겠지. 더위를 한풀 꺾어주는 비가 반갑다.
  글·사진 박기완 글 짓는 농부
고통스런 여름 농사, 나도 저 노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