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거치며 100억원 차익 낸 도이치모터스 신주인수권… 발행 경위·수익 과정 모두 규명해야
김건희씨와 관련한 각종 의혹 사건을 수사하는 민중기 특별검사팀 오정희 특검보가 2025년 7월8일 서울 종로구 케이티(KT) 광화문빌딩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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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통령 윤석열의 장모이자 김건희씨 어머니 최은순씨가 전화를 건다.
“거기서 내 거 싹 팔아. 혼자만 알고 있어….” 대화는 주식 매도 주문이 비밀 정보임을 암시하며 시작한다.
상대방은 자신의 계좌를 관리하는 증권사 직원. 구체적인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거(도이치모터스 주식)가 3500원 밑으로 회장이 딜을 해놓았대. 주식을 어차피 떨어뜨리지 않으면 성사가 안 된대. 그래서 이거 주식을 떨어뜨릴…, 그것을 하려고 하나봐. 어떤 방법이 됐든지 떨어뜨릴 그걸 하고 있대. 그래서 이제 우리 아는 사람에게는 팔라고 하고. 미운, 얄미운 사람 있잖아. ‘엿 먹으라’ 하고 내버려둔대.”
또 다른 주가조작의 가능성
이 대화는 2022년 10월28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재판에서 검사가 공개한 녹취록이다.
여기서 ‘회장’은 도이치모터스의 권오수 전 회장, ‘주식’은 도이치모터스를 뜻한다.
2011~2012년 초쯤의 대화로 보이는 이 녹취록은 공개 당시 파장이 일었다.
김건희씨 모녀가 도이치모터스 주가를 떨어뜨릴 의도를 가진 권 전 회장에게 내부 정보를 받았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들이 보유했던 도이치모터스 주식의 가격 하락을 알고 주식을 미리 팔아 손실을 피했다는 점도 부각됐다.
최근 이 대화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도이치모터스의 또 다른 주가조작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다.
2025년 7월 초 김건희씨 관련 의혹을 수사하는 민중기 특별검사팀(이하 김건희 특검)이 출범한 가운데, 김건희 특검이 이 녹취가 암시하는 새로운 주가조작과 김건희씨 연루 여부 등을 파악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건희씨가 연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은 권 전 회장과 주가조작 선수들이 주도해 2009~2012년 시세조종으로 거액의 부당이득을 취한 사건이다.
김씨는 이 사건에 수십억원대 자본을 대고, 실제로 주가조작 과정에도 참여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권 전 회장과 주가조작 선수, 자본을 댄 사람 일부가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검찰은 2024년 10월 김씨에 대해선 불기소 처분했다.
김씨의 계좌가 법원으로부터 시세조종에 활용됐다는 판단을 받았음에도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한 점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앞서 제기된 주가조작 사건에서는 정해진 시각에 특정 주식을 주고받는 ‘통정매매’로 낮은 주가를 높이 올려 수익을 냈다는 점이 수사와 재판의 쟁점이었다.
‘3500원 녹취’ 또한 도이치모터스의 시세조종 여부를 확인하는 근거로만 활용됐다.
하지만 이 녹취록 속 통화 전후로 벌어진 상황은 기존 수사·재판에서 나오지 않은 새로운 주가조작 가능성을 보여준다.
‘리픽싱’(Refixing·전환가액 조정)이라는 기법을 쓰며 신주인수권을 통해 2011년 말부터 2017년까지 주가조작이 벌어졌다는 의혹이다.
리픽싱은 주식가격이 하락하면 정해둔 신주인수권의 행사가격(1주를 살 수 있는 가격)도 일정한 산식에 따라 낮춰주는 것을 일컫는다.
산업은행, 신주인수권 왜 헐값에 넘겼나
‘리픽싱’ 주가조작 의혹의 출발은 2011년 말이다.
2011년 12월19일 도이치모터스는 신주인수권부사채(BW) 250억원어치를 발행했다.
신주인수권부사채는 채권과 신주인수권을 결합한 형태의 금융자산이다.
일정 금액 돈을 빌려주면(채권), 특정 시기 특정 금액에 새로운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신주인수권)를 갖게 된다.
도이치모터스에 돈을 빌려주고 신주인수권을 가진 곳은 산업은행이었다.
250억원을 대여한 만큼 250억원 규모의 신주를 인수할 수 있었는데, 1주당 5560원의 가격으로 신주를 인수하기로 계약했다.
채권자가 된 산업은행은 주가가 오른 뒤 신주인수권을 행사해 시장에 팔면 이익을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이튿날인 12월20일 채권을 남기고 신주인수권만 떼어서 판다.
새 주식을 인수해 이익을 볼 기대를 애초에 버리고, 사들인 신주인수권 가운데 60%(150억원 규모)를 권 전 회장에게 팔았다.
이 과정에서 권 전 회장이, 이 신주인수권의 이론가격(신주인수권의 가격가치, 블랙-숄즈 가격 결정 모형에 따라 산정)이 1개당(1주를 살 수 있는 권리) 1126원이었는데 22.9% 가격에 불과한 258원에 신주인수권 7억5천만원어치를 사들였다는 지적이 나왔다.
산업은행이 권 전 회장에게 신주인수권을 헐값에 넘겼다는 의혹이다.
산업은행 쪽은 앞선 국정감사 등에서 “채권평가업체의 기준을 따랐다”고 주장하지만, 명확한 해명은 되지 않은 상태다.
이 과정에서 신주인수권 매매에 김건희씨의 돈이 쓰였다.
앞선 보도와 자료 등을 종합하면, 권 전 회장은 금융감독원의 도이치모터스 공시 의무 위반 조사 과정에서 “7억5천만원 중 5억원은 김씨에 빌려서 신주인수권을 샀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2012년 초 주당 6천원대이던 도이치모터스 주가는 같은 해 연말로 가면서 주당 3천원대로 곤두박질쳤다.
주가가 하락하면 신주인수권을 가진 사람은 손실을 보게 된다.
신주인수권 거래시 이런 상황에 대비해 ‘리픽싱’ 계약을 한다.
주가가 내려간 만큼 신주인수권 행사 가격도 낮춰주는 것이다.
행사 가격이 낮아짐에 따라 발행 뒤 갖게 되는 주식 수는 증가한다.
예를 들어 전체 1천원 규모의 신주인수권을 산 사람을 가정해보자. 이 사람은 1주당 100원의 가격에 신주 10주를 인수할 수 있도록 계약했다.
그런데 주가가 낮아졌다.
이 경우 80원을 신주인수권 행사가격을 낮추고 12.5주를 가질 수 있게 계약이 바뀐다.
이렇게 리픽싱한 뒤 주가가 오르면 늘어난 신주인수권 물량 덕분에 신주인수권을 가진 사람은 더 큰 이익을 볼 수 있다.
반면 기존 주식 보유자는 손해를 보게 된다.
신주인수권 수가 많아지면, 이 권리를 가진 사람은 동일한 금액으로 더 많은 주식을 발행받을 수 있다.
많은 주식이 발행됨에 따라 기존 주주들의 지분율은 종전보다 낮아질 수밖에 없다.
또 기업의 이익이 일정한 상태에서 발행 주식이 늘면, 기업과 주식의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인 주당순이익도 줄어든다.
‘3500원보다 낮게’의 비밀 풀리나
도이치모터스 주가가 하락해 신주인수권은 3천원대로 ‘리픽싱’된다.
2012년 12월20일 신주인수권의 행사가격은 3892원까지 낮아졌다.
증권 발행 및 공시에 대한 규정에 따라 신주인수권 전환가액은 처음 정한 값의 70%까지만 낮아질 수 있는데, 최저한도까지 낮춘 셈이다.
전환가액이 최저치로 조정됐을 당시 주가는 3500원보다 낮았다.
최씨의 ‘3500원 녹취’는 이 과정의 맥락과 닿는다.
리픽싱 산식은 정해져 있는데, 이에 따라 주가가 3500원보다 밑으로 떨어져야 규정상 최저치인 3892원으로 낮출 수 있었다.
최씨의 발언은 이 점을 미리 알고 발언한 취지로 해석될 수 있다.
전환가액이 낮아질 시점에 새로운 이들이 신주인수권을 사들인다.
이 매수자 가운데 대표적 인물이 김건희씨다.
김씨는 2012년 11월 권 전 회장이 보유한 신주인수권의 절반에 가까운 51만464개(이후 최종51만3872개로 늘어남)를 1억원에 산다.
1개당 가격은 권 전 회장이 처음 산 278원보다 싼 196원이었다.
이때 다른 개인투자자 8명도 권 전 회장과 산업은행으로부터 남은 신주인수권을 사들였다.
8명 중에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연루된 민아무개 전 블랙펄인베스트 이사도 있다.
이후 김건희씨와 한 투자자는 사들인 대부분의 신주인수권을 7개월 만에 되팔기로 했다.
김씨는 2013년 6월 사모펀드 ‘타이코사모투자전문회사2013’에 신주인수권 43만6793개를 1개당 358원에 팔았다.
이렇게 김씨는 신주인수권 매각만으로 5600만원의 이익을 챙겼다.
김씨는 이렇게 팔고 남은 7만7천 개의 신주인수권으로도 추가 이익을 냈을 것으로 보인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으로 1심에서 징역형이 선고된 권오수 전 회장이 2024년 1월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2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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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사모펀드 ‘타이코사모투자전문회사2013’은 2013년 6월부터 2017년 7월까지 보유하고 있던 신주인수권을 1개당 3892원씩 신주로 바꾼 뒤, 5천원대에 팔면서 60억여원의 차익을 챙겼다.
신주인수권을 산 금액을 고려해도, 48억원의 차익을 남긴 것이다.
나머지 개인투자자들은 어떤 경로로 신주인수권을 현금화했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 또한 50억여원 매각 차익(신주인수권을 산 금액을 제하면 40억원 안팎)을 남겼을 가능성이 있다.
종합하면 산업은행에서 발행한 신주인수권은 권 전 회장→김건희 등 개인투자자→사모펀드(일부는 개인투자자 보유)를 거치면서 100억원이 넘는 차익을 낸 셈이다.
산업은행의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이후 5년 반 만에 벌어진 일이다.
한 금융·조세 전문가는 신주인수권의 발행 경위와 거액의 차익을 본 과정 모두 규명해야 할 대상이라고 지적한다.
이 내용을 추적해온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은 “김건희씨가 주도했든 공범이든 이 행위들에 개입돼 있다고 봐야 한다.
신주인수는 상당 부분 김건희씨 돈으로 했기 때문”이라며 “산업은행도 처음에 이 돈을 빌려주고 왜 신주인수권을 받아서 바로 팔게 됐는지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본시장법 위반, 범죄수익은닉 등 혐의”
신주인수권부사채 등 금융상품을 다뤄온 자본시장의 한 전문가도 “해당 행위들은 자본시장법 제176조 4항 위반(파생상품 연계 시세조종), 범죄수익은닉 등 혐의가 있어 보인다.
현재는 이 거래로 이익을 본 개인투자자들, 사모펀드의 정체가 잘 드러나 있지 않다.
김건희씨를 비롯해 이들이 리픽싱 거래로 단기간에 어떻게 큰 이익을 봤는지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도이치 주가 떨어질 때도 김건희는 벌었다… ‘리픽싱’ 조작 연루 밝혀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