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제동·노조 반대에도 강행하는 ‘더숨센터’ 매각…재정 위기 원인은 노조 탓하는 간부들
단체 운영진의 서울 마포구 건물 매각을 둘러싸고 동물권행동 카라의 노동조합(민주노총 민주일반노조 카라지회)이 매각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적은 종이를 건물에 붙인 모습. 노동조합 제공
“저는 그동안 카라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서 전진경 대표님 연임과 정관 개정안에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대표님 연락을 받아서가 아니라 온전히 제 소신대로 투표했다고 바로 어제까지도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제 판단을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정말 대표님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대한민국 최고의 동물권 단체 대표님이 아무것도 아닌 저에게 사적으로 연락하고 대외비 자료를 보여주고 발언해달라는데 정말 아무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저처럼 대표님 전화 받으신 대의원분이 계실까요? 찬성을 직접 부탁하지 않았더라도 ‘회원님은 현명하신 분이니까 옳은 판단을 해달라’ 하지 않던가요? 그런 게 바로 가스라이팅이고 의결권 침해라고 생각합니다.
”(권은정 대의원)
동물권행동 카라의 권은정 대의원이 2025년 7월10일 카라 임시총회에서 전화 연결로 발언하고 있다.
당사자가 이름과 얼굴 공개를 허용했다.
카라지회 제공
사단법인 동물권행동 카라의 전진경 대표와 영화감독 임순례 전 대표 등이 노동조합(민주노총 민주일반노조 카라지회)에 부당노동행위를 했다는 문제가 제기된 가운데, 이번에는 전 대표가 카라의 건물 매각을 성사시키기 위해 왜곡된 정보를 안내했다는 회원 폭로가 나왔다.
비영리법인 소유의 기본재산을 매각하려면 법령과 정관상 회원 대의원 3분의 2 이상의 의결이 필요하지만, 전 대표가 회원들에게 ‘과반 의결로도 충분하다’고 안내해 건물 매각 찬성표를 유도했다는 취지다.
건물 매각은 앞서 노조가 법원에 제기한 건물 매각금지 가처분이 인용되면서 멈춘 상태였다.
그러나 운영진은 이를 총회 안건으로 올려 53%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대표가 왜곡 정보 전달’ 대의원의 폭로
사건은 2025년 7월10일 동물권행동 카라의 대의원 총회 중에 발생했다.
최근 카라 운영진은 재정 위기를 돌파한다며 서울 마포구 소재 동물보호센터인 ‘더불어숨센터’(이하 더숨센터)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전 대표를 비롯한 운영진은 해당 건물이 집기·비품 등과 다를 바 없는 재산(공익법인법상 ‘보통재산’)이라며 이사회 결의만으로 매각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노조는 대중과 접점 구실을 하는 도심형 센터를 없애는 건 손해라며 매각에 반대했다.
또 해당 건물이 임의로 처분할 수 없는 공익법인법상 ‘기본재산’이므로 매각하려면 정관에 따라 총회를 열고 대의원(회원이 뽑은 대리인)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날 총회는 양쪽 입장을 대의원들에게 설명하고 찬반을 표결하는 자리였다.
화상회의로 참석한 권은정 대의원은 질의응답 순서가 되자 발언했다.
그는 “더숨센터가 기본재산이냐 보통재산이냐 논란이 있다.
어떤 게 맞는지 궁금해 농림부(농림축산식품부)에 직접 문의해봤다”며 운을 뗐다.
그는 이어 “농림부는 ‘더숨센터를 기본재산으로 편입시켰어야 하는 게 맞고 현재 상태로 강행할 경우 매각 취소나 단체 해산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갈 수 있다’더라.
전 대표님은 사흘 전 내게 전화해서 ‘더숨센터는 보통재산이라 총회를 거치지 않아도 되지만 노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거’라고 했는데 농림부 답변을 듣고 큰 충격과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권 대의원은 또 “농림부도 우려하는 표결을 강행하는 건 카라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고 배임”이라며 “대의민주주의를 훼손한 총회 의결을 거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농림부, “‘기본재산’”안내 공문 보내
평소 전 대표의 신임을 받던 권 대의원은 총회에 민감한 안건이 올라오면 전화로 미리 설명을 들었다고 한다.
이번에도 ‘노조 활동가들이 단순히 파주로 가기 싫다고 매각을 반대한다’ ‘해당 건물은 기본재산 아닌 보통재산이라 총회가 불필요하다’ 등의 설명을 전 대표에게 들었다.
그런데 농림부에 확인해보니 사실과 달라 공론화를 결심했다고 한다.
권 대의원은 7월16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 대표의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실제로 카라를 관장하는 농림부는 카라 건물이 기본재산이라고 판단했다.
공익법인법상 기부 또는 무상으로 취득한 재산은 기본재산으로 분류되는데, 카라의 서울 마포구 건물은 2012년 성악가 조수미씨 등의 대대적 후원으로 마련됐기 때문이다.
이 규정은 비영리 사단법인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농림부는 2025년 6월26일 “법인의 목적사업 수행에 관계되는 부동산 또는 동산은 기본재산”이라며 정관 누락 여부를 확인하라는 공문을 카라와 다른 산하단체에 보냈다.
농림부 관계자는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법령과 법무부 해석 등을 종합적으로 봤을 때 해당 건물은 기본재산이 맞는다.
이를 안내하는 공문을 카라에 별도로 보내고 담당자에게 메시지도 넣었지만 정확한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법원 역시 노조의 주장을 받아들여 7월8일 건물 매각금지 가처분을 인용했다.
전 대표는 권 대의원의 항의에 “다른 동물단체도 동물보호소를 보통재산으로 관리한다.
농림부가 이 일로 단체 해산까지 이야기하는 것은 시민단체 탄압”이라고 총회에서 답했다.
또 회원에게 따로 연락한 것도 “노동조합이 거의 대의원을 장악하고 표결하는데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느냐. 대의원님들 반드시 오셔서 의결권 행사해주십사 한 게 잘못이냐”고 말했다.
카라에선 2025년 2월 총회 때도 노조를 비난하는 내용의 대본이 미리 작성된 정황이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대의원들이 총회 때 노조를 향해 ‘다 시끄럽고 동물권 활동에나 신경 쓰라’ ‘결국 무혐의로 밝혀졌는데 왜 이런 위험한 행위를 했느냐’고 발언했는데 그 내용이 미리 작성된 대본과 일치한 것이다.
노조 활동가들은 총회 3시간 전 수정된 대본 파일을 업무 공유 폴더에서 발견해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운영진 쪽은 ‘대의원이 하려는 발언을 타이핑한 것’이라는 취지로 답했다고 한다.
권 대의원도 한겨레21에 “당시 전 대표로부터 노조가 제시한 정관 개정안을 비판해달라고 요청받았다”고 말했다.
카라지회가 확보한 ‘대본’ 내용의 일부. 확인 결과 2025년 2월 총회 당시 각 대의원의 발언과 거의 일치했다.
노동조합 제공
2025년 2월 총회도 ‘노조 비난 대본 작성’ 정황
현재 카라 운영진은 노조 탄압 행위(노동조합법상 부당노동행위)로 피소돼 조사받고 있다.
앞서 2025년 3월, 카라지회가 임순례 감독과 카라 전진경 대표, 김아무개 동물복지그룹장을 부당노동행위로 형사고소했기 때문이다.
고소 내용에는 이미 중앙노동위원회가 부당징계와 부당노동행위로 인정한 노조원 정직 처분과 노조 비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 운영도 포함돼 있다.
(제1569호 ‘노무사 노무진’ 임순례 감독의 노조 탄압 흑역사 참조)
그러나 단체 간부들은 여전히 총회에서 노조를 향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예를 들어 매각 찬성 쪽에 선 김아무개 대내협력그룹장은 총회 중 단체의 재정 위기 원인으로 ‘카라를 향한 근거 없는 후원금 부정 이슈와 동물폭행 이슈 제기’를 지목하고 ‘SBS 보도 기사 삭제, 그 외 다수 언론사 정정 및 반론 보도 수용’을 대응 성과로 내세웠다.
단체가 당면한 위기가 노조의 문제 제기 탓이라는 취지다.
한겨레21은 전 대표에게 현 상황에 대한 입장과 설명을 요청했으나 전 대표는 답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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